I . 성서에서의 육신 영혼과 함께 단일체가 되어 "하느님의 모습"의 존엄성 에 참여하는 인간 구성 요소. "육체"나 "몸"이라고도 한다. 교회는 "육체가 구원의 축(軸)”이라고 믿는다. 또한, "육신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육신을 속량하기 위해 육신을 취하신 말씀을 믿으며, 육신의 창조와 구속 의 완성인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15항). 인간은 "죽음을 통해 육신은 영혼과 분리되지 만, 부활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변화된 육신을 영혼과 다시 결합시키심으로써 육신에게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 을 돌려주실 것이다"(1016항). 그래서, 교회는 인간이 "썩을 몸으로 무덤에 묻히지만 썩지 않을 몸, 영적인 몸 으로 다시 살리신다"(1017항)는 신앙을 고백한다. 이는 인간의 육신을 하느님이 창조하고 하느님의 성자가 이를 취했고, 하느님의 성령이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와 유대교] 구약성서의 인간관은 '전인적'이라 할 수 있다. 구약성서는 인간의 육신을 영혼과 구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육신을 만드셨다 (창세 2, 7). 인간은 통합적인 방식으로만 이해된다. 인간 은 영(靈)과 육(肉)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영이며 살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명을 지니고 활동할 수 있지만, 동시에 질병과 유한성 및 죽음에 의해 위협을 받 는다. 육이 없는 인간이 유령과 같다면, 영이 없는 육은 시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죽음은 성스러운 영혼이 유한한 육신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구약성서는 하지 않는다. 한편, 구약성서는 인간을 '개인' 으로 이 해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관계 안에 있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 탁월한 인물은 언제나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섬기도록 선택된 사람이다. [헬레니즘 세계]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인간에 대한 이 해가 전혀 달랐다. 이른바 이원론적이었기 때문이다. 호 머(Homeros, + 기원전8세기경)에게 '소마' (σῶμα)는 단지 "사체"를 뜻했다. 후에 이 용어는 살아있는 인간의 육신이나 동물의 몸 또는 노예를 가리켰다. 또한 '소마' 는 총 체 즉 하나의 단위에 속한 전체에 대한 지칭이 되었다. 이를테면, 도시 국가의 시민들 전체도 하나의 몸이며, 전체 우주 또한 하나의 몸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에게 '소 마' 는 무덤이나 감옥 혹은 굴 껍질로 이해되었다. 죽음이란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플라톤은 후에 인간의 아름다운 육신을 하늘의 아름다운 이데아에 대한 일종의 불완전한 형상(image)이라고 이해하였다. 그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 전 384~322) 역시 영혼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스승처럼 영혼이 하늘에서 기원하였다고 이해하진 않았다. 그에게 육신이란 질료를 하나의 살아 있는 인간으로 형성시키는 것은 영혼이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이와 같은 사상을 결합시킴으로써 '몸' 은 그 어떤 총체에 대한 지칭이 되었다. 인간의 육신은 하나의 작은 세상(microcosmos)인데, 이것은 큰 몸뚱이(macrocosmos) 즉 우주의 일부로서 그것과 나란히 존 재한다는 옛 사상이 되살아났다. 영혼은 육신에 속하고 그 일부인데 그 안에서 생명의 힘으로 존재한다. 우주의 큰 몸뚱이 안에서 영혼은 모든 것 안에 스며 있다. 본래 는 바위 안에 희미하게 있었으나, 그 존재가 식물들과 동물들 안에 점차 구체화되었고, 마침내 인간에게서 확연히 드러났다. [복음서에서의 언급] 예수는 인간 육신에 대한 별도의 많은 가르침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의 가르침에서 진 정한 제자가 된다는 것은 육신의 복종을 포함한다. 그것은 간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에서 나타난다. "···당신의 지체 하나가 없어지더라도 당신의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 이롭습니다" (마태 5, 29). 육신에 대한 적절한 통제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분명 하나의 일관된 주제였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여러분의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 까] 또 여러분의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 시오. 목숨은 양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지 않습니까?(마태 6, 25). 한편으로는, 육신이 영혼과 분리되어 있고, 또 육신은 관심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 더는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제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 는지 여러분에게 알려 주겠습니다. (육신을) 죽인 다음 에 지옥에 던지는 권능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시오"(루 가 12, 4-5 ; 마태 10 : 28). 그러나 복음서에 남겨진 예수의 말씀과 행위에 대한 복음사가들의 보도나 성서학자들의 신학적 · 해석학적 재구성을 따르면, 예수가 인간의 육신을 얼마나 중요시 하였는지 드러난다. 예수의 기적들 가운데 모든 치유는 병든 인간의 '육신' 을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열두 해 동 안이나 하혈하는 여인의 치유 이야기는 대표적인 예이다. 치유는 몸과 몸의 접촉을 통하여 발생하며, 몸 안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에 대한 자각은 여인과 예수 모두의 몸 안에서 발생한다. "그는 자신이 병고에서 낫게 된 것을 몸으로 느껴 알았다. 한편 예수께서는 당신에게서 능 력이 나간 것을 스스로 즉시 알아채시고···"(마르 5, 2930). 그 결과는 몸의 온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딸이여,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하였 소. 평안히 가시오. 그리고 병고에서 나아 건강해지시오'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5, 34) '몸의 구원' 은 모든 예수 기적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밝혀진 것은 예수의 활동에서 치유의 기적과 긴밀히 관련된 식탁 교제도 이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함께 나눔과 먹음이 라는 신체적 · 사회적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몸 의 정상적인 유지와 생명의 순환, 그리고 삶의 경축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점들은 예수가 성전보다는 장터를 좋아했고 회당보다는 거리에서 많이 활동하였으 며, 비유나 경구(警句) 등 '진정성' 을 인정받은 말씀으 로 볼 때 그의 가르침이 '하늘' 보다는 '땅' 을 중시하였 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한다. [사도 바오로의 입장] 헬레니즘 세계처럼 인간의 육신 에 대하여 이원론적 태도를 보이며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인간관에 기초를 놓은 사람은 바오로였다. 그에게 있 어서 인간의 육신은 기본적으로 "지상의 장막 집과 같 아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라 할 수 있다(2고린 5, 1). 인간은 본래 "흙으로 빚어진 땅의 존재"이기에(1고린 15, 47-48), 인간의 육신이란 본질적으로 "살과 피" 로서 "썩 어 없어질 것"에 불과하다(1고린 15, 50). 육신은 그만큼 "천한 것"이고 "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1고린 15, 4243 ; 필립 3, 21). 이러한 존재는 결코 하느님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것을 밝혀 둡니다. 곧 살과 피는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으니, 썩 는 것이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는 것입니다"(1고 린 15 : 50). 인간의 육체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 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1고린 2. 14). 인간의 육신 에 대한 바오로의 부정적 판단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율법 아래 매인 인간의 육신은 언제나 죄에 물든 육체일 뿐 이다(로마 6, 6). 그리고 죄의 욕정이 머무는 곳이다(갈라 5, 16-24). 따라서 마침내는 죽고 말 것이다(로마 5, 126, 23 : 8, 13 ; 2고린 4, 7-12). 이처럼 인간의 육체에 대 한 바오로의 한결같이 비관적 판단은 그의 실존적 경험 에서 우러나왔다. "비참한 인간, 그것은 바로 나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로마 7, 24). 그런데, 바오로는 육체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고, 육체를 죄로 이끄는 사람의 의지를 비난하였다. 그는 로 마서 7-8장에서 죽음과 생명의 두 원천이 어떻게 역사 하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사람 안에 머물고 있는 이 두 세력이(로마 7, 17-20 ; 8, 9-1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를 없어진 신앙인일지라도 영에 따라서 생활하느냐, 혹 은 육에 따라서 사느냐 하는 두 가지 생활 양상을 결정짓 는다(로마 8, 4-17). 육체에 따라서 생활할 가능성은 인간 안에 있는 죄의 흔적 때문이며, 전에 죄를 지었던 육신의 매개로 되는 것이다. 인간 생활의 규범으로 채택된 육신은 인간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육신은 죄의 세력을 욕정 과 함께 이어받아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 육신은 "죄의 법" (로마 7, 23)을 따르는 자들을 자기의 노예로 만든다. 육신은 자기의 욕망(로마 8, 5-7)과 정욕(로마 13, 14 ; 갈 라 5, 16-17 ; 에페 2, 3)을 나타내어 육의 행실들을 만들 어 낸다(갈라 5, 19). 이렇게 되면 인간의 생활은, 오성까 지도 육적으로 되어(골로 2, 18 ; 1고린 3, 3) 육에 따르게 된다(로마 7, 5). 그리고 몸도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지만, 육의 명령을 받기 때문에 육의 몸이 될 것이며(골로 2, 11), 죄의 몸과 같아져서(로마 6, 6) 죄의 육으로 말미암아 조종될 것이다(로마 8, 3). 그러나 인간 구원을 위하여 육신을 취하신(골로 1, 22)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는 패배하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죄의 상태에 있는 육신을 취하여 오셨고, 그 육신에서 죄를 멸망시키셨다(로마 8, 3). 그 이 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육체를 정욕 과 사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이 되었다(갈라 5, 24). 그렇기에 각자는 피조물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다시 찾아 육신과 그 나약함보다는 생명의 원천인 예수 그리 스도의 힘에 신뢰하여야 한다. [육신과 부활, 교회] 죽은 자의 부활이란 "육체적인 몸이 "영적인 몸" 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씨 뿌려지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일으켜집니다. 천한 것으로 씨 뿌려지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일으켜집니다. 약한 것으로 씨 뿌려 지지만 강한 것으로 일으켜집니다. 자연적인 몸으로 씨 뿌려지지만 영적인 몸으로 일으켜집니다. 자연적인 몸이 있는가 하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고린 15, 42-44) 인간의 육신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갖는 존재라면 육 신의 부활이란 그 모두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다 잠들지는 않겠지만 모두 변화는 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모두 변화할 것입 니다) ···썩을 이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하고 죽 을 이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1 고린 15, 51-53 ; 참고 필립 3, 21). 인간의 죄가 육신의 고통과 핍박과 죽음을 가져왔다 면, 인간 존재의 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그리스도의 육신이다. 그의 육신이 죽었다가 부활하였기 때문이다(로마 6, 5 ; 1고린 15, 3-26). 바로 이 점에 바오 로의 교회론이 근거하고 있으며, 육신을 가진 그리스도 인이 현실 세상을 살아갈 기초도 여기에 있다. 인간 존재 가 "그리스도의 몸(육신)"이 되는 것은 세례성사를 통해 서 가능하다. 세례는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입문 성사이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결합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몸은 하나이지만 여러 지체를 가지고 있으며, 그 몸의 지체는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이듯이, 그리 스도도 그렇습니다. 실상 우리는 모두 한 영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으며, 유대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노 예이든 자유인이든, 모두가 한 영을 받아 마셨습니다" 고린 12, 12-13). 성찬례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의 육신 안에 그리스도의 실존을 담는 거룩한 예식으로써,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면서 동시에 하나이고 보편적인 교회의 한 지체가 되는 경험이다. "우리가 찬양하는 찬양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와 맺은 친교가 아닙니까? 우리가 떼 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과 맺는 친교가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니, 우리는 여럿이지만 한 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빵을 나누기 때문입니다"(1고린 10, 16-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이란 다름아닌 교회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여러분 하나하나는그 지체 들입니다”(1고린 12, 27).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 스도의 몸 곧 교회를 이룬 자들에게 육신이란 그 안에 하 느님의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 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아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는 성령의 성전이며 따라서 여러분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사실 여러분은 값을 내 고 사들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 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시오"(1고린 6, 1920).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듯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분과) 같은 모상으로 모습이 바뀔 것이니, 영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광에 서 영광으로 (모습이 바뀔 것입니다)"(2고린 3, 18). 이렇 게 인간이 그리스도의 몸이 될 때 인간의 "육신"은 "영적 인 몸" 으로 변화할 수 있다(1고린 15, 44-46). (↔ 영혼 ;→ 교회 ; 그리스도의 몸 ; 부활) ※ 참고문헌 M.J. Borg, 구자명 역, 《미팅 지저스》 , 홍성사, 1995/ -, 김기석 역, 《예수 새로 보기 - 영, 문화 그리고 제자 됨》, 한국 신학연구소, 1997/ J.D. Crossan, 한인철 역, 《예수는 누구인가》, 한국 기독교연구소, 1998/ - 김준우 역, 《역사적 예수. 지중해 지역의 한 유대인 농부의 생애》,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R.W. Funk, 김준 우 역, 《예 수에게 솔직 히》,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R. Jewett, London, Yale Univ. Press, 1995/ S.V. McCasland, 《IBD》 1, pp. 451~452/ E. Schweizer, σῶμα, 《EDNT》 Ⅲ , pp. 321~325/ 一, (ABD》 1, pp. 768~721 조태연, <복음을 있게 하고 복음이 된 여인들 - 마가 복음의 식탁 교제에 대한 연구>, 《기독교 사상》 484(1999. 4), pp. 86~105/ -, <창문을 열면 저기 '새' 나라가-예수 비유의 생태 신학적 해석을 위한 제안>, 《생태학과 기독교 신학의 미래》, 한들출판사, 1999, pp. 49~79. 〔趙泰衍〕 II . 동양 철학에서의 육신 동양 철학에서 육신을 보는 시각은 요가와 불교에 의 한 인도적 사유와 유교와 도교에 의한 중국적 사유로 대 별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유에는 매우 다양한 갈래가 있어 단순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사상의 주된 흐름에는 양자간에 차이가 있다. [인도적 사유에 따른 육신] 인도에서는 인간의 육신을 포함한 객관적 세계 전체를 마음의 주관적 환상에 의한 산물로 보는 관점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인도에도 유물 론에 가까운 관점도 존재하였다. 이에 따르면 물질이 기 본이며 정신은 부차적 요소이므로, 인간에게는 육신이 기본이 된다. 이는 경우에 따라 육체적 쾌락 추구를 긍정 하는 가치관으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체적인 흐름은 객관적 세계의 실재성을 부인하는 입장이며, 이에 따라 감각적 욕구는 극복될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요가 : 요가 수행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상키야 (Samkhya) 학파에서는 궁극적 존재인 순수 정신(purusa) 과 현상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prakrti)적 요소를 구별한 다. 물질에는 세 가지 존재 양식(gunas)이 있는데 사트바 (sattva) · 라자스(rajas) · 타마스(tamas)이다. 이 세 가지 가 모든 존재에 함께 존재하는데, 이 세 가지 요소의 구 성 비율에 따라 물질의 차별이 나타날 뿐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육신과 마음도 이 세 가지 요소의 배분에 따라 구 별될 뿐 본질적 차이는 없다. 세 가지 요소가 평형을 이 루면 물질이나 육신은 비현현 상태(非顯現狀態)에 있지만, 이 균형(avyakta)이 파괴되어 삼라만상이나 인간 육 신과 마음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세 가지 요소 가운데 사 트바가 우세해지면 심리적 존재가, 라자스가 우세해지면 생리적 기관이, 타마스가 우세하면 일반적 의미의 객관 적 물질 세계가 나타난다. 인간의 육신은 라자스의 요소 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르면 마음과 육신의 본질적 차이는 없으며, 다 같은 환상(māyā) 의 세계에 속할 뿐이다. 유일한 참된 실재는 순수 정신 그 자체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순수 정신은 물질(육신을 포함한)의 이와 같은 변화 현상의 환상 속에 갇혀 본래의 자유와 고요 함을 상실하였으므로 인간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한다. 결국 이것은 궁극적인 존재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므로 명상과 수련을 통해 본래의 적정한 순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실천 수행의 목적이다. 불교 : 불교 사상도 객관적인 세계를 실재 존재로 보 지 않고 거짓된 환상의 존재로 보는 점에서는 기본적으 로 일치한다. 그러나 중요한 철학적 문제에 관한 석가모 니(기원전 624~544?)의 입장은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어 려운 점이 있다. 석가모니는 형이상학적인 난문(難問)에 응답하지 않고 침묵하였으며, 어떤 단정적인 견해보다는 연기론(緣起論)을 주축으로 하는 중도적 입장을 표방했 기 때문이다. 그가 침묵한 문제에는 육신과 마음의 관계 에 관련된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육신의 문제 에 대한 견해도 분명한 답을 찾기는 어려우며, 연기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연기론은 마음에서 육신이 나왔다는 관점보다는, 육신과 마음이 밀접하게 상호 관련된다는 내용에 비중이 두어져 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육신을 괴롭히는 고행주의의 잘못 을 깨닫고 중도적 수행의 필요를 강조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 석가모니는 육신과 마음의 불가분성에 따라 물질적 이 합 집산에만 중점을 두는 유물론적 시각을 비판하고, 상 키야 학파와 같이 순수 정신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견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현상 세계(육신을 포 함하여)에 대한 그릇된 집착으로 스스로 괴로움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는 입장은 받아들이고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실천적 가르침에 역점을 두었다. 《아함경》(阿含經)을 비롯한 초기 경전에서도 육신 자체에 대한 상세한 분석 보다는 번뇌의 원인이나 발생 과정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논의한 경우가 많다. 인간의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인 육근(六根, 眼耳鼻舌身意)의 대상으로서의 육경 (六境, 色聲香味觸法)과 집착의 발생 과정을 분석한 오온 (五蘊, 色受想行識) 중 색(色)이 그것이다. 색은 객관적 물질 세계를 의미하기도 하고, 인간의 육신을 의미하기 도 한다. 이 색 또는 경은 인연의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 이기 때문에 불변적 실체성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그 본 성은 공(空)이라는 것이 석가모니의 입장이다. 석가모니 의 가르침에 의하면, 무상한 인연의 화합에 집착하는 데 서 괴로움이 발생하므로 육신 자체를 윤리적 의미에서 악의 근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수행을 권장하기 위 해 육신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 후 불교사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마음에서 육체 가 나왔다는 유심적 관점이 강조된다. 여기에는 특히 일체 존재가 모두 마음 곧, 식의 전변(轉變)이라는 입장[萬 法唯識]을 강조하는 유식 사상(唯識思想)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육신뿐 아니라 산하 대 지 등의 객관 세계도 모두 마음의 변화된 모습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육체의 독립성은 부인되고, 마음의 발현 된 한 형태에 불과하게 된다. 육신은 마음의 특정한 집착 행위, 즉 업(業)의 산물이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특정한 형태의 육신은 어떤 특정한 업을 상징한다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부처나 보살의 인격에 도달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방편적으로 많은 화신(化身)을 나 타내는 경우는 업의 산물로서의 육신과 구별해야 한다. 이는 수동적, 필연적 업의 산물인 육신과는 달리 자비와 자유 의지에 의해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므로 수용신 (受用身)이라고 한다. 그 후 유심적 세계관은 화엄(華嚴), 천태(天台) 등 중 국에서 꽃피운 대승교학(大乘敎學)으로 이어져 불교적 세계관의 한 특징을 이룬다. 이 입장에서는 우주의 근원 인 청정한 마음을 찾고 깨닫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게 되 며, 육체의 문제는 부차적 관심사가 된다. 생멸을 거듭하 는 무상한 육체를 버리고 생멸을 초월한 참 마음을 깨달 으라는 의미에서 "가죽 주머니를 버려라" (放下皮囊)라는 교훈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적 사유에서의 육신] 중국 사상에서는 인도와 달 리 기본적으로 객관 세계가 엄연히 실재한다고 보는 세 계관을 채택하고 있다. 세계를 큰 유기체적 존재로 보고 자연 현상을 생생약동한 생명의 흐름으로 간주한다. 이 를 보통 생철학적(生哲學的) 입장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생철학적 세계관은 기(氣, 구체적으로는 陰陽五行)를 중심 으로 우주 만물의 생생변화를 설명하는 기론적(氣論的) 사유와 직결되어 있다. 중국에서 발생한 삼대 사상인 유 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등이 공통적으로 생 철학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바탕한 삶의 길을 모색하는 방향에는 차이가 있지만 객관적 세계를 보는 기본 입장은 공통된다. 인간을 정신과 육신으로 나눌 경우 이에 대비되는 중 국적 개념은 "형신" (形神)으로써 이 가운데 육신을 뜻하 는 개념은 "형" (形)이다. "신" (身)이란 개념도 육신이라 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육신에 국한하지 않 고 개인적 인격 전체를 의미하는 경우가(예를 들어 修身이 란 표현) 많다. 형과 신의 관계에 대한 관점이 정립되지 않은 초기에는 형과 신의 두 요소로 인간이 구성되었다 는 견해만 있었다. 점차 기론적 세계관이 체계화되면서 기에 의해 양자의 관계를 설명하게 되었다. 기론적 세계 관에 의하면, 형은 기가 모여 응결된 것이다. 넓은 의미 에서의 기는 우주 만물의 모든 양태를 포괄하므로, 형도 그 한 양태에 속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기는 주로 보이지 않는 근원적 에너지의 양태를 지칭하며, 이것을 더욱 근 본적 상태라고 본다. 이 기가 모여 육신을 형성하며 기가 흩어지면 육신이 소멸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사는 기의 모임과 흩어짐(聚散)으로 설명된다. 기가 모여 형을 이 루면 각각의 형에 적합한 일정한 작용이나 기능을 발휘한다. 이를 보통 “신”(神)이라 부른다. 인간의 정신 작용은 인간이란 형태에서 유래된 특수한 작용, 또는 기능이 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다른 존재와 달리 명철한 지혜와 능력을 지니는 것은 인간을 이루는 기가 가장 탁월하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가 치우치고 부 족한 기를 받았다면 인간은 천지의 중화지기(中和之氣) 를 받았다고 하며, 다른 존재가 탁하고 막힌 기를 받은 반면 인간은 맑고 통하는 기를 받았다고 한다. 동물이나 식물들은 받은 기에 상응하는 "신"의 작용이 있으나 상 대적으로 미약하다. 그러나 인간은 오행의 전체를 고르게 받았으므로 전체에 상응하는 정신 작용을 나타낸다. 인간은 천지의 중화지기를 받은 소천지(小天地)라는 것 이다. 천지의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릇이므로 인간의 육신은 소중하다. 육신이 없는 정신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유가나 도 가를 포함한 중국 사상의 공통된 관점이었다. 한대의 사 상가 환담(桓潭, ?~56)은 이를 초와 촛불의 관계에 비유 하였다. 초가 없으면 촛불도 다하듯 육신이 소멸하면 정 신도 소멸한다는 것이었다. 한대에 불교 사상이 전래되 어 육신 없는 정신의 존재를 가정하고 윤회를 인정한 것 은 중국인에게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이에 이 문제를 둘 러싼 사상적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사후에 정신이 남아 있는가 아닌가를 중심으로 불교의 지식인들은 신불 멸론(神不滅論)을, 전통적 중국 사상에 입각한 지식인들은 신멸론(神滅論)을 주장하였다. 육신과 정신의 불가분성(不可分性)을 주장하고 그릇 으로서의 인간 육신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인간의 인간 다운 본질은 정신에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 었다. 즉 존재론적으로는 형이 앞선다고 보지만 가치론 적으로는 신을 중시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유가 사 상은 육체적 생명보다 정신적 가치의(仁 또는 義) 성취를 보다 중시한다. 공자가 제시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이념이 이것이다. 도가 철학 역시 자연 현상의 근원에 있 는 도를 자각하고 이에 따른 삶을 중시하였다. 노자와 장 자는 육신적인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을 초월한 정신적 자유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유가나 도가 모두 인간 생명의 일회성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생명을 잘 보존하는 양생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이러한 양생에 대한 관심이 인체에 대한 중 국적 관점을 집대성한 《황제내경》(黃帝內經)과 같은 의 학적 성과로 나타났다. 《황제내경》의 특징은 인체를 각 요소로 분해하여 생리적 메커니즘에 접근하는 해부학적 방법을 발달시키지 않고, 육체 전체에 작용하는 기의 흐름을 중시했다는 데 있다. 유기적 전체로서의 생명에 역점을 두고 고정된 오장육부(五臟六腑)로서의 육신 대신 흐르는 기로 구성된 또 다른 몸에 주목하고 이것이 생명 현상의 실질적 근원이라고 생각하였다. 《황제내경》에서 말하는 오장, 즉 오행의 기를 담는다는 의미의 오장은 해 부학적 오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의 흐름이기 때문에 생명 활동의 전반이 기의 흐름과 직결 되고, 외부적 자연의 흐름과 밀접한 상호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믿어진다. 특히 정신적 현상의 경우 오행의 기가 모인 오장에 나누어 관련시키는 독특한 관점이 나타난 다. 이러한 설명은 물질을 구성하는 극미(極微)의 단위 를 분석함으로써 이것이 가합(假合)임을 드러내려는 데 역점을 둔 인도적 사고와 구별된다. 《황제내경》은 생명 현상을 구성 요소에 환원시키는 환원주의를 거부하고 전 체적 유기적 관점을 견지하며 내부적 생명의 흐름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릇으로서의 육신을 소중히 여기는 생각이 특히 두드 러진 것은 육신을 닦는 수련 체계를 제시하는 신선 사상이다. 이는 감각적 욕망을 절제한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육체를 이루는 기를 변화시켜 맑은 중화지기 를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나아가 신선 사상에서는 기가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대전제를 받아들이고, 흩어지지 않는 기[金丹]의 획득에 착안하였다. 신선 사 상이 점차 체계화되면서 불변하는 근원적 기를 선천기 (先天氣), 변화하며 소멸하는 기를 후천기(後天氣)라고 구별하고 선천기로 구성된 육신을 양신(陽身)이라고 부르는 견해도 나타났다. 이는 불교의 수용신과 흡사한 성격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기론적 세계관에 바탕하여 그릇으로서의 육신을 중시하고 인간의 일상적인 경험적 삶을 중시하는 관점으로 전개된 경우도 있다. 이는 청대(淸代) 기학(氣學)의 경 우로써 형이상적 도(道)에 치중하는 관점을 전환시켜 형이하적 기(器)를 중시하는 관점으로 바꿀 것을 강조하였다. 이는 윤리적으로는 육신과 관련된 욕망을 긍정하고 감정의 자연스러운 발현을 중시하는 이론[遂欲達情論] 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욕망을 엄격히 통제하고 도덕주 의적 이상 가치 실현을 강조하는 성리학적 수양론에 반대하는 것이다. ※ 참고문헌 Mircea Eliade, Yoga : Immorrtality and Freedom, Trans. by Willard R.Trask,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5/ Vishwanath Prasad varma, Early Buddhism and its Origins(최봉수 역, 《원시 불교와 형이상 학》, 경서원, 1991)/ 中村元, 《自我 と 無我》, 平樂寺書店, 1963/ 張立文, 《中國哲學範疇發展史》, 中國人民大學出版社, 1986/ 小野澤精一 等, 《愾の思想》, 東京大學出版會, 1978/ 石田秀實, 《氣流れ る身體》, 平 河出版社, 東京, 1993. [金洛必]
육신
肉身
[히]בָּשָׂר · [그]σῶμα · [라]corpus · [영]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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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병든 인간의 육신을 회복시키는 일이 예수의 치유 기적이었다(베짜다 못의 병 자를 고치는 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