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율 본당
殷栗本堂
글자 크기
9권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1902년 5월 장연(長 淵)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무염 시태 성 모. 황해도 은율군(殷栗郡) 은율면(殷栗面) 남천리(南川 里) 소재. 〔교 세〕 1902년 573명, 1916년 946명, 1923년 808명, 1937년 1,229명. 〔역대 신부〕 초대 르 장드르(Le Gendre, 崔昌根) 루도비코(1902. 5~9), 2대 멜 리장(Mélizan, 梅履霜) 베드로(1902. 10~1905. 8), 3대 윤 예원(尹禮源) 토마스(1914. 6~1920. 6), 4대 백남희(白南 熙) 베드로(1920. 6~1923. 6), 5대 이보환(李普煥) 요셉 (1923. 6~1928. 5), 6대 이순성(李順成) 안드레아(1928. 5~ 1934. 9), 7대 임충신(林忠信) 마티아(1934. 9~1935. 1), 8 대 윤의병(尹義炳) 바오로(1935. 1~1950.6). 은율 지방의 첫 천주교 신자는 1866년 병인박해 때 풍천 옥에서 순교한 황중백(黃仲伯)이다. 그 후 1870년 경, 김달정이란 사람의 부인으로만 알려진 글라라란 신자가 박해 때 살아 남아 전교한 결과로 5명의 예비 신자가 생겨난 일이 있다. 1881년 3~4월경 리우빌(A, Liouville, 柳達榮) 신부는 보교(步轎)를 타고 은율과 풍천, 장 연, 안악 등 네 고을에 전교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1886~ 1887년 사이 쿠데르(V. Couderc, 具瑪瑟) 신부와 푸아넬(V.Poisnel, 朴道行) 신부가 은율 지방에 전교하였 다. 1887년 로(J. Rault, 盧若望) 신부가 황해도의 고정 선교사로 임명되어 은율에서 40리 거리의 장연에 정착 하여 전교하면서 은율에 처음 공소를 개설하였다. 공소 강당은 남천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공소 설정 당시의 신자수는 12명이었다고 한다. 은율 공소는 천주교 와 서양인 선교사들에 적의를 품은 외교인 주민들이 신 자들을 멸시하는 경향이 농후하여 공소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가 여러 차례 있었다. 로 신부의 후임으로 부임한 르 장드르 신부가 수안 덕골을 근거지로 전교하면서 은 율 공소에도 몇 차례 왕래하였다. 1896년 8월 빌렘(J. Wilhelm, 洪錫九) 신부가 황해도 담당 선교사로 안악군 마렴에 처음 본당을 설정하고 주재하면서 은율 공소도 관할하였다. 2년 후인 1898년 4월 빌렘 신부는 안악군 매화동에서 신천군 청계동으로 전임된 후에도 계속 관할 하였는데, 1898년 말부터 황해도가 청계동, 매화동, 장연 등 3개 본당 지역으로 조정 분할될 때 장연 본당의 파 이아스(C. Pailhasse, 河敬朝) 신부의 관할이 되었다. 당시 은율 지방의 천주교는 황해도에서 활발히 일어난 개종 운동의 결과로 성인 영세자가 13명이나 배출되었다. 장 연 본당 공소들 가운데 신자수가 가장 많았던 은율 공소 는 공소 설정 15년 만인 1902년 5월 장연 본당에서 분 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르 장드 르 신부가 부임하였다. 초창기의 성당은 남천리 홍 마리아의 집 부근의 기와집 한 채를 사용하였다. 1902년 10 월 르 장드르 신부의 후임으로 부임한 멜리장 신부가 약 3년 간의 사목 활동 후 재령(載寧) 본당으로 전임되자 은율 본당은 신부를 배정받지 못해 1914년 6월까지 장 연 본당의 공소가 되었다. 약 9년 간의 공소 상태였던 은 율 본당은 1914년 6월 윤예원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 임하면서 본당으로 재승격되었고 교세가 크게 신장되었다. 신자수의 증가로 새 본당 설립이 요구되자 1915년 성당 부지를 확보한 후 1918년 3월 공사에 착수하여 같 은 해 8월 완공한 뒤, 서울교구 드브레(E. Devred, 俞世 竣) 보좌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이후 4 대 주임 백남희 신부를 거쳐 1923년 6월 5대 주임으로 이보환 신부가 부임하여 성모유치원을 개원하였으며, 본 당 활성화를 위해 단체들을 조직하였다. 6대 주임 이순 성 신부는 1929년 4월 해성 야학원을 개설하였으며, 야학원을 위해 서울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수녀 들이 파견되었다. 또한 이순성 신부는 성당이 낡아 자비를 들여 보수 공사를 하는 등 활발한 사목 활동을 하였다. 7대 주임 임충신 신부를 거쳐 8대 주임으로 부임한 윤의병 신부 사목 시기에는 피정 지도 신부를 초청하여 신자들을 재교육하고, 일반인들을 위해 종교 강연회가 열렸다. 1936년 11월 11일 아심헌(啞心軒) 교육관을 건립하여 1층은 유치원, 2층은 회관으로 사용하였다. 1939년 봄 장련 공소를 분리하여 본당으로 승격시켰으며, 같은 해 6월 1일 기해박해 1백주년 기념 순교자 현양 행사를 은율 본당이 주축이 되어 개최하였다. 하지만 은율 본당은 광복 후 공산 정권의 탄압으로 본당 수녀들 이 철수하고 본당의 많은 신자들이 월남하는 어려운 상황을 보냈다. 마침내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전날에 윤 의병 신부는 정치 보위부에 연행된 후 행방 불명이 되었으며, 은율 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 서울대교 구 ; 장연 본당 ; 침묵의 교회 ; 황해도 감목 대리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황해도 천주 교회사》,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84. 〔白秉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