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점혜 尹點惠(1776~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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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남장을 하고 서울로 가는 윤점혜 아가타(탁희성 작) .
신유박해 순교자. 세례명은 아가타. 동정녀. 윤유일 (尹有一, 바오로)의 사촌 동생. 윤운혜(尹雲惠, 마르타)의 언니.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금사 2리 점들에서 아버지 윤선(尹鎧)과 어머니 이(李) 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 한강개로 이사하였다. 그녀는 어려서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웠으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동정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처녀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산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이에 집을 떠날 생각을 굳힌 그녀는 몰래 남자 옷을 지어 두었다가 어느 날 남장을 하고 서울에 사는 윤유일의 집으로 도망갔다. 두어 달 후 윤유일의 권 유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윤점혜는 동정 생활을 이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조금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가 입국한 후, 윤점혜는 신앙 생활을 좀더 잘하기 위해 1795년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사망하자, 1796년 경부터 강완숙(美完淑, 골롬바)의 집에서 생활하였고, 1797년에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당시 강완숙 의 집에는 동정녀들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주문모 신부의 명을 받들어 동정녀 공동체의 회장이 되어 수많은 동정녀들을 지도하며 가르쳤다. 그 리고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신덕 함양에도 전념하여, , 계명과 재(齋)를 엄격히 지켜 갔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윤점혜는 강완숙을 비롯하여 여러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도청과 형조 에서 신문을 받은 그녀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고 양근으로 압송되었으며, 7월 4일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현재 수원교구에서 시복(諡福)이 청원된 상태이며, 어농리 성지(경기도 이천군 모가면 어농리 풍덕 마을)에 그녀의 가묘가 세워져 있다. ※ 참고문헌 《邪學懲義》/ 《闢衛編》 《달레 교회사》 上/ <1811년 서한>. 〔河聲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