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화

肉化

[라]incamatio · [영]inca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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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인 성자가 육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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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인 성자가 육화하였다.


말씀이신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일. 그리스도교 신학의 근본 개념. "강생" (降生) 또는 "성육신"(成肉身)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개념과 의미]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고대 신화나 전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신적 존재가 인 간 형상을 취하여 일시적인 변형(metamorphose)을 일으 켰다거나 더 이상 신이기를 포기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적인 것이 비신적인 것, 특히 인간, 즉 구체적이고 일상을 살며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간과 관 계하며 나아가 이 인간을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절대 와 현상, 초월과 범주, 진(眞)과 속(俗)의 관계에서 파악 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곧 그리스도교 계시의 중심 신비 이자 모든 종교의 본질적 내용이다. 종교사적 의미 : 종교사적으로 볼 때 신적 존재가 육 (인간)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신성의 현현 형태 가운데 하나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표상이 업(kama)이나 윤회 사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라마교에서 달라이라마는 환 생한 부처이다. 힌두교에서도 신이 세상 안에 육화된다 는 가르침이 있는데, 크리슈나와 라마는 육화한 비슈누 신이다. 고대 세계에서는 왕가의 선조들을 신적(神的) 출신으로 여겼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삼위 일체의 제2위 인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육화를 통해 인간 본성을 지녔 으며 참 인간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인간 본성은 유일한 위격(Persona)인 하느님의 아들에 속하며 이 위격은 자기의 본성 중 하나인 인간 본성을 소유하고있다. 성서적 의미 : 하느님 말씀의 육화는 요한 복음 1장 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ὁ λόγος σάρξ ἐγένετο)에 근원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요한 복음사가에 의하면 나 자렛의 예수 안에 창조 이전의 무시간적인 하느님의 존 재가 나타나 있다. 즉 예수의 육 안에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λόγος)이 표현되었다(2요한 7 : 1요한 4, 2). 공관 복 음서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에 큰 비중을 두어 예수 의 부계(父系)가 신적임을 증거하려 하였다(동정녀 잉태, 성령에 의한 잉태 : 마태 1, 18-25 ; 루가 1, 26-35). 사도 바 오로는 육화의 신비에 대해 언급하였다(갈라 4, 4 이하 ; 필립 2, 6-8 ; 골로 1, 15-20). 이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 는 육을 취한 하느님 말씀으로서 자기의 신적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일치는 신성 과 인성의 혼동적 결합이 아니라 위격적 결합(unio hypostatica)이다. 육화는 위격적 결합에서 구체적으로 표현 된다. 즉 성부의 독생자인 성자는 참으로 인간 육(肉, σάρξ)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살았던 말씀으로서 죄 외에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은 분이었다는 것, 그래서 역사 적 인물인 예수, 다윗의 후손이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났 으며 나자렛에서 자라 예루살렘에서 십자가형을 받아 죽 었고 사흘 만에 부활한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참 하느님 의 아들, 참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하나이요 동일한(εἷς καὶ ὁ αὐτός) 인격인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아버지 하 느님과 같이 실제로 그리고 온전히 흠 없는 하느님이며 또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참으로 온전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교의적인 의미 : 그리스도교의 중심 신비인 예수 그리 스도의 위격 안에서 세상을 창조하고 세상을 초월하여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무한한 인격체 인 하느님, 자기 자신을 자유로운 은총 가운데 '밖' 을 향 하여, 즉 비신적인 것에로 전달하는 하느님에 대한 가르 침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범주 세계에 제한되어 있으면 서도 자유로운 인격체로 표현되는 인간 존재와 그 존엄 성에 대한 가르침 및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의 일치에 대한 가르침이 그 특수 내용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하느님과 인간의 위격적 결합에서 자기 자신을 세계에 전달하는 사랑인 하느님의 고유 본 질과 세계의 본질이 비로소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느님 의 자기 전달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육화한 말씀으로서 하느님의 자기 전달로 이해 된다. 하느님은 완전히 자기 자신을 전달하는 분이어서 하느님의 자기 전달을 받아들인 인간은 하느님의 절대적 인 의지로 인해 받아들인 자기 전달로 정해진다(아우구스 티노가 말한 ipsa assumptione creatur), 말하자면 자기 전달이 자기 전달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하게 되고 이 행위를 완 전히 자기의 것으로 삼아 자기를 비우는 하느님과 일치 하는 의지의 현현(顯顯)이 된다. 수용을 통해 스스로 절 대적이 된, 영적이며 창조적인 실재가 그 본질에서 세계 의 한 부분인 한, 이 세계는 창조적으로 받아들인 하느님 의 자기 전달(예수 그리스도)과 함께 하느님에 의해 원칙 적으로 구원에 받아들여진다. 이 수용은 역사적으로 예 수 그리스도 안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최종적인 것 이 되었다. 유한자에게 하느님의 자기 전달이 가능하며 이런 하느님의 자기 전달 가능성이 육화에서 그 정점에 이르는 한 육화는 그 자체로 신비이다. [교회의 가르침] 육화의 이유 : 교회는 삼위 일체인 하 느님의 제2위인 성자가 육화한 이유를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말씀' 인 성자는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 시켜 구원하고자 육화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병들었고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제 대로 알지 못하는 어둠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 하느님을 사랑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우 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 죄 때문에 속죄의 제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1요한 4, 10). "우리는 아 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셨음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1요한 4, 14). "그분이 죄를 치워 버리기 위 하여 나타나셨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1요한 3, 5). 둘째, '말씀' 인 성자는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 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 리 가운데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 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셨으니, 그것은 우리가 그분 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1요한 4, 9). "과연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이마다 모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 습니다"(요한 3, 16). 셋째, '말씀' 인 성자는 인간에게 거룩함의 표양을 보 여 주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이는 "여러분은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시오"(마태 11, 29). "나는 길이요 진 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 께로 갈 수 없습니다"(요한 14, 6)라는 성서 구절로도 확 인된다. 그리고 성부는 예수가 영광스럽게 변모한 산에 서 이렇게 지시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 7). 그렇기에 성자는 참으로 지복의 표양이며, 새 율 법의 기준이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하시오"(요한 15, 12). 이러한 사랑에는 그분의 표양 을 따라 실제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 다. 넷째, '말씀' 인 성자는 인간을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 하게" (2베드 1, 4) 하기 위해 사람이 되었다. "바로 이러 한 이유로 말씀은 인간이 되시고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 의 아들이 되신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말씀과 친교를 맺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은 인간 이 되셨다"(이레네오, 《이단 반박》, 3, 19, 1) "하느님의 아 들은 우리를 하느님과 같이 만들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 "(아타나시오, 《육화론》, 54, 3). "하느님의 외아들은 당 신 천주성에 우리를 참여시키시어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 고,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토마스 아 퀴나스, 《소품집》 57) 그렇기에 미사 중에 사용되는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는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 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 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참 하느님이며 참 사람 : 육화의 신비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상(像)의 세 차원, 즉 참 하느님이고 동시에 참 인간이면서도 이 둘이 하나의 인격을 이루고 있다는 내 용은 수많은 오해와 반대에 부딪치며 교회의 가르침 안 에서 견지되어 왔다. 육화한 하느님 말씀의 신비는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는데, 안티오키아 학파와 알 렉산드리아 학파가 대표적으로 시도하였다. 이 두 학파 는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하느님이고 참으로 인간인데도 한 분이라는 것을 입증하려 했지만, 예수 그 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각기 상반되 어 오류에 빠질 가능성을 지녔고 실제로 오류를 범했다. 이런 오류에 대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혹은 인 성을 손상시키는 온갖 시도를 반대하여 두 본성의 온전 성을 명백히 단언하였다. 이런 오류에 대한 교회의 반응 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인(神人)의 일치를 유지하면 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특성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이 되었으며 고통받고 죽고 부활한 아들은 참 하 느님으로서 영원한 아버지와 한 본성이다(니체아 공의회). 동시에 아담의 후예로서 아담의 삶과 죽음에 참여하는 완전한 인간이며, 아담의 자식과 한 본성이다(콘스탄티노 플 공의회 · 칼체돈 공의회). 신성과 인성의 차이에도 불구 하고 그는 하나의 동일한 위격이며, 동정녀이며 하느님 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서 인간으로 태어난 하느님의 영 원한 아들이다. 그는 본질이 동등한(ὁμότιμος) 아버지의 아들이다. 즉 "아버지의 말씀이시요,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낳음을 받았으나 창조되지 않은 독생 성자 이다" "그는 삼위 일체의 한 위격이며 영원하다" , "참되 고 본질 동등한 아들이시기에 우리와 같은 양자가 아니 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신성은 구원의 중재자라는 자 신의 위치, 예수 그리스도의 직무의 전제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죄 외에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참 인 간적 삶을, 다시 말해서 참 인간적 행위, 참 인간적 자 유, 참 인간적 의식을 가진 삶을 살았던 참 인간이다. 그는 가짜 몸 또는 천상적 몸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참 되고 고통을 아는 육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인간적이고 감 각적 · 영적이며, 창조되고 영원으로부터 선재하는 것이 아닌 영혼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성이 일시적으로 인간 형태로 나타났다고 주 장하는 그리스도 가현설(docetismus)과 모달리즘(modalismus) 또는 그리스도 양자설(adoptianismus)의 입장 등 극 단적인 '말씀-육(logos-sarx) 그리스도론' 은 이단이다. 예 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본질이 동등하고, 아담의 후손이 고 참 인간의 모습으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우리의 형 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의지와 구분되고, 하느 님을 두려워하고 또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활동하 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의지는 그리스도 단의설(monnotheletismus)을 반대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 간성 안에서 아버지의 본성적 아들이고 흠숭받을 자격이 있으며, 무죄성 · 거룩함 · 안전성 · 기적의 힘과 처음부 터 하느님의 직관을 포함한 그의 사명에 무류적 지식이 주어졌다. 참 인간인 하느님의 아들 : 강생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 은 "인간의 본성을 취하였지만 흡수하지는 않았으므로" (사목 22항 52)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간적 영혼과 인간적 육체의 온전한 실재성을 고백해 왔다.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의 손으로 일하셨고, 인간의 지력으로 생각하셨고, 인간의 의지로 행동하셨으며,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시 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참으로 우리 중의 한 사람이 되셨으며 죄를 빼고서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 으셨다" (사목 22항 §2). 동시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간 적 본성이, 인성을 취하신 하느님 아들의 신적 위격에 고 유하게 속한다는 것도 강조하였다. 그렇기에 그분의 존 재와 행위는 "성삼위 중의 한 분"의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의 이성적 영혼도 취하셨 다(DS 149). 이 인간의 영혼은 인간의 인식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이 인식은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자신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의 역사적 조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이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아들은 "지혜와 키가 자 라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해 가는" (루가 2. 52) 인간 조건을 받아들였으며, 그것 때문에 경험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질문을 해야만 했다(마르 6, 38 : 8, 27 ; 요한 11, 34 등). 그러나 이러한 하느님 아들의 진정한 인간적 인식은 그분 위격의 신적 생명을 표현하 는 것이다(DS 475) "하느님 아들의 인간적 본성은 그 스 스로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결합을 통해서 자신 안에서 하느님에 해당되는 모든 것을 알아보고 드러냈다"(증거 자 성 막시모, 《문제와 의문》 66). 하느님의 아들이 당신의 아버지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친밀하고 직접적인 인식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마르 14, 36 ; 마태 11, 27 ; 요한 1, 18 ; 8, 55 등). 또한 인간적인 인식 안에서 성자는 인간 마 음속에 감추어진 생각들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의 통찰 력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마르 2, 8 ; 요한 2, 25 ; 6, 61등). 그렇기에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1)는, 그리스 도는 서로 대립되지 않고 협력하는 신적 및 인간적 두 의 지와 두 본성적 작용을 지니며, 따라서 성부께 대한 완전 한 복종 안에서, 인간 구원을 위해 당신이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으로서 결정하신 모든 것을 인간으로서도 원하셨다고 고백했다(DS 556~559). 그리스도의 인간적 의 지는 "당신의 신적 의지와 만나, 저항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이 전능한 의지에 순종함으로써 그에 따른 다" (DS 556)는 것이다. 육화한 그리스도는 참된 인성을 취하여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육체는 한정적인 것이었다(DS 504). 그래서 예수의 인간적 모습을 묘사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로, 제2차 니체아 공의회(787)에서는 예수의 인간적 모 습을 성화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당하다(DS 600~603) 고 인정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체가 지닌 구체적인 특성들은 하느님 아들의 신적인 위격을 표현한다. 그분 은 인간 육체의 모습으로 그려진 자신의 모습을 공경할 수 있게 하였다. 신자들이 그분의 모습을 공경하는 것은 "그 모습 안에서 그 모습이 묘사하고 있는 위격을 공경 하는 것" (DS 601)이기 때문이다. [토착화적인 육화에 대한 해석] 그리스도교의 육화 원 리는 신과 인간(세계)을 상호 내재적 관계에서 이해하게 해 줌으로써 동서양 사상(특히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 에 기여할 수 있는 주제이다. 속(俗)과 진(眞)의 비일비 이적(非一非二的) 일치에 근거한 불교의 진속 평등 사상 은 진(하느님, 신성)뿐 아니라 속(인간 세계 · 인성)의 의미 를 밝혀 주는 사상으로 육화의 근본 원리로 이해될 수 있 다. 이 진 · 속 일치의 관계를 원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 [俗]은 자신을 전달하는 삼위 일체 하느님에 의해 전적 으로 창조되었다. 이런 면에서 그의 인간 본성은 신성과 는 구분되나(非一) 다른 모든 피조물의 것과 일치한다 (非二)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인간 본성은 하느님 말 씀과 위격적 결합을 이루고 있으며, 이렇게 해서 예수 그 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는 신성과 인간성이 비일비이적인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 사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 도에 대하여 다른 두 본성과 함께 위격의 단일성을 이야 기한다. 이는 신적 위격 안에 두 본성(진성과 속성)이 비 일비이적 방법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적 위격 이 인간 예수 안에서 우리와 똑같은 육이 되었다고 한다 면, 이 육은 그 안에 신성과 인성의 비일비이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음을 말해 준다. 즉 예수의 인격 안에는 신적 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비일비이적 일치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육에 대한 체험은 곧 신 적 위격의 체험이 되며, 진(하느님) 자체에 대한 체험이 된다.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요한14, 9). 나아가 진 자체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속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경륜적 관계로 써 존재하며, 이 때문에 신의 체험은 결코 이 세계[俗]를 떠나 있는 어떤 외계의 존재에 대한 체험이 될 수 없음을 알려 준다. 육화의 주제는 이렇게 진과 속의 인격적 관계 와 이들 각각의 참 모습을 밝혀 주며, 또 이들의 인격성 을 찾아 준다. 진과 속의 인격적 관계를 이야기한다는 것 은 진은 속, 속은 진이 아니며(非一) 속 없는 진, 진 없는 속은 이야기될 수 없다(非二)는 것을 나타낸다. 나아가 진은 그 본질 안에 속과의 비일비이적 관계를 갖고 있으 며, 속은 진에서 비로소 그 본질과 모양이 밝혀진다는 것 을 표현한다. 이 차원에서 진과 속의 본질 동등성과 상이 성, 그리고 인격성이 이야기되는 것이다. 진과 속의 비일 비이적 관계에서 볼 때, 육이 된 하느님은 성부와는 다르 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가 "성부와 성자처럼 성령도 육을 취할 수 있다" (《신학 대전》 Ⅲ , 3, 5)고 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육화는 아들 의 고유한 것이다. 즉 성부와 성령의 육화가 아니라 성자 의 육화가 심오한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현대 신학의 시도와 해석] 현대 신학의 새로운 물음 들 : 현대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나' 는 인간적 의식을 갖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은 인간 심리의 '나' 의식을 갖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 '나' 의 인간적 의식은 자기의 인간적인 지복직관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할까? 순례하는 인간 예수의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 지복직관과 일치하는 것일 까? 등 여러 가지 물음을 제시한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의 인간성의 인격적이며 자율적 성격,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심리, 인간적 의식, 인간적 자유에 대한 물음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육화의 원리에서 볼 때 당연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물음에 부정적인 답 변을 하고 있다(《신학 대전》 Ⅲ , 3, 5). 하지만 진 · 속 일치 의 지평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그 본성에 있어서 실 제로 그리고 참으로 인간 의식, 자유 등을 갖고 있는 인 간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하느님과 무한한 거 리를 두고 마주해 있다는 것을 아는 인간 의식, 인간의 자발적인 주체와 자유를 갖고 있는 인간이다. 그러면서 도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까지 늘 있어 왔던 수많은 예언 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구원자 이다. 그리고 그의 인격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서 하느님 과 인간 사이의 결정적인 계약이 주어져 있다. 예수 그리 스도와의 관계에서 모든 인간의 구원이 결정된다. 하느님의 변화성 : 육화는 하느님의 불변성을 고수하 면서 하느님의 변화성에 대해 이야기하게 한다. 하느님 의 변화성을 주장한 대표적 신학자로 라너(K. Rahner, 1904~1984)를 들 수 있다. 라너에 의하면, 하느님은 "그 자체로 변하지 않지만 스스로 타자에게 변화할 수 있다" (Grundkurs des Glaubens, 217). 범주 세계와는 전적으로 다른 역사 밖의 존재인 하느님이 끊임없이 역사 안에서 변화 하며 그 변화를 하느님의 역사로 만들며, 그 때문에 인간 은 생성(生成)의 역사를 하느님의 역사로 받아들이게 된 다는 것이다. 라너는 하느님의 생성을 하느님의 육화에 서 유추해 낸다.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생성에 대한 이야기는 필연적이 라는 것이다. 라너가 전개하는 육화에 의하면, 하느님이 인간이 됨으로써 인간 존재는 충만이란 무한한 신비를 향하여 무제한적으로 열린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볼 때 라너가 하느님의 육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하느님이 자기 의 신 존재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인 간 본성이 곧 하느님의 자기 진술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이다. 하느님이 사랑 가운데 자신을 비신적인 것으로 진 술할 때 인간이 생성된다.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하느님 이 자기 자신을 사랑 가운데 비신적인 것 안에서 진술하 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화의 원리로 '하느님은 무엇인가 될 수 있 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자체로 변하지 않는 자가 스스 로 타자에게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론적으로 말 해서 신은 불변의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생성' 임을, '생 성되는' 하느님, 변화하는 하느님임을 이해하게 해 준 다. 하느님은 자신의 고유함이나 근원적인 것 자체에서 생성되어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다른 것을 접하는 가운 데 스스로 발원된 자가 되면서 생성될 수 있다. 타자에게 서 하느님의 생성은 하느님의 자기 비움에서 가장 잘 나 타난다. 하느님은 지속적인 무한한 충만에 머물러 자기 자신을 비우는 가운데 타자를 신 고유의 실재로 형성한 다. 라너에 의하면, 하느님의 생성 가능성은 하느님의 결핍 표시가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완전성의 절정을 나타내 준다. 하느님이 자기의 무한성과 영원성에도 불 구하고 생성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가장 작은 존재보 다 더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불변한 완전성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철저히 자신을 포기한 예수의 죽 음과 십자가는 가장 신적인 행위이며, 육화의 의미를 행 위(실천)로 보여 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신학은,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역사성을 지니 고 있으며, 인간의 구체적인 인간적 본성은 점점 완전하 게 인간이 되도록 위임받았고, 이 인간됨은 모든 동료 인 간들과 함께 인간 역사 안에서 실현되어야 하고 종말에 가서 비로소 그 완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신인 (神人)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에도 해당한다. 즉 말씀의 인간됨은 전 인류 역사가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때, 즉 하느님이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될 때, 인류 역사의 처음에 시작되었던 것처럼 완성된다. 또 육화와 더불어 인간은 육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적인 존 재, 신을 향한 초월적 존재임이 강조된다. 또한 라너는 '진화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에 게 육화의 신비를 이해시키려고 하였다. 라너에 의하면 현대인은 '진화적' 세계관을 알고 있다. 현대인에게 세 계는 '자연 역사' 이다. 세계는 정적인 크기가 아니라 생 성되는 세계이며, 자연 역사와 세계 역사는 일치를 이루 고 있다. 완전히 하나인 이 역사는 "앞을 향하여 나아가 는" 역사이다. 라너에 의하면, 고차원적인 것으로의 이 런 자기 초월은 비록 역사적 존재자의 행위이긴 하나, 오 직 하느님의 절대적 존재의 힘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하 느님은 유한한 존재자의 본질적 요인이 될 수 없다). 자기 초월 개념이 신적 운동으로 그리고 신적 운동이 자기 초월의 내어 줌으로 파악된다면, 물적 · 영적 세계의 발전은 세 계와 역사 안에 있는 본질의 차이를 부정하거나 간과하 지 않고서도 하나의 역사로 이해될 수 있다. 창조된 존재 가 결정적인 자기 초월을 하는 것은 창조된 정신이 하느 님 존재의 무한한 신비의 직접성 안으로 자기 초월을 하 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 초월은 하느님의 '협력' 을 절대 적으로 필요로 하며, 이 협력은 자비로운 하느님의 자기 전달로 이해된다. 이렇게 볼 때 창조된 존재의 단계적 자 기 초월 안에서 일어나는 세계 역사와 사상 역사는 하느 님의 자기 전달에 의해서 지속된다. 인간의 자기 초월과 하느님의 자기 전달이 역사 안에서 일어난다면, 이는 곧 그리스도교 육화의 가르침에 원천을 두는 것이다. 모든 물질적인 것이 영적 · 위격적인 영역 안으로 자기 자신 을 초월시키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오직 영적인 것(인간과 천사)의 요인으로만 완성되는 가운데 실존하게 되며 완 성된 영적 창조에서 절대적이며 무한한 존재인 하느님에 게 절대 접근이 이루어지는 한 자기 초월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육화한 말씀은 그리스도 영의 자기 초월 과 하느님의 자기 전달의 더 높은 단계"가 아니라, 오히 려 세계 신격화의 극치이며 중심이다. 세계의 신격화가 은총과 영광 가운데 막을 수 없는 극치에, 그리고 역사적 으로 나타난 승리에 도달할 때 말씀이 '개체' 로서 필연 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자기 자신을 세계 에 전달하기에 그리스도가 있다. 또 이 전달을 수행하고 자 하는 그리스도는 단순히 구원의 가능한 전달자가 아 니라 최종적인, 그리고 역사적으로 나타난 전달 자체이 다. (⇦ 강생 ; → 그리스도 가현설 ; 그리스도 단성설 ; 그리스도 단의설 ; 그리스도론 ; 그리스도 양자설 ; 독생 자 ; 라너, 칼 ; 모달리즘 ; 예수 그리스도) ※ 참고문헌  K. Rahner, 《SM》 2, pp. 110~118/ 一, Zur Theologie der Menschwerdung, Schriften zur Theologie IV, Einsiedeln, 1960, pp. 137~155/ F. Malmberg, 《HThG》 , pp. 706~715/ J. Neuner · J. Dupuis, The Christian Faith in the Doctrinal Documents fthe Catholic Church, Bangalore, 1983, pp. 143~198/ H. Kiing, Menschwerdung Gottes, Freiburg · Basel · Wien, 1970. [李濟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