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병 尹義炳(1889~1950)
글자 크기
9권

1940년경 박항영 신부 및 신자들과 함께한 윤의병 신부(왼쪽).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호는 죽총(竹叢) 1866년 순교한 윤자호(尹滋鎬, 바오로)의 후손인 윤상 우(尹相雨)의 5남 1녀 중 2남으로 1889년 9월 27일 경기도 안성군 서운면 청룡리에서 태어나, 충북 진천군 백 곡면 용덕리(용진골)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백부 윤상 진(尹相震)에게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903년 용산 예수 성심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20년 9월 18일 명동 대 성당에서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 을 받았다. 장호원 본당 보좌로 발령된 윤의병 신부는 장 호원 본당의 관할구역으로 본당 신설을 준비하던 충북 괴산군 소수면(沼壽面) 고마리(叩里) 본당의 창설 신 부로 부임하였다. 1921년 봄부터 성당과 사제관 신축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6개월 만에 한식과 양식을 절충한 8칸짜리 성당과 한식 사제관을 지었으나, 1923 년에 이르러서야 두 건물의 기와를 이을 수 있었다. 고마 리 본당은 괴산 · 음성 · 증평 · 청주 · 충주 · 보은 · 조치 원 등 24개 공소를 관할하였으며, 공소 신자의 대부분은 옹기 굽는 일에 종사하여 자주 이동하였기 때문에 자주 공소 순방을 하였다. 1923년 숭애의숙(崇愛義塾)을 설 립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25년에 신자들의 부담으 로 12칸짜리 일본식 교사(校舍)를 지을 수 있었는데, 이 학교를 통하여 본당 어린이들은 문맹을 벗어날 수 있었 다. 교사로 있던 오 요셉 부부가 1925년 7월에 의견이 맞지 않아 사임하자, 윤의병 신부는 이들의 일자리를 뮈텔 주교에게 부탁하기도 하였다. 1927년에 수녀원을 건 립하고 이듬해 8월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을 초청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잦은 공소 순방과 학교 운영 등에 의한 과로로 폐렴에 걸려 1932년 9월 경기도 행주 본당으로 전임되어 요양하였다.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1935년 1월 황해도 은율군 남천리에 소재한 은율 본당의 8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36년 11 월 홍세뇌(洪世雷, 필립보)의 기부로 유치원과 회관을 겸한 연와식(煉瓦式) 2층 건물과 2층 사제관을 신축할 수 있었다. 1939년 6월 1일에는 기해박해(己亥迫害) 100주년 기념 순교자 현양 대회를 구월산에서 인근 본 당의 신부와 신자 대표 등 150명을 초청하여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또한 한학(漢學)에 밝고 한시(漢詩)에도 뛰어난 재질을 지녔던 윤의병 신부는 강론의 대부분을 순 교사화로 채웠으며, 어린이들에게도 순교사화를 비롯한 이야기를 잘해 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기해박해 100주 년을 맞은 1939년 1월부터 윤의병 신부가 '죽총' 이라는 필명으로 5촌 조카인 윤형중(尹亨重, 마태오) 신부가 주관하던 《경향잡지》에 군난 소설 <은화>(隱花)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은화>는 일제 말기 《경향잡지》가 1년여 휴간되었던 기간을 제외 하고 1950년 6월호까지 총 125회(상권 69회, 하권 56회) 가 발표되었으나 그가 공산주의자들에게 피납되면서 미 완성으로 남고 말았다. 박해 시기에 교우들이 겪은 생활 과 신앙을 소재로 한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대 단하였으며, 일부는 연길교구의 독일인 신부에 의하여 번역 출판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도 은율 본당을 지킨 윤의병 신부는 6 · 25 한국 전쟁 직전 북한에 남아 있던 성직자들이 일제히 검거될 때 공산당에 체포 되었다. 즉 1950년 6월 24일 새벽 2시 성당 내부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찾아온 정치 보위부원들에게 연행되어 1개월 간 수감되었다가 비밀리에 해주 방면으로 이송된 후 행방 불명되었던 것이다. <은화>는 1977년 은율 출신 인 이계중(李啓重, 요한) 신부가 자비로 출판하였다가, 1986년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재판을 발행한 이래 판을 거듭하고 있다. (→ 은율 본당 ; 《은화》) ※ 참고문헌 《李重神父 華甲紀念文集》,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徐相堯, 尹義炳 神父〉, 《교회와 역사》 78호(1982. 1)/ 李泰浩, 尹義炳 신부' <평화신문> 1994. 2. 20 ; 2. 27.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