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덕
倫理德
[라]virtus moralis · [영]moral vir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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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생활을 하도록 하는 덕이 며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지성과 양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덕. 가장 중요한 윤리덕은 네 가지 추요덕(樞 要德)인 지덕(智德, 현명) · 의덕(義德, 정의) · 용덕(勇 德, 용기) · 절덕(節德, 절제)이다. [의 미] 덕은 윤리적으로 선한 일을 쉽게 행할 수 있는 경향과 능력을 제공해 주는 습성이다. 덕의 종류에는 덕이 추구하는 직접적인 대상이 하느님과 신적 완덕이라면 대신덕(對神德)과, 인간 존재와 창조된 질서에 속한 실재성들이라면 윤리덕(倫理德)이 있다. 과거의 윤리 신학은 그리스도적 실존을 규정하고 원리를 확립하는 의미로 대신덕을 논한 후에 윤리덕을 다루었다. 윤리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근간이 되는 네 가지 덕행을 중심으로 인간 행위의 구체적 규범을 삼았다. 그것은 그리스 철학 에서 유래된 것으로 현명 · 정의 · 용기 · 절제인데, 성 암 브로시오(339?~397)는 네 가지 추요덕(樞要德, cardinal virtue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든 윤 리 생활이 그 위에서 돌아가는 돌쩌귀 또는 경첩들(cardines)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사추덕" (四樞德)이라고 부른다. 또한 윤리덕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정리(正理)에 맞게 행위하도록 하는 덕이며, 사람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바르게 즉 지성과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규율하는 덕이다. 이런 윤리덕은 그리스도교 밖에서도, 즉 공 자 · 맹자 ·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등도 이런 윤리덕을 가르치고 이에 따라 수행하였다. 그러나 인류 사회에 알려지고 실천되는 윤리 규범과 윤리덕은 외적으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하고 실천되어야 하겠지만, 내용상으로는 계시 진리의 원리에서 측정되고 인식되어 시행되어야 한다. [원 천] 인간은 누구나 윤리적 선을 행하기 위한 정신 적 · 육체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능력은 단순히 선한 일을 하는 습성, 즉 덕에로 발아(發芽)할 수 있 는 씨 또는 기초이지 완성된 덕 그 자체는 아니다. 인간은 완성된 덕을 태어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개인의 자연적 능력에 의해 서 덕을 습득(習得)해야 한다. 윤리덕은 인간의 힘으로 획득되는 덕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윤리덕을 습득덕(習 得德)이라고도 부른다. 습득덕은 선한 행위를 쉽게 하도 록 준비시킨다. 즉 정신적 · 육체적 능력들을 완성하게 해 준다. 습득덕은 자연적 능력을 전제로 하고 그것을 완 성하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선한 행위를 하는 것만이 아 니라, 쉽게 · 견실하게 · 신속하게 그리고 기꺼이 하게 하는 것이다. 윤리덕은 최초의 선행으로 시작이 되는 것이 지만, 그러한 선행의 거듭된 반복과 숙련을 통해 하나의 뚜렷한 지속성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덕이 된다. 따라서 윤리덕의 근원은 인간의 육체적 · 정신적 자질 또는 본성에 근거한다. 이런 의미에서 윤리덕에는 자연적 윤리덕과 초자연적 윤리덕이 있다. 자연적 윤리덕은 사람이 자기 지성과 양 심이 요구하는 대로 바른 행위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 람이 자기 노력으로써 획득하고 습득하는 것이다. 초자연 적 윤리덕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입하시는 것이다. 신덕 · 망덕· 애덕을 토대로 한 윤리덕은 모두 초자연적 윤리덕이다. [목 적] 윤리덕은 인간의 자연적 목적 즉 인간의 성품을 완성에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며, 성숙한 도덕적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윤 리적 형성(formatio)을 의미하면서, 육욕을 거슬러서 방 어하며, 본능적 충동을 제어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습 성인 것이다. 따라서 윤리덕을 다른 의미로 자연덕(自然 德)이라고도 한다. 가장 중요한 종합적 윤리덕은 네 가 지 추요덕(樞要德)인 지덕(智德) · 의덕(義德) · 용덕(勇 德) · 절덕(節德)이다. 그 외의 모든 다른 자연적 덕은 사 추덕(四樞德)에로 귀착한다. 그러나 푹스(Josef Fuchs, 1912~ )는 그러한 덕 체계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주장하 였다. 왜냐하면 현명의 덕은 다른 세 가지 추요덕들보다 더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덕행 들이 이 현명의 덕에 의하여 통제를 받기에 종류가 다른 덕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중요한 기초적인 덕들, 예컨대 겸손 · 순명 · 감사 · 형제애 등과 같은 덕들은 이 사추덕의 체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추요덕의 체계는 다른 덕들로 더 보충되어야 한다. 특 히 헤링(Bernhard Haring, 1912~1998)은 네 가지 추요덕에 이어 전형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인 겸손의 덕을 다섯째 추 요덕이라고 하였다. [내 용] 지덕 : 인간은 각자 자기 양심의 판단으로 무 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고, 이 판단과 행동에서 자기의 구원 문제가 결정된다. 따라서 양심의 소리는 하 느님이 인간에게 하시는 구원의 말씀이고 대답을 요구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실생활에서 창조와 구원의 진리에 맞는 것이 무엇이며, 구체적 실존의 상황에서 하느님은 무엇을 요구하고 인간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판가름 해 주고 주님의 때를 파악하게 하는 것이 지혜의 임무이 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적 의미로써 지덕은 인간이 어 떻게 해야 주님 앞에서 올바로 걷는지 알려 주는 역할을 하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지덕은 윤리덕을 정리하고 판 단해 주며 권유하고 바로 이끌어 준다. 사람의 윤리덕을 바로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지혜가 필요한 것이고, 또 선을 올바로 알아보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고 지향할 수 있 다. 누구든지 선을 가지려면 슬기로워야 하고 슬기로운 자만이 선을 차지할 수 있다. 대신덕이 지덕에게 아무런 직접적 영향을 주지 않지만 지덕으로 은혜를 알고 적합한 장소와 시간을 알아들어 실천하는 데 돕고 있다. 선 (善)을 위한 지(智)의 기능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바른 상황 판단이고, 둘째 적절한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다. 즉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고 좋은 방법을 가 르쳐서 당황함이 없이 바른 행동을 실천하게 한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모든 것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때와 장소 가 된다(S.Th. Ⅱ-Ⅱ 51, 4 ; 57, 6). 의덕 : 정의 또는 올바름은 가장 중요한 성서적 개념 중에 하나이다. 성서에서의 정의는 일반적인 윤리덕이며 흔히 하느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킨다는 의미로 사용된 다. 그리고 성서는 정의에 종교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이 는 곧 하느님의 자비이며 구원의 선물이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주장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구약에서는 윤리덕으 로 사회적 정의의 의미를 쓰나 올바름과 완전한 선성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레위 19, 15. 35-36 ; 신명 1, 16 : 16, 18-20). 넓은 의미로서 정의는 율법에 충실함과 신적 계명의 완전한 준수를 의미한다(창세 18, 19 ; 신명 6, 25 ; 잠언 11, 3-10 ; 12, 28 : 이사 56, 1-2 : 에제 18, 5-24). 신약에서 예수는, 정의는 율법에 대한 충실이라는 성서적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정의가 복음의 중심은 아니 지만 예수는 윤리적 생활이 참된 정의이고 하느님의 계명에 대한 내적 순종이라고 정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 다. 산상 설교에서 예수는 제자들의 참된 정의를 규정한다. 정의는 윤리덕을 뜻하므로 복음이나 서간에서도 완 전한 생활과 거룩함이라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였다(마태 21, 32 ; 2베드 2, 21). 정의는 간혹 다른 덕목과 구별되는 덕, 즉 사회적 정의라는 의미에서 사회덕으로 나타난다 (에페 6, 14 ; 1디모 6, 11 ; 2 디모 2, 22). 용덕 : 용기라 함은 어떤 인간 감정에서 나오는 그릇 된 공포나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옳은 일을 위해 역경과 죽음까지라도 불사하는 굳은 마음의 자세이다. 그렇다고 고통이나 죽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선을 보호하고 지키는 방편으로 곤경을 감수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고통이나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무감각하다면 그것은 용 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용기는 투지와 인내를 내포하고 있다. 용기가 어떤 무력적 대항을 의미할 수 있겠지만 선과 진리를 두려움 없이 고백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용기의 특성으로 인내와 지구력을 들었다. 용기가 없이는 항구한 마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S. Th. Ⅱ-Ⅱ 123, 6). 인내로 영원한 생명을 차지한다는 것이나 의를 위해 고통을 받는다는 성서의 이야기는 이런 관 련성에서 알아들을 수 있다(마태 5, 5 ; 루가 21, 19 ; 로마 5, 4 : 2고린 6, 4). 용기도 목적이 뚜렷하게 있을 때 가치가 발휘된다. 무엇 때문에 참고 견디는 용기가 있는지 해 명이 안 된다면 그것은 만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의 가 없는 용기는 죄의 도구밖에 안 된다고 암브로시오는 말했다(Deoficicis I , 35 ; 《PL》 16, 75). 절덕 : 다른 덕행들이 자기 밖의 문제들에 대한 것이 라면, 이것은 인간 자신을 수련하고 목적 달성에 이르도록 힘을 기르는 역할을 한다. 특별히 육체와 욕망을 조절하여 몸의 균형을 이루고 능력을 안배하고 자기 스스로 를 조절하는 것이다. 무절제에 빠지기 쉬운 인간에게 이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강조할 필요가 없다. 절제는 무절제함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지 의욕을 억압하거나 상 실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우구스티노는 이것을 하느님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순결하게 보존하는 사랑이 라고 표현하였다(De moribus Ecclesiae Catholicae Lib. I, 15 ; 32, 1322). (⇦ 용덕 ; 의덕 ; 절덕 ; 지덕 ; → 대신 덕 ; 덕 ; 사추덕) ※ 참고문헌 Karl-Heinz Peschke, Christliche Ethik, Grundlegungen der Moraltheolgie, Trier, Paulinus Verlag, 1. Auflage, 1997/ H. Rotter · G. Virt, Neues Lexikon der christlichen Moral, Innsbruck . Wien, Tyrolia Verlag 1. Auflage, 1990/ B. Haring, Das Gesetz Christi, Bd I, Erich Wewel Verlag, Miinchen · Freiburg, 1965/ 유봉준, 《기초 윤리 신학》, 가톨릭 출판사, 1978. [金政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