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 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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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이룩한 교우촌이요 공소 소재지. 현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용곡. '은이' 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살던 '숨은 이들의 마을' 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웃에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 아) 신부가 자라난 골배마실 교우촌이 있으며, 문수봉 너머 남서쪽에는 한덕골 교우촌(현 용인군 이동면 묵리)과 미리내 교우촌(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이 자리잡고 있었 다. 은이 교우촌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일설에는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이후에 형 성되었다고 하는데, 적어도 1819년 이전에 신자들의 이 주로 교우촌이 형성된 것만은 분명하다. 즉 1846년에 48세로 포도청에서 곤장을 맞고 교수형으로 순교한 충청도 출신의 성 한이형(韓履亨, 라우렌시오)의 기록에서 보면, 21세 때(1819) 혼인한 뒤 곧바로 은이 마을로 이 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후 그는 은이 교우촌의 회장을 지냈다. 1811년 이후 교회 재건 운동에 참여하였던 이 여진(요한)이 1830년에 사망한 곳도 은이 마을이었던 것 같다. 훗날의 기록과 교회 전승에 의하면, 김대건 신 부의 집안도 1820년대 후반 무렵에 솔뫼(현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를 떠나 한양의 청파와 용인 한덕골에 잠시 거주하다가 은이의 윗마을인 골배마실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김대건 신부의 부친인 성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은 이후 성 정하상(丁夏祥, 바오로)과 왕래하면서 신앙 생 활을 하다가 1836년 프랑스 선교사 모방(Maubant, 羅) 성인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한양으로 올라가 후동(后洞)에 머물고 있던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골배마실로 돌아왔다. 이후 모방 신부는 교 우촌을 순방하던 중에 김제준의 장남 김대건을 신학생으 로 선발하기 위해 골배마실로 갔는데, 이때 모방 신부가 거처하면서 신자들에게 성사를 준 곳이 바로 은이 마을이었다고 한다. 이로써 은이 교우촌은 공소로 설정되었다. 이후 은이와 골배마실은 두 차례에 걸쳐 박해를 받게 되었다. 첫 번째는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이 고, 두 번째는 1846년의 병오박해(丙午迫害) 때였다. 그 결과 앞서의 박해 때는 김제준이 골배마실에서 체포된 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순교하였으며, 두 번째 박해 때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은이 공소의 회장 한이형이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김제준 성인의 시신은 순교 후 이곳 어디에 안장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한편 김대건 신부는 1845년 사제로 서품되어 귀국한 뒤, 그 해 말까지 한양에서 사목 활동을 하다가 교구장 앵베르 (Imbert, 范世亨) 주교의 허락을 얻어 용인으로 내려가 교우 집을 전전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던 모친 고(高) 우 르술라와 상봉하였다. 그런 다음 1846년 부활 때까지 은이 공소에 머물면서 주변 교우촌을 순방하였다. 그 결 과 은이 공소는 김대건 신부의 사목 중심지 즉 본당 역할 을 하게 되었다. 당시 김 신부는 용인의 터골(현 용인군 이 동면 서리), 이천의 단내(현 이천군 호법면 단천리)까지 순방 하였다고 한다. 은이 공소는 1866년의 병인박해로 다시 한번 풍파를 겪게 되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나면서 다시 교우촌으로 재건되었으며, 한국 천주교회가 전교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골배마실과 함께 갓등이(현 왕림) 본당의 공소로 설 정되었다. 1888년 은이 마을을 다시 공소로 설정한 이 는 앙드레(André, 安學古) 신부였다. 이후 은이 공소는 미리내 본당 소속이 되었고, 1927년에는 교우들의 노력 으로 경당과 사제관도 건립되었다. 그러나 일제 말기와 해방 공간을 거치는 동안 신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 면서 거의 폐허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골배마실에는 양지 본당 신자들의 노력으로 1962년에 김대건 신부상이 안치되었으며, 은이 공소 자리도 한국 103위 성인의 시성 작업과 현양 운동이 시작되면서 사적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수원교구에서는 옛 은이 공소 일대의 부지를 매입하여 성 김대건 신부 기념 박물관 건립과 성 역화 작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 골배마실 ; 김대건) ※ 참고문헌 《한국 천주교회사》 중 · 하/ 《推案及勒案》 《79위 시 복 조사 증거서》, 1921, 교황청/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인천교구 준비위원회, 《성지》 I . Ⅱ 성황석두루가서원, 1987/ 김진용, 〈金大建 신부 가족 피난지에 대한 연구一寒德洞을 중심으 로>, 《교회와 역사》 218호 · 219호, 1993/ 車基真, <김대건 신부의 활 동과 업적>,《교회사 연구》 12집, 1997/ -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서 : 수원교구 편>, <사목> 244호, 1999. 〔車基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