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학자 律法學者
〔히〕סֹפֵר · 〔그〕γραμματεύς, διδάσκαλος · 〔라〕scriba · 〔영〕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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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유대교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평신도. 예수 시대에 율법 학자 중에는 상인과 장인들, 소수의 사제들과 레위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특히 사두가이파나 바리사이파적인 성향 중 어느 한 성향을 갖고 있었다. '율사' (律士) 또는 '율법 교사' 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용어와 의미〕 본래 기록되어 발송된 어떤 내용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소페르"(סֹפֵר)는 점차 '기록' 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다가 '기록자, 서기관' 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서기관' 을 뜻하는 그리스어 "그람마테 우스" (γραμματεύς) 그려진 대상, 더 흔히는 쓰여진 글 자를 뜻하는 "그람마" (γράμμα)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이처럼 '서기관'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물론이고 다른 언어에서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져 폭 넓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문맹률이 높았던 시절에 글을 기록하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사회나 국가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기관' 은 보통 국가에서 중간 정도의 위치에 있는 공직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통용되었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율법' 을 기록하고 해독하는 서기관들이 자연 그 내용과도 익숙해져, 바빌론 유배 이후에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 학 자' (διδάσκαλος)로 성장하면서부터는 혼용되어 쓰였다. 〔위치와 역할〕 서기관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유대 교의 문헌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집트와 메소포타 미아의 문헌을 참고할 때, 서기관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왕궁과 성전에 존재했다. 그들은 세금 수거 · 강제 노역 · 군사 활동 · 상거래 · 건축 사업 등에 관한 기록을 작성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였다. 예컨대, 이집트에서는 매년 나일 강이 범람한 후 농토를 측량하는 일을 감독하였 고, 상거래와 조약 활동을 기안하였으며, 왕국의 연대기 를 작성하였다. 법조문을 집대성하는 한편 사라지는 전 승을 보존하고, 점성술이나 종교 의식에 정통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서기관은 왕궁의 서신 왕래에 대한 책임을 맡은 왕궁 관리라는 고위직을 맡거나 자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왕궁 관리직에 있었던 서기관들은 대부분 왕국 멸망과 더불어 사라지거나, 주로 율법을 보존하 고 연구하는 율법 학자로 서서히 탈바꿈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사제들도 유배 기간 중에는 전해 내려오는 율법 을 기록하고 보존해서 집대성하는 서기관의 일에 주로 종사하였을 것이다. 한마디로 바빌론 유배는 전통적으로 분화되어 있던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서기관들의 일을 서 로 중첩시키는 현상을 일으켰다. 이로 말미암아 서기관들은 사제들이 전통적으로 맡아 왔던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직무를 함께 수행하면서 위상이 서서히 높아졌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한 위치 로 부상한 시기는 기원전 1~2세기 무렵이다. 율법을 다루는 율법 학자는 예언자들처럼 하느님의 일 꾼으로서 생각되어 사제와 같은 높은 대우를 받았다.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예언 말씀으로 선포하였듯이, 율법 학자들은 기록이나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고 재판하고 설교하는 역할을 맡아 했기 때문이다. 학교와 회당에서 그런 일을 맡아 할 수 있도록 교육받기도 했지만, 이 일은 '하느님의 비밀' 로 여겨져 사제간에만 구전으로 비밀리에 전수되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그들은 고위 사제들과 세속 귀족 가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행정 기관이자 사법 기관이기도 한 산헤드린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유일한 집단이었다. 〔양성 과정〕 고대 근동에서 서기관이 되려면 소년 시 절에 왕궁이나 성전에 가서 읽고 쓰는 기초 과정을 4년 동안 교육받았다. 교육을 마치면 서기관에게서 견습 기간을 갖고, 숙련된 다음에는 잠재적인 보충 인력으로 고 위 서기관 밑에서 실습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훈련은 여 러 가지 전승 자료들을 필사하고 낭독하고 암송하는 과 정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문법 구문 · 격언 모음 · 자연 현상 기록집 · 교훈적인 논문을 통해 올바른 방식으로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익혔 다. 더 높은 공직에 있는 서기관은 몇 개 언어를 알아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신체적인 제재만이 아니라 더 힘들고 쾌적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는 보직을 받게 되리라는 위협을 받으며, 어려운 과목을 익혀야 하였다. 이스라엘에서도 율법 학자가 되려는 사람은 수년 동안 연구 과정을 마쳐야만 했다. 요세푸스(F. Josephus, 37/38?~ 100?)가 14세에 율법 해석을 완전히 습득했다는 기록으 로 보아, 이런 교육은 보통 어려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 다. 그러나 신분이나 직업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정해진 교육 과정을 마치면 율법 학자가 될 수 있었다. 예루살렘의 율법 학자들은 성전 요새의 사령관 · 상인 · 목수 · 수공업자 · 날품팔이꾼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율법 학자들을 지탱해 주는 힘은 사제나 세속 귀족과는 달리 출생이나 재산이 아니라 지식뿐이었다. 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이들은 이름 있는 율법 학자와 개인적으로 면담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모든 전승 자 료와 율법의 해석 방법들을 완전히 익혔다. 이런 교육 과정을 거쳐 종교법과 형법에 관련된 문제 들을 독자적으로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은 '서품을 받지 않은 율법 학자' 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서품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찼을 때에 비로소 서품을 받아 완전한 자격 을 갖춘 율법 학자단의 일원이 되었다. 율법 학자단에 들 어간 율법 학자는 종교법과 의식의 문제들에 대해 독자 적으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형사 소송 때는 재판관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민사 소송 때는 여러 재판관들과 함께 판결을 내리거나 독자적으로 판결을 내 릴 수 있었다. 〔구약성서의 용례〕 구약성서에 처음으로 나오는 서기 관은 판관 드보라의 노래에서 사령관으로 묘사된다(판관 5, 14). 또한 예루살렘 왕궁의 최고 서기관은 재정 · 정 책 · 행정을 맡은 대신들을 가리킨다(2열왕 22장 ; 예레 36, 10).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을 기록한 바룩도 대신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서기관으로 제시되었다(예레 36, 32). 이 점 때문에 이스라엘에 서기관 학교가 있을 법하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집트 나 메소포타미아와 유사한 서기관과 학교 활동이 있었으 리라는 것을 지혜 문학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유배 이후에 가장 잘 알려진 서기관은 에즈라이다. 그 는 사제이면서 모세의 법에 통달한 율법 학자였다(에즈 7. 6. 11). 그는 페르시아 왕 아르닥사싸 1세 왕(기원전 464~424)에게 간청해서 한 무리의 귀향민을 데리고 예루 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왕은 에즈라에게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들과 판사들을 임명할 권한을 위임해 주었다 (에즈 7. 25-26). 에즈라는 유배민들을 이끌고 귀환한 후에, 대사제 가문이면서도 제의를 집전하지 않는 대신 율 법을 사람들에게 읽어 줌으로써 교사와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에즈 8장) . 에즈라와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또 한 명의 서기관은 십일조로 바쳐진 곡식과 술과 기름을 보관할 창고 책임자로, 사제와 레위인들과 함께 임명된 사독이다(느헤 13, 12-13). 이는 서기관이 사회에서 특정한 일에 종사하면 서 예루살렘에서 지도자 역할을 맡아 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사제와 레위인과 서기관이 전통적으로 해 오던 일이 유배 이후에 서로 혼합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에즈라는 사제이자 서기관이고, 귀환민 공동체의 지도자이자 페르시아에서 임명한 공직자였을 것이다(에즈 7장). 레위인들 또한 사람들을 가르치고(느헤 8장), 서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2역대 24, 6 ; 34, 13). 서기관의 활동이 사제 · 예언자 · 환시자 그리고 다른 공동체 지도자에 의해서도 이루어진 것은 유배 시기와 유배 이후 시기에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내용을 기록하고, 편집하고, 집대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기관들이 성서 전승을 창작해 낸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승을 전달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서기관을 위시로 필사 기술을 갖춘 사람 들은 사제 집단과 예언 집단과 그 외 지도자 집단의 일부였음에 틀림없다. 제2 경전에는 서기관이 경건하게 율법을 지키다가 안티오쿠스 왕의 폭정에 대항한 마카베오 혁명(기원전 167~ 164)에 가담한 하시딤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해 준다(1마카 2, 42). 이 무렵부터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강조되어 '서기관' 보다는 '율법 학자' 란 호칭으로 불렸 을 것이다. 승고하고 거룩한 율법을 위해 순교한 율법 학자 엘르아잘은 젊은이들의 모범으로 제시된다(2마카 6, 18) . 〔신약성서의 용례〕 신약성서에는 율법 학자가 일치된 집단으로 여러 차례 나오지만, 역사적으로 정확하지는 않다. 공관 복음서 저자는 유대교의 율법 학자를 예수에게 반대하는 집단으로 기록하지만, 그들의 다른 특성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율법 학자들은 예루살렘과 연관되어 나오며, 대사제들은 유대교 자치 단체의 일부로 제시 된다. 율법 학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그들이 대사제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고위 공직자나 조언자로서 활동했음 직하다. 갈릴래아에 나타난 율법 학자들도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것으로 묘사된다(마르 3, 22 ; 7. 1). 그들의 가르침이 간 접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그들이 유대교 율법과 관습에 정통한 교사로 인정받고 있음을 연상시킨다(마르 1, 22 ; 9, 11).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들이 예수를 반대하는 데에 일치한 정치 집단으로 제시한다. 실제로 그들은 유대교 공동체의 관리로서, 권위에 도전하는 예수의 주장과 인기 상승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을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들은 공 통 관심사가 많고, 유대교에서 뛰어난 지도자로 제시된 다. 율법 학자들은 마을에서의 생활만이 아니라 예루살 렘 지도자들과 연계되어 있으면서 유대교의 중간 지도자 들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율법 학자들의 역할을 인정하기 때문에, 전승을 수호하고 공 동체를 인도하는 율법 학자들의 역할은 긍정적으로 언급 한다(마태 13, 52 : 23, 34).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예수에게 반대하는 유대교의 율법 학자들이다. 루가 복음서와 사도 행전에서 율법 학자들은 독립된 집단이기보다는,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바리사이파들과 연합한 부수 집단으로 제시된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 게 된 이유에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의 대사제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마르코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와 동일하다. 사도 행전에서 그들은 유대교를 보호하는 데 적극적인 예루살렘의 학식 있는 지도자로 나타난다. 루가 복음서에서는 아예 '율법 교사' 란 새로운 이름이 한 번 사용되기도 한다(루가 10, 25 ; 참조 마르 12, 28). 공관 복음서에 나타나는 율법 학자들은 행정관이자 유대인의 삶에 정통한 전문가로, 예루살렘과 그외 지방에서 봉직하고 있던 서열 낮은 공직자이자 재판관일지도 모른다. 율법 학자는 바오로 서간에서 한 번 언급된다. 바오로 는 세상의 지혜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대비시키면서 십 자가야말로 참된 지혜임을 주장한다. 그는 성서를 인용 하면서 수사학적인 물음을 제기해 논박한다. "현자가 어 디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은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않으셨습니까?"(1고린 1, 20). 바오로는 교육받은 학식 있는 지도자들을 그리스-로마 세계권에 잘 알려진 용어로 언급했음 직하다. 〔율법 학자와 랍비〕 "랍비" (ραββί)라는 용어는 서기 100년까지 일반적으로 율법 학자들과 학식 있는 사람들 의 명칭이었다(마태 26, 25. 40 : 요한 1, 38). 그 의미는 "나의 선생님"이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도 예수를 "랍 비"요한 1, 49 ; 9, 2) 혹은 “랍부니”(ραββουνί : 요한 20, 16)라고 불렀다. "랍부니"는 아람어로써 랍비와 같은 의미이지만, 좀더 장중하고 엄숙한 의미가 있다. 이 명칭이 서기 70년 이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쫓겨나 흩어진 이후 직책으로 변화되었다. 랍비 에게는 종교적으로 특별한 지위가 주어지지 않았으나, 점차 유급 랍비 판사와 무급 랍비 교사로 나누어졌다. 14세기 이후 랍비 교사들은 다른 업무에 구애받지 않도 록 봉급을 받았다. 또한, 이 시기에 지역 학자들이 그 사 회의 랍비에게 복종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랍비의 기능 은 그가 속한 공동체가 정통주의 · 보수주의 · 개혁주의 중 어떤 성향을 갖느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현재 랍비들은 종교적인 혼인에는 반드시 참석하지만 다른 예식에는 꼭 참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 로 종교적 행사를 인도하고, 성인식에 참여하며 장례식과 하례식에 참여한다. 이혼 문제에서 랍비의 역할은 유 대교법의 특별 법정이 랍비를 임명하느냐에 달려 있다. 필요한 경우, 랍비는 설교도 하고 조언이나 위로의 말을 한다. 젊은이들의 종교 교육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 으나, 일반적인 교육 책임의 범위를 벗어나 교육에 참여 하는 것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랍비들은 사회 구호 활동 에 관계하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원들이 후원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 랍비 ; → 유다 하 나시 ; 율법) ※ 참고문헌 J.T. Barrera, The Jewish Bible and the Christian Bible :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the Bible, Leiden, New York, 1998/ E. Ferguson, Backgrounds of Early Christianity,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Grand Rapids, Michigan, 1993/ J. Jeremias, Jerusalem zur Zeit Jesu, Vandenhoeck & Ruprecht, Gottingen(번역실 역,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 1988)/ J. Neusner, The Way of Torah : An Introduction to Judaism, Dickenson Publishing Company, California, 1970(서휘석 . 이찬수 역, 《토라의 길-유대교 입문》, 민 족사, 1992)/ A.J. Saldarini, 《ABD》 5, pp. 1012~1016/ 《성서 백과 대사전》 9, pp. 820~821. 〔李禹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