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 사목회

矯導司牧會

[영]Prison Apost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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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초기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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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초기의 활동.


재소자들을 신앙으로 교도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데 목적을 둔 특수 사목 단체. 서울을 비롯 춘천, 대전, 인천, 수원, 원주, 대구, 부산, 마산, 광주, 전주, 제주 등 전국 12개 교구에 교도 사목회, 교도 사목 후원 회, 교도소 후원회, 구치소 후원회 등의 이름으로 동일 한 활동을 하는 조직이 갖추어져 있다. ① 서울의~ 교도소의 사형수를 위한 활동은 1969년도에 세종로 본당 박귀훈(朴貴勳, 요한) 신부, 김홍섭(金洪燮) 판사,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고 폴리나 수녀와 고중열 등 에 의해 이미 전개되고 있었다. 이때 중요한 문제로 대 두된 것은 사형수의 신앙 문제와 장례비 등이었는데, 이 문제들을 항구적으로 또 공동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사형수뿐만 아니라 모든 수감자를 활동 대상으로, 뜻을 같이하는 회원들을 모으기 시작하여 1970년 4월 명동 성당에서 창립 총회를 개최하였다. 여기서 회의 명칭을 '가톨릭 서울대교구 교도소 후원회' 라고 칭하고 총재에 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을 추대하고, 회장에 김정수(수 산나), 부회장에 김자선(엘리사벳), 나희균(크리스티나) 등을 선임하였다. 서울 구치소, 영등포 구치소, 의정부 구치소, 성동 구치소 등과 불광동 소년원 등을 활동 대 상으로 하였는데 이 중에서 소년원은 1974년부터 본격 적인 활동을 시작하였고 1979년부터는 서대문 감별원 원생에 대한 교화도 시작하였다. 1970년 7월 장홍선(莊弘善, 요셉) 신부가 초대 지도 신부로 부임한 이후 자원하여 구치소에서 미사를 봉헌하 고 사형수들을 돌보면서 그들을 회원들과 자매 결연을 맺어 주는 등 물심 양면의 활동을 시작하였고 봉사자들 을 위한 피정을 실시하여 봉사자들의 신앙심과 자질 향 상에 힘썼다. 1972년 5월 명동 성당 문화관에서 어머니 성가 경연 대회를 개최하여 개창 성가를 보급하면서 아 울러 교도 사목을 널리 소개하였고, 6월에 여형구(呂瑩 九, 미카엘) 신부가 제2대 지도 신부로 부임하여 9월에 연예부를 신설하고 재소자들을 위한 본격적인 위문 활동 에 나섰다. 1973년과 1974년에는 어머니 성가 경연 대 회를 거듭 개최하였다. 1974년 2월 각 교도소에서 '5분 명상' 을 실시하였고 신림동, 천호동, 면목동, 혜화동, 돈 암동 본당에서 책임자를 선정하여 후원회원을 확보하는 데 힘썼다. 1975년 김병기 신부가 제3대 지도 신부로 부 임하여 7월에 기관지인 《빛》을 창간하였다. 1976년 5월 제5차 성가 경연 대회가 끝난 후 한정관(韓貞瓘, 바오 로) 신부가 제4대 지도 신부로 부임하고 분도회 양 빌리 치아 수녀가 재소자 교리 교육을 담당하였다. 같은 해 8 월에 기관지 《빛》을 《새남터》로 바꾸어 1979년까지 3호 를 간행하였다. 1978년 7월 안경렬(安慶烈, 토마스 아 퀴나스) 신부가 제5대 지도 신부로 부임하면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소속 최 크리스티나 수녀가 재소자 교리 교육을 담당하였다. 같은 해 9월, 재소자를 돕기 위 한 바자회를 개최하여 큰 성과를 얻었으며 10월에 성동 구치소에서 재소자를 위한 교리 암송 대회를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1979년 기관지의 명칭을 《새남터》에서 《빛》으로 다시 바꾸어 1981년 3월까지 18호를 간행한 후 경비와 시간의 절감을 위해 폐간하였다. 1979년 차 인현(車仁鉉, 알로이시오) 신부가 제6대 지도 신부로 부 임하였으며 1980년 정기 총회에서 단체의 명칭을 '교도 사목 후원회' 에서 '교도 사목회' 로 바꾸었다. 1981년 한동안 지도 신부 없이 총대리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 교의 감독 하에 있다가 1983년 3월 최선웅(崔善雄, 야 고보) 신부가 제7대 지도 신부로 부임하였다. 1985년 주수욱(朱秀郁, 베드로) 신부가 제8대 지도 신부로 부임 하여 교도소에서의 미사와 교리, 재소자들의 영세와 견 진에 힘을 썼다. 1986년 3월 김현배(金鉉培, 프란치스 코) 신부가 제9대 지도 신부로 부임하여 재활원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 무기 수 박진영과 부산의 교리 신학원 이부순의 혼배성사가 이루어져 교도 사목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고조시켰 다. 1987년 추영호(秋榮鎬, 요한) 신부가 제10대 지도 신부로 부임하여 미사, 교리, 상담 등 기본 활동을 강화 하고 두 차례에 걸쳐 교화 행정 및 교정 교육의 문제점 과 개선을 위한 정책 세미나와 수차례에 걸친 사형 제도 폐지 강연 등을 통해 재 · 출소자들에 대한 형제적 사랑 에 교회가 구체적으로 동참하도록 촉구하였다. 1991년 8월 김우성(金祐成, 비오) 신부가 제11대 지도 신부로 부임하여 1994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대교구 교도 사목회의 활동은 초창기 사형수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어 약 80여 명의 사형수를 영세 입 교시켰는데, 그들 중 다수가 안구와 콩팥을 기증하거나 대학 병원에 시신를 기증하기도 하였다. 초창기에 주력 한 사업은 첫째 사형수의 장례 면담 및 재소자에 대한 교리 교육 강화, 둘째 정기 미사와 말씀의 전례 및 교양 교육 강화, 셋째 종교, 교양 서적, 정기 간행물 보급, 넷 째 성세 · 견진성사와 부활절 · 성탄절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1994년 현재 이 단체는 기획부, 출소자 사업부, 홍보부, 전례부, 봉사부, 후원회 관리부 등 6개의 사업부 로 나뉘어져 있으며, 전국의 교정 시설 39개소와 소년원 감별소 16개소에서 활동하는데 특히 서울대교구 내의 14개 교정 시설(남사, 여사, 소년원 포함)에서 월 평균 15 회 정도의 미사와 30여 회에 걸친 교리와 재소자들을 위 한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교도 행정의 문제점 개선을 위한 공개 토론 회, 강연회, 세미나와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한 사회 홍보 물 제작과 학술 세미나 개최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교도 소 수감자들에 대한 서신 사목 활동, 개인 상담 등과 봉 사자 지원 활동도 하고 있으며 출소 후 갈 곳이 없는 무 의탁 출소자들과 생활 능력이 없는 이들을 위해 포천 바 오로 농장, 사창리 사랑의 집, 금호동 평화의 집, 부천 찬우의 집, 군포 소년의 집 등 5개의 재활원을 운영하고 있다. 후원 회원들을 위한 월간 소식지 《빛의 사람들》도 발행하고 있다. ② 지방의~ 1958년 진주에서 이태규 회장과 추 율리아나 수녀의 헌신적 노력으로 교도소 재소자의 교화 사업이 시작되어 3년 동안 61명의 영세자를 입교시키는 등 개과를 올렸 다. 1986년 진주 교도 사목 후원회가 재창립되어 1989 년 마산과 통합적으로 사목 운영되고 있으며 1994년 현 재 약 600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한편 마산은 1987년 설립되어 현재 약 1,700여 명의 회원들이 예비자 교리 반과 성서 공부반을 운영하거나, 전례력에 따른 여러 가 지 축일 행사와 위문 공연을 통하여 재소자들에게 올바 른 사회관과 인생관을 심어 주고 있다. 대전교구 교도 사목회는 1976년 8월에 설립되어 현재 약 450명의 회 원들이 주 1회 미사를 봉헌하면서 교리 지도와 체육 대 회, 성극 발표회, 성가 경연 대회, 성서 퀴즈 대회 등 다 양한 프로그램으로 재소자들을 위로하고 영치금 후원과 VTR을 이용한 심성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전주교구 교 도소 사목위원회는 1991년 6월에 설립되어 재소자 개인 의 사정에 따라 영치금을 후원하거나 재소자의 등급별로 적절한 교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춘천, 인천, 수원, 원주, 대구, 부산, 광주, 제주 교구에서도 이 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활동 중에 있다. 교도 사목회 활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사항들이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요망된다. 먼저 교도 행 정을 정부에만 맡기지 말고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도록 인식의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둘째 출소자의 직업과 복 지 대책 등을 마련하여 재범을 막고 출감 후 지속적인 신 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홍보 활동을 강화 하고 유능한 교리 교사를 확보하며 각 본당에서 후원회 원을 많이 모집하여 이 단체의 모든 활동에 대한 영적, 물적 지원을 계속하는 것 등이다. (→ 교도 사목)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1984, pp. 1052~1053. 〔元載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