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자 隱修者
〔라〕eremita, anachoreta · 〔영〕hermit, anchorite
글자 크기
9권

1 / 3
독수 생활을 한 성 에프렘의 생애.
종교적인 이유로 사회를 떠나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 〔은수자와 독수자〕 그리스도교에서 은수자(eremita)는 '사막에서의 삶' 또는 '사막에 사는 사람' 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레미테스" (ερεμίτης)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 는 '독수자' (獨修者, anachoreta)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은수 생활은 세속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되어 고독과 침묵 가운데 끊임없는 기도와 참회 · 고행으로 하느님에 대한 찬미와 세상의 구원에 전 인격을 봉헌하는 삶이다. 사막의 은수자들은 세상에 항거하기 위하여 세상을 떠나 세상이 주지 못하는 고요와 평온을 찾는다. 은 수자에게는 내적인 고독을 전제로 하는 물리적인 고독이 필수적이었다. 그들의 삶의 특징은 거주하는 곳을 떠나 서 도시인들과 다른 복장의 착용, 음식의 절제, 결혼의 포기 등을 함으로써 세상과 분리된 삶이었다. 독수 생활은 은수 생활에 포함되는 것으로써 은수 생 활 초기나 후에도 나타나는데, 혼자서 행하는 은수 생활의 한 형태이다. '물러다, 은퇴하다' 라는 의미의 동사 "아나코레인" (ἀναχωρεῖν)에서 파생된 명사 "아나코레테 스" (ἀναχωρητής)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역사에서 내면 화한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마태오 복음 14장 13절에 언급된 '외만 곳 이란 의미의 "아네코레센"(ἀνεχώρησεν)이란 말에서 '독수자' (ἀναχώρητα) 말이 나왔다. 은수자와 독수자는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수도 장소로 구별된다. 독수자는 교회나 사람들이 몰리는 건물에 딸린 독방(cella)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데 반해, 은 수자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막에서 은둔 생활을 한다. 성 안토니오(251~356)나 그 밖의 많은 은수자들의 삶이 처음에는 독수 생활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반은수 생활이나 집단 은수 수도 생활의 형태가 있었던 경우에도 독수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초대 교회에서는 37년 간 기둥 위에서 살았던 성 시메온(Simeon Stylita, 389?~459)을 비롯한 기둥 위 은수자 들, 지붕이나 문이 없는 봉쇄된 독방에서 살았던 인클루 시(Inclusi)들은은 독수자의 대표적인 예이다. 4세기의 독수 생활과 집단 공주 생활(Coenobium)은 은둔 생활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수도 생활 양식을 동일하게 "모나코스”(μοναχός), 곧 수도승(修道 僧) 생활이라 하였다. 〔은수자와 은수자 운동〕 재산을 포기하고 독신을 지키며 교회의 봉사를 위해 개인의 욕망을 버린 사람은 교회 초기부터 있었으며 금욕자(ἀσκητής)와 동정녀라 불렸다. 2세기부터 이들은 교회 안에서 특별한 존경을 받았 고 특히 동정녀의 신분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글레멘 스 1세,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38, 2 :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폴리카르포에게 보낸 편지》 13, 1 : 유스티노, 《제1 호교 론》 14, 2 등). 이처럼 금욕자와 동정녀들은 초기에는 가정 안에서 덕을 닦다가 교회 안에서 신분을 공인받을 무렵부터 차층 모여 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세속 사회를 떠난 것은 아니었고, 특별한 복장도 갖추지 않았었다. 당시에는 교회가 거의 계속적으로 박해를 받고 있었던 까닭에 이들의 삶은 영웅적인 것이었다. 동정을 지키는 사람들을 순교자들과 같게 봄으로써 수도승의 서원을 세례와 같게 보거나 제3의 세례로 여겼다. 그런데 박해로 인하여 어떤 이들은 사막으로 피신하였다. 그 결과 3세기부터 동정녀, 금욕자들의 생활은 사회와 격리 된 생활이 되었다. 이를 보통 좁은 의미에서 수도 생활이라 한다. 처음에는 일부 신자들이 박해로 인하여 광야에서 수도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3세기 말에는 박해의 이유 외에 도, 자의로 도시를 떠나 광야에서 은거하는 일이 잦아졌다. 왜냐하면 313년 밀라노 관용령에 따라 '누구나 자기 가 원하는 종교를 따를 자유' 를 누릴 수 있게 되어, 수도 생활 운동이 활기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곧 수도 생활이 은수 생활 형태로 시작된 것은 박해도 한 가지 이유이지 만, 3~4세기 교회의 성장이 주된 이유였다. 이러한 여 러 가지 이유로 광야에서 은거하는 이들을 엄밀한 의미 에서 은수자라 부른다. 이들은 사막에서 침묵과 고독 중에 하느님을 찾았던 것이다. 또한 은수 생활이 시작된 사 회 · 정치적 원인으로는 3세기 로마 제국의 분열 위기와 데치우스 황제(249~251)의 박해(250), 그리고 발레리아 누스(253~260) 황제의 박해(257~258)도 들 수 있다. 이러 한 위기의 결과로 도시 인구가 감소하고 상업은 흔들렸으며, 전염병과 기근 등이 일어나 사회가 불안해졌다. 그 러자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 안정을 찾으려고 하였고, 각 종 종교들이 퍼졌다. 이러한 상황은 은수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은수 생활의 근본 동기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었다. 그들은 복음적 생활을 보다 더 충실하게 하는 아주 특수 한 생활로써 일반 신자들과는 다른 신분을 형성하였다. 그들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떠나(fuga mundi) 광야로 간 까닭은 보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서 그분 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사회와 격리된 형태의 이러한 수도 생활은 당시 이집트 · 시리아 · 소아시아 등 여러 지 방에서 거의 동시에 생겨났다. 특히 동방에서 많이 생겨 났는데, 아타나시오(Athanasius Alexandrinus, 295?~373)의 《안토니오의 생애》(Vita Antonii)에 의하면 수도 생활이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수도 생활의 발상지를 이집트로 보면서 독수 생활이 먼저 시작 되었고 후에 집단 수도 생활이 나타났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당시 여러 지방에서 수도 생활이 거의 동시 에 발생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독수 생활과 집단 수도 생활 양식은 단계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 터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광야 에 은수자들이 생기기 전에 도시에 사는 금욕자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수도 공동체의 형성을 단계적으로 보아서 첫 단계인 독수 생활, 2단계 부분적 공동 생활, 3단계인 공주 수도 생활(Coenobium) 로 파악하는 견해보다는 오히려 이를 고대의 수도 생활 형태로 파악함이 옳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은둔 수도자들은 3세기 말경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로마 황제 데치우스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할 때 신앙을 보존하고 기도와 고행 생활 을 계속하기 위해서 사막으로 나간 한 무리의 이집트인 들에게서 비롯되었다. 최초의 은수자는 250년경 사막으 로 간 테베의 바오로(299~342)로 본다. 그는 데치우스 황 제의 박해 때 광야로 피신하여 50년 동안 기도와 고행 생활을 하면서 야자 열매나 빵만 먹고 살았다. 은수자들의 생활은 초기에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극단적이었으나, 수도자 생활 공동체가 생기면서부터 완화되었다. 따라서 일정한 규율에 따라 공동 생활을 하는 수도원 제도의 기 초는 4세기에 놓인 셈이다. 은수자 생활은 서방 교회에 서는 사라졌지만, 동방 교회에서는 계속되어 왔다. 3세 기 이후 박해나 그 밖의 이유로 광야에 은거하여 홀로 은 수 생활(vita eremitica)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4세기 초부터 특히 동방 교회 신자들은 외만 곳에 사는 이런 생활 이 그리스도교적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방편으로 자연스 럽게 받아들였다. 동방에서는 흔히 은수 생활이 공주 생 활보다 높이 평가되었으며, 한때 은수자들 간에 극단적 이고 때로는 과도한 고행과 절제의 생활이 행해졌다. 하지만 후대에 교회 권위가 은수 생활을 지배하게 되었고, 은수자들로 하여금 수도원 근처에 살면서 교회와 관련을 갖도록 했다(451년 칼체돈 공의회, 유스티니아노의 Novellae). 〔생 활〕 은수자들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낮았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은 실천적이었으며 성서나 신학적인 기초가 부족하였다. 그들 대부분은 평신도였으며 사제품을 받는 것은 예외적이었다. 은수 생활을 원하 는 사람은 사막의 은수 생활을 가르쳐 줄 사부(師父) 곁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말과 모범을 통하여 수련을 받았 다. 또한 그들은 특정한 회칙이나 규칙, 장상이 없었다. 오직 양심과 내면의 계시를 따르고 성서 말씀과 사부의 가르침을 따랐다. 스승의 판단으로 교육이 끝나면 자기 가 살 오두막이나 땅굴, 무덤 등을 찾았다. 그런데 교육이 끝났다 해도 5세기까지는 일정한 공적 서약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도하기 위하여 밤 12시경 일어났고 새벽이 되면 노동을 시작하였다. 낮에 짧은 휴식 시간을 갖 고, 오후 3시경에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식사를 하였다. 해질 무렵에 저녁 기도를 바치고 돗자리나 종려 나무 잎으로 짠 잠자리에 들었다. 기도는 공동으로 바치거나 개 인으로 바쳤는데, 은수자 집단이 생긴 다음에는 보통 밤 기도와 저녁 기도는 공동으로 바쳤고, 낮에는 개인적으 로 바쳤다. 은수자들에게 노동은 기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은수 생활에서 기도와 노동의 조화는 중요한 관건이었다. 그들은 왕골이나 종려나무 잎으로 밧줄을 꼬고, 바구니 · 돗자리 · 그릇 등을 짜서 팔았으 며, 농사를 짓거나 추수 때 농사일을 돕기도 하였다. 그 들은 주식은 빵이었는데, 하루에 작은 빵 두 개를 먹었다. 그리고 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고 소금을 먹었고, 어떤 이들은 교만을 피하려고 빵에 기름 한 방울을 발라 먹었다. 복장은 거친 마(麻)로 짠 소매 없는 겉옷(tunica) 과 모자(capucha)와 가죽 띠로 된 대단히 검소한 옷이었 고, 신발은 대부분 신지 않았다. 한편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시려고 토요일 오후에 가까운 마을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함께 바치고 전야 기도 와 새벽 미사를 바쳤다. 미사 후에는 아가페라 부르는 특 별한 식사를 성당 안에서 함께 하면서 한 원로의 지도 아 래 '영적 대화' 가 이루어졌다. 영적 대화를 하기 위해서 토요일과 주일의 모임뿐 아니라, 자주 방문하는 기회에 서로 조언을 얻고 체험을 나누기 위해 영적 대화가 있었 다. 그들은 절대 은둔은 예외였고 일정 기간에만 홀로 머물렀다. 보통은 어려운 광야 생활에서 영적 · 물질적으로 도우면서 서로 가까운 곳에 거처를 정하고 살았다. 장상 제도가 아직 생기지는 않았으나 서로의 영성적 · 물질적인 책임을 분담하기 위한 여러 직책들이 생겼다. 〔이집트의 반은수 생활과 독수 생활〕 수도 생활의 발전 과정에서 첫 단계로 볼 수 있는 은수 생활은 특히 4~6세기까지 주로 이집트와 팔레스티나 및 시리아 지 방에서 많이 유행하였다. 후대에 와서 교회법 제603조 가 상정하는 단독 은수 생활은 드물게 되었다. 이집트의 수도 생활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하나는 니트 리아(Nitria)와 쉐테(Scete)에서 번창한 반은수 생활(semieremitic life)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집트 남쪽에서 성행했던 공동 은수 생활(vita coenobitica)로써 대표적 인물은 파 코미오(Pachomius, 289~346)이다. 니트리아와 쉐테 수도 승들의 수행은 개인적이었으며, 다만 그들 중에서 덕이 높은 자가 자기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스승 역할을 했을 뿐이다. 안토니오와 그 제자들의 생활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집트에서 은수자들의 아버지로 불린 안토니오의 은수 생활은 무엇보다도 엄격한 금욕과 속죄의 생활이었다. 이는 고독한 생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유혹하는 악마의 세력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생활이었다. 또 한 그는 노동하면서 '깨어 기도하라' 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기 위하여 밤을 새워가며 기도에 전념하였다. 그의 기도는 시편과 성서를 소리 내어 읊으면서 성서 구절을 묵상하는 것이었다. 덕망 높은 안토니 오에게 젊은 은수자들이 모여들어 제자들이 되었고, 이 들이 각각 홀로 사는 오두막집들이 부락을 형성하였다. 이처럼 은수자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는 오두막에서 각각 홀로 은수 생활을 하는 삶을 온건한 은수 생활(vita eremitica temperata) 또는 독수 생활(vita anachoreica)이라고 일컫는다. 파코미오에 따르면 그는 "독수 생활의 완전한 형상" 이었다. 은수자들의 생활은 지극히 엄격하였다. 그들은 분심 없이 하느님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고 모든 욕심을 깨끗이 떨쳐 버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으며 가능한 한 천상 생활과 비슷한 생활을 하는데 목적을 두 었다. 은수 생활이 왜 이집트와 팔레스티나 그리고 시리 아 지방에서 유행했었는지 그 명백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단지 은수자였던 안토니오의 모범과 명성은 아타나시오 에 의해 북부 이집트와 이집트 경계를 넘어 멀리까지 전 해져 은수자 운동에 큰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교회 안의 독수 생활은 매우 적어졌다. 마카리오의 쉐테 수도원 : 수도회의 기초적인 조직체 로 가장 오래된 '공동 은수 생활 수도회' (Anachoreta)가 은수자의 공동체에서 생겨났다. 이들은 독수 생활과 공동 생활을 병행하였다. 각 수도자는 개인적으로 자기 독 방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노동과 묵상을 하였다. 동 시에 이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함께 모여 공동 기도를 하였고, 일주일에 한 번(토요일이나 일요일) 장엄 예절을 거행하거나 그러한 예절에 참석하였다. 공동 은수 생활 수도회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유명한 수도원이 쉐 테 광야의 수도원으로서 330년대에 마카리오(Macarius) 가 창설하였다. 마카리오는 이집트 북부에서 태어나 처 음에는 은수자로서 매우 엄격한 극기 생활을 하였다. 30 세 때에 쉐테 광야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수도공동체를 설립하였다. 아리우스 이단이 쉐테 수도자들을 축출하자 그는 나일강의 작은 섬에서 제자들과 함께 귀양 생활을 하다가 돌아왔다. 그는 쉐테 수도원에서 죽을 때까지 60 여 년 간의 수도 생활을 하였다. 니트리아의 수도 생활 : 니트리아(Nitria)에 있던 은수 자들의 근거지는 아모운(Amoun)에 의해 세워졌다(Historia Monachorum8). 한편 사막 더 깊숙이까지 들어가 살던 은수자들의 집단이 있었는데 이는 첼리아(Cellia)라는 것 을 형성하였다. 첼리아의 창설은 니트리아에 있는 아모 운을 보러 간 안토니오의 방문과 관련이 있다. 팔라디오 에 따르면 니트리아에는 약 50개의 수도원이 있었고 수 도승들은 작은 집단이나 혹은 210명에 달하는 큰 집단 안에서 혼자씩 거주했다. 또한 니트리아에는 거대한 성 당이 건립되어 있었는데, 매 토요일과 주일에만 사용하 였다. 이 성당 가까이에 손님 집이 있었다. 또한 그 수도 승들은 모두 생계 유지를 위하여 옷감 짜는 일을 하였다. 쉐테에는 수도승들이 밧줄과 바구니를 엮어 지나가는 대상(大商)들에게 팔았으나 추수철에는 들일도 하였다. 일 찍부터 니트리아와 철리아의 정주지들에는 소속 사제들이 있었다. 한편 그들에게는 공식적인 수련기나 서원식 이 없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일종의 견습생으로서 섬겨 드릴 연로한 수도승 한 분을 찾아 그분에게서 배우고 그를 모방하였다. 생활 양식들은 니트리아에 있는 준 집단승들의 생활 양식에서부터 첼리아의 완전한 은수자의 생활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러한 체제는 고행 경쟁의 남용과 여러 가지 탈선들을 초래하였다. 이리하여 수도승 생활의 은수자 양식은 고대에서도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팔레스티나와 시리아에서의 은수 생활〕 팔레스티나 와 시리아에서 일어난 수도승 생활의 초기 발전은 이집 트의 경우보다 더 모호하지만 근본적으로 은수자의 노선을 따라 발전되었던 것 같다. 팔레스티나에서의 수도 생활 : 할라리온(Hilarion, 291~ 371)이 처음으로 수도원을 창설하였다(예로니모, 《힐라리 온의 생애》 10). 그는 가자(Gaza) 근처의 타바타(Thabatha) 에서 태어나 307년경 가자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였 다. 그후 그의 삶을 모방하고자 제자들이 모여들자 수도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제자들은 팔레스티나 전역에 걸쳐 여러 수도원을 세웠다. 힐라리온의 제자 에피파니오 (Epiphanius, 315~403)는 이집트 광야에 있는 은수 생활을 하는 수도 공동체에 들어가 지내다가 335년경 팔레스티 나에 돌아와 유다 지방의 엘레우테로폴리스에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그는 학식과 덕행에 뛰어나 367년에는 키 프로스의 주교들에 의해 살라미스(Salamis) 주교로 선출 되었고, 후에 키프로스의 대주교가 되었다. 시리아에서의 수도 생활 : 시리아의 수도 생활 기원을 정확히 밝히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예로니모(Hieronymus, 347~419)가 375년 칼치스(Chalcis)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던 무렵 안티오키아의 동부 사막에는 수많은 은수자들의 거류지가 있었다. 이들이 이집트의 수도승 운동으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는 논란이 되고 있다. 4세기 시리아에서 있었던 금욕 운동의 가장 중요 한 인물은 에프렘(Ephraem)이었다. 그러나 그가 수도자 로서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5세기부터 시리아 팔레스 티나 지방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원 즉 라우라 (λαύρα,, 암자) 수도 공동체와 '기둥 위' (Styltes) 수도자 들이 등장하였다. 라우라는 암자들의 집단으로서 은수자들의 암자들은 교회나 공공 기관 주위에 모여 있었다. 또 한 라우라 수도 단체에서는 우선 입회 청원자에게 일정 기간 수련을 요구하였다. 청원자들은 수련 기간 동안에 조용한 은수 생활을 할 능력을 보이면 정식 수도자가 되어 각자 자기 굴이나 독방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혼자서 기도와 묵상, 노동으로 보내고, 토요일과 주일에 는 모두 모여 공동 전례 생활을 하였다. 라우라 수도회의 창설자로는 에우티미오(Euthymius, 377~473)와 그의 제자 사바스(Sabbas, 439~532)가 유명하다. 한편 기둥 위 수도 생활은 시메온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그의 제자인 다니 엘(Daniel Stylita, 409~493)은 33년 간 기둥 위에서 고행을 하였다. 〔파코미오의 공주 생활과 새로운 반은수 생활〕 독수 생활과 거의 같은 시대에 집단 공주 생활(vita coenobitica) 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수도자들이 증가 하는 동시에 '공동 은수 생활 수도회' 가 개인주의로 전 락할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공주 생활 수도회가 등장하였는데 이는 "은수자들의 마을 운동" 보다 더 진전된 것으로써 독수 생활과 반은수 생활의 집합체는 아니다. 4 세기 무렵의 독수 생활과 집단 공주 생활의 공통점은 은둔 생활이라는 점이다. 집단 공주 생활은 독수자들이 형 성한 오두막집들의 부락을 울타리로 둘러막고서 그 안에서 독수자들이 주일이나 축일에 기도와 식사를 함께하는 삶이다. 이집트 출신의 파코미오가 교회 역사상 공주 생활의 첫 조직자이다. 파코미오의 집단 공주 생활도 은둔 생활이긴 하였으나, 초기의 은수 생활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공동 생활이었다. 서방 지역은 동방보다 은수적 수도 생활을 하는 경우 가 드물었으나 11세기 및 13~14세기에 영성적으로 부 흥하면서 다시 등장하였다. 11세기에 로무알도(Romualdus, 9527~1027)가 설립한 카말돌리회와 1084년 성 브 루노(Bruo, 1032?~1101)에 의해 설립된 카르투지오회는 중세의 새로운 반은수적인 생활 형태를 보여 준 수도회들이다. 카르투지오회의 경우 초보자는 베네딕도 규칙서에 따라 공동 생활을 하고 진보자는 모원 주변의 은수 암자에 정착하였는데, 이는 공동 생활과 은수 생활을 독특 한 방식으로 결합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카르투지오회는 베네딕도 규칙서와 전혀 관계없이 창설된 은둔 생활에 강조점을 둔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로써, 그들의 주관 심사와 소명은 독방에서 침묵과 고독을 취하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까지 반은수적 수도 생활의 형태를 잘 유지 해 오고 있으며 은수자들의 교육 기관으로써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은수자의 교회법적 지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세 속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어 고독과 침묵과 줄기찬 기도 와 참회 고행으로 하느님 찬미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신명을 바치는 삶인 명상 수도 생활이 보존되어야 한다 고 결의하였다(수도 7항 : 교회법 603조, 674조 참조). 교회 는 축성 생활회 외에도 은수 즉 은둔 생활을 인정한다(교 회법 603조) . 은수자는 교회법상으로 '일반적 계명 외에도 순명과 정결과 청빈의 서원을 통하여 복음적 권고를 준수하기로 정진하는 고정된 공동 생활 형식' (573, 607조)을 사는 수 도자 신분에 속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은수자나 독수자 는 공동체에 소속될 의무도 없고 공동 생활이나 공동체 생활의 의무도 없다. 그런데 "은수자가 서원이나 기타 거룩한 결연으로 견고하게 된 세 가지 복음적 권고를 교 구장의 손 안에서 공적으로 선서하고 그의 지도 아래 고 유한 생활 방식을 준수하는 경우, 축성 생활로 하느님께 봉헌된 자로 법률상 인정된다"(603조 2항). 따라서 이러 한 법적 요건을 채우지 않는다면 사적인 생활 방식으로써의 은수 생활일 뿐 교회가 인정하는 축성 생활에 속하 지는 않는다. (→ 수도 생활 ; 수도승 ; 시메온 ; 아타나 시오, 알렉산드리아의 ; 안토니오 ; 에프렘 ; 카르투지오 회 ; 카말돌리회 ; 파코미오 ; 힐라리온) ※ 참고문헌 A. López Amat, El seguimento radical de Cristo, vol. I , Madrid, 1987, pp. 29~481 AA.VV., Dizionario Enciclopedico di Spiritualita, diretto da Ermanno Ancilli, Roma, 1975, pp. 683~6871 A. Donahue, 1, p. 486/ E. Sastre Santos, La vita religiosa nella storia della Chiesa e della società, Ancora, 1997, pp. 57~791 G. Colombas, El monacato primitivo, vol. 1, Madrid, 1974, p. 77/ Jestis Alvarez, Historia de la vida religiosa, vol. 1, Madrid, 1987, pp. 117~265/ Karl Suso Frank, 황태웅 역, <서방 수도원의 시작>, 《신학 전망》 73호(1986. 여름), pp. 52~ 1 R. Naz Dir., Dictionaire de Droit Canonique, Paris, 1957, Tome 5, pp. 412~429/ 월리엄 힌네부쉬, Origins and Development of Religious Orders, Riviewfor Religious, 1969. Nov. V 28 (이종한 역, 《한알》 2집, 1973년 11월)/진 토마스, <수도자 영성의 역사적 고찰>, 《신학 전망》 26호(1974. 가을), pp. 131~ 1 한국 베네딕도 수도회 연합, 《코이노니 아》7집(1983. 가을). 〔奇京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