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 隱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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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벼슬을 사양하고 숨어서 자기 뜻대로 살아가려는 사람. 이 용어는 공자(孔子, 기원전 552/551~479)가 《논어》 (論語) <미자>(微子) 편에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당시 사회를 개선하고자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던 공자는 은자들을 초(楚)나라 지역에서 많이 만났다. <논어> <미자> 편에 보이는 초광접여(楚狂接輿)와 장저(長沮) · 걸익 (桀溺)과 하조장인(荷蓧丈人)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숨 어 사는 사람들이기에 실제 이름은 알 수 없다. 초광접여 는 공자의 수레를 맞이한 초나라 미치광이라는 뜻이고, 장저 · 걸익은 공자 일행이 나루터에서 만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하조장인은 지팡이로 제초용 농기구를 메고 가는 노인을 뜻한다. 이들은 당시 초나라 지역에 많았지만 그 밖의 지역에도 있었던 것 같다. 자로(子路)가 노(魯)나라에서 만났던 석문(石門)의 성문지기와 공자가 위(衛)나라에서 만났던 하궤(荷蕒) 등도 은자이다. 은자와 비슷한 말로써 은군자(隱君子)와 은사(隱士), 피세지사(辟世之士)와 일민(逸民) 등이 있다. 중국 위진 시대 때 황보밀(皇甫謐, 215~282)이 지은 《고사전》(高士 傳)에는 그러한 사람들을 고사(高士)라고 일컬으면서 , 96명을 소개하였다. 은사(隱士) : 벼슬하지 않고 숨어 사는 선비를 은사라고 한다. 이 말은 《장자》의 <선성편>에 언급되어 있다. 그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적의 이른바 은사는 그의 몸을 엎드려서 나타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그의 말문을 닫아서 나오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그의 지식을 숨겨서 발휘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 다. 황당무계한 시대에 어려운 운명을 만났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시대와 운명이 맞아서 천하에 크게 실행하면 사람들이 하나됨에로 돌아가도 자취가 없고, 시대와 운명이 맞지 아니하여 천하에서 크게 궁하게 되면 자연의 본성을 깊고 견고하게 하고 지극한 본성을 편안히 보존하면서 마칠 날을 기다릴 것이니, 이것이 생명을 보존하는 도(道)이다." 결국 은사는 일부러 자신의 몸을 숨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조건이 맞지 아니하여 사회에서 자기의 뜻을 펼 수 없게 되면 숨어 살면서 자기의 본성을 가꾸고 보존하려는 선비임을 알 수 있다. 은군자(隱君子) : 이 말은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 85?)이 <노자 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서 노자에 대하 여 쓴 것이다. "노자는 도와 덕을 닦았으며, 그의 학문은 스스로 숨어 이름이 없기에 힘썼다. 주나라에 오래 살다 가 주나라가 쇠미해지는 것을 보고 마침내 관(關)에 이르니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그대는 숨으려 하시는군요. 억지로라도 저를 위하여 글을 써 주시오!' 라고 말하 였다. 이리하여 노자가 책 상 · 하편을 지어서 도와 덕의 뜻 5천여언을 말하고 떠나니 아무도 그가 끝마친 곳을 몰랐다. · 노자는 은군자(隱君子)이다. 결국 보면 은군자도 은사처럼 좋지 않은 시대를 만나 벼슬을 버리고 숨어서 살았던 군자를 가리킨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민(逸民) : 일민이란 절조와 품성이 뛰어난 사람이 다. 《논어》의 <미자> 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 민은 백이(伯夷) · 숙제(叔齊) · 우중(虞仲) ·이일(夷 逸) · 주장(朱張) · 유하혜(柳下惠) · 소련(少連)이다. 공 자가 이르기를 '자기 뜻을 굽히지 아니하며, 그의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것은 백이와 숙제일진저! 유하혜와 소 련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으나 말이 윤리에 맞 고, 행실이 사려에 맞았을 따름이다"고 하였다. "우중과 이일은 은거하여 세상 일을 그냥 놓아두고 말하지 아니 하였으나 몸은 청결함에 맞고 버려두는 것은 시의(時宜) 에 맞았다고 하였다." 이들 가운데 우중과 이일, 주장과 소련 등 네 사람의 언행은 고증할 수 없다. 백이와 숙제 는 상(商)나라 말엽의 현자이며, 유하혜는 춘추 시대 노 나라의 현자이다. 피세(辟世) : 피세는 선비가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을 뜻한다. 《논어》의 <헌문>(憲問) 편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현자는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은 땅을 피하고, 그 다음은 안색을 피하고, 그 다음은 말을 피한다.···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일곱 사람이다." 공안국 (孔安國)에 의하면 세상을 피하는 현자는 군주가 신하로 삼을 수 없으며, 마융(馬融)에 의하면 땅을 피하는 사람 은 혼란한 나라를 떠나 안정된 나라로 간다고 하였다. 형 병(邢昺)에 의하면 군주에게 자기를 싫어하는 안색이 있 으면 떠나가는 것이 피색(辟色)이며, 자기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면 떠나가는 것이 피언(辟言)이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일곱이라고 하였는데 그 일곱 사람이 누구냐에 대하여 주장이 다르다. 왕필(王弼)은 백이 · 숙제 · 우중 이일 · 주장 · 유하 혜 · 소련을 들었다. 정강성(鄭康成)은 백이 · 숙제 · 우 중은 피세한 사람이고, 하조 · 장저 · 걸익은 피지(辟地) 한 사람이요, 유하혜 · 소련은 피색(辟色)한 사람이요, 하궤 · 초광접여는 피언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칠이라는 글자는 십이라는 글자를 잘못 쓴 것으로써 본래는 열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경상초(庚桑楚) : 춘추 시대의 은자로서 노자의 제자 라고 한다. 그가 외루(畏壘)의 산에 숨어 살았는데 그 지 방 사람들이 그를 군주로 삼아 모시려고 하자, 그는 오히려 그 일을 개운치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의 제자가 그 러한 스승의 태도를 이상해 하니 경상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제 외류의 백성들이 서로 모여서 소곤거리 며 나를 현자들 사이에 놓고 받들고자 하는데, 내가 어찌 북두 자루와 같은 본보기가 되고 싶겠는가? 나는 이 때 문에 노담(老聃)의 말씀이 떠올라 개운치가 않도다. ··· 현자를 들어 쓰면 백성들이 서로 아수룩하고, 지혜 있는 이에게 맡기면 백성들이 서로 속이게 된다. 이들 몇 가지 일은 족히 백성들을 두텁게 하지 못할 것이다. 백성들이 이로움에 매우 부지런하며,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신하 가 임금을 죽이며, 대낮에 도둑질하며 한낮에 담을 뚫게 되니 내가 너에게 말하리다! 큰 혼란의 뿌리가 반드시 요 임금, 순 임금 사이에서 생기어 그 끝은 천세(千世) 뒤에 있게 될 것이다. 천세 뒤에 반드시 사람이 사람을 서로 먹게 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지식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다스리는 인위(人爲)의 정치가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장자》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경상초> 편이 있다. 사호(四皓) : 사호는 진(秦)나라 때 상산(商山)에 숨 어 살았던 동원공(東園公)과 녹리(甪里) 선생, 기리계 (綺里季)와 하황공(夏黃公)이다. 네 사람은 수염과 눈썹 이 모두 희어서 상산사호라 불렀다고 한다. 훗날 한 고조 인 유방(劉邦, 기원전 256~195)이 초빙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종남산(終南山)에 숨어 살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 지 않았다고 한다. 위진 시대 때 황보밀(皇甫謐)이 지은 《고사전》에 소개되어 있다. 선권(善卷) : 요 임금 때 은자로 알려져 있다. 순 임금이 그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자리를 넘겨주려고 하자 그 는 "나는 우주 가운데 서서 겨울 날에는 가죽옷을 입고, 여름 날에는 칡베옷을 입고, 봄에 밭을 갈며 씨 뿌릴 때 몸은 족히 노동할 만하며, 가을에 거두어들일 때 몸은 족 히 해낼 만하며,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나니 천지 사이에서 소요하여 마음이 스스로 만족스러운데 내 가 천하를 가지고 무엇하겠는가?" 라고 말하고 깊은 산에 들어갔다고 하였다. 소부(巢父) : "소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요 임 금 때의 은자로, 세속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다고 한다. 늘그막에는 나무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서 잤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소부라고 불렀다고 한다. 요 임금 이 허유(許由)에게 제왕의 자리를 넘겨주려고 하자, 허유가 그 일을 소부에게 알리니 소부는 청령(淸淪)의 강으 로 가서 자신의 귀를 씻고 눈을 닦았다고 한다. 열어구(列禦寇) : 춘추 시대 정나라 사람인데 흔히 열 자(列子)라고 높여서 부른다. 그는 호구자림(壺丘子林) 에게서 배웠으며, 책 8권을 지었다고 한다. 오늘날 전해 오는 《열자》는 그의 사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 으나, 그가 직접 저술한 것은 아니다. 그는 바람을 타고 다닐 수 있는 풍선(風仙)의 도를 터득하였다고 한다. 《장 자》의 <열어구> 편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 그 가 제나라에 가다가 중도에 돌아오다가 백혼무인(伯昏瞀 人)이라는 은자를 만났다. 그가 묻기를 "무슨 일로 가다 가 돌아오는가?" 라고 하니 그가 말하기를 "저는 놀랐습니다" 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어째서 놀랐는가?"라고 되 묻자 "음료를 파는 집 열 집 가운데서 다섯 집이 앞다투 어 저에게 먹게 하였습니다"라고 열어구가 대답하였다. 백혼무인이 다시 "그렇다면 어째서 놀랐는가?" 라고 물 었다. 그에 대한 열어구의 대답은 음료를 파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좋은 점을 알아보고 공경한다면, 만승(萬乘) 의 군주가 자신을 등용하여 국가의 일을 맡길까 걱정이 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로써 그도 벼슬을 구하지 않고 숨어살려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장저(長沮)와 걸익(桀溺) : 이들은 《논어》의 <미자> 편 에 언급된 은자이다.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의하면 공 자가 채나라에로 가기 위하여 초나라 섭(葉)이라는 고을 을 떠나다가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공자의 제자에게 말 하기를 "두루 흘러 퍼져 천하가 다 그러한데 당신은 누 구와 더불어 그것을 바꾸겠는가? 또 그대는 사람을 피해 다니는 선비를 따라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세상을 피하여 사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고 하였다. 그 들은 공자 일행을 사람을 피해 다니는 선비로 보고 자신 들은 세상을 피하여 사는 선비라고 자처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 군주를 떠나자 기의 뜻에 맞는 군주를 찾아서 천하를 돌아다니는 것은 고달픈 일이고, 세상에 이름을 드날리지 않고 숨어살면 자신의 생명을 해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은 자들이 추구하는 인생관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장주(莊周) : 장주는 장자(莊子)라고 높여서 부르는데, 오늘날 중국 하남성(河南省) 상구(商丘)현에서 기원 전 355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275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초나라 위왕(威王)이 그를 재상으로 초빙하였으나 사양하고 전원 생활을 즐기면서 자유롭게 살았 다. 그는 당시 논변에 뛰어난 혜시(惠施)와 자주 만나 학 문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죽게 되었을 때, 그의 제 자들이 성대하게 장례를 지내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나는 천지를 관곽(棺槨)으로 삼고, 해와 달을 옥(玉)으 로 삼고, 별들을 진주와 구슬로 삼고, 만물은 장례에 쓰 는 갖가지 물건으로 삼을 것이다. 나의 장례 도구가 갖추 어진 셈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였다. 이로써 그는 살았을 때는 물론, 죽음 앞에서도 천지 만물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정신 세계를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철학은 《장자》 33편에 담겨 있다. 초광접여(楚狂接輿) : 그는 거짓으로 미치광이 노릇을 하면서 세상을 피해서 살았던 것 같다. 《논어》의 <미자> 편에서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광접여가 노래를 부르며 공자 곁을 지나가면서 말하였다. 봉황새 여! 봉황새여! 어찌 덕이 그처럼 쇠하였는가? 지나간 일 이야 간할 수 없겠지만 오는 일이야 그래도 따를 수 있으 리! 그만두소! 그만두소! 지금 세상에 정치하는 사람은 위태하외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와 그와 더불어 말하 고 싶어했으나 재빨리 피해 버리니 그와 더불어 말해 보 지 못하였다." 이로써 보면 그도 공자가 당시 사회를 개선하고자 천하를 주유(周遊)하는 것이 자기 생명을 해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피의(被衣) : 포의자(蒲衣子)라고도 부르는데 요 임금 때의 현자이다. 순 임금이 그에게 제왕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였으나 사양하고 받지 아니했다고 한다. 《장자》 의 <천지> 편에 의하면 요 임금의 스승이 허유(許由)이 고, 허유의 스승이 설결(齧缺)이며, 설결의 스승이 왕예 (王倪)이고, 왕예의 스승이 피의라고 한다. 《장자》 <지북 유> 편에 피의가 한 말이 언급되어 있다. "설결이 피의에 게 도를 물으니 피의가 말하였다. 그대가 그대의 몸을 단정히 하여 그대의 시선을 집중하면 자연의 화기(和氣)가 장차 이를 것이며 그대의 지각 작용을 수렴하여 그대의 사려 작용을 전일하게 하면 신명(神明)이 찾아와서 머물 것이다." 이 글은 장자가 피의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사상을 표 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황보밀이 《고사전》에서 피의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피의에게 그러한 사상이 있었던 것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궤(荷簣) : 그는 공자가 위나라에서 만난 은자이다. 이 이름도 실제 이름이 아니라, '삼태기를 메고 가다' 는 뜻을 취하여 마치 실제 인물인 것처럼 쓴 것이다. <논어> 의 <헌문> 편에 그에 관한 글이 보인다. 공자가 경쇠라는 악기를 치는 소리를 듣고서 하궤가 말하기를 "자기를 알 아주는 사람이 없거든 그만두고 말아야 할 것이니, 물이 깊으면 옷을 입은 채로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널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은 은자의 입장에서 공자가 당시 사회를 개선하고자 천하를 주유하는 것을 넌지시 비판한 것이다. 하조장인(荷蓧丈人) : 실제 이름이 아니라 '지팡이로 제초용 농기구를 메고 가는 노인' 이라는 뜻을 취하여 붙 인 이름이다. 《논어》의 <미자> 편에 그에 관한 기록이 있 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가 초나라에서 채나라로 가다가 공자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길을 헤매다가 지팡이 로 제초용 농기구를 메고 가는 노인을 만나 자기 선생님 을 보았느냐고 물으니, 그 노인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일하지 아니하고 오곡을 파종하지 않으면서 누가 그대의 선생이기에 찾는단 말인가?" 뒤에 자로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들은 공자는 그가 은자라 고 말하였다. 이로써 보면 당시 은자들은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직접 생산에 종사하면서 공자와 같은 구세주의자를 부질없는 짓을 하는 노인이라고 조소하고 있 었음을 알 수 있다. 한음장인(漢陰丈人) : 한음은 한수(漢水)의 남쪽을 뜻 하고 장인은 어른을 일컫는 말이다. 한음장인도 실제 이 름이 아니지만 그의 성명을 알 수 없기에 붙인 이름이다. 《장자》의 <천지> 편에 그에 관한 글이 있다. 공자의 제자 인 자공(子貢)이 초나라에 갔다가 노나라로 돌아오는 길 에 한수의 남쪽을 지나다가 마침 밭이랑 사이에서 채소 를 가꾸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동이로 우물 물을 날라다 가 채소밭에 물을 주는데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자공이 힘을 덜 들이고도 밭에 물을 줄 수 있는 용수레라고 하는 기계를 써보시지 않겠느냐고 하니 그 노인은 다음 과 같이 말하였다. "기계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기민하 게 움직여 해야 할 일이 있게 되고, 기민하게 움직여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임기응변하는 마음이 있 게 된다. 임기응변하는 마음이 가슴속에 있게 되면 순결 한 마음이 갖추어지지 않는다. 순결한 마음이 갖추어지 지 아니하면 정신이 안정되지 않나니 정신이 안정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도가 실리지 않는다." 노인의 이 말은 기술 문명이 초래할 수 있는 폐단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로써 보면 당시 은자들은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황석공(黃石公) : 황석공은 중국 하비현(下조縣) 사람으로 진나라 때 숨어 살았다. 장량(張良)이 그에게서 태 공병법(太公兵法)을 받아 공부하여 유방(劉邦)을 도와 서 한나라를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허유(許由) : 온 임금 때의 은자이다. 온 임금이 그에게 제왕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니 그가 받지 아니하고 영수(潁水)의 북쪽 기산(箕山) 아래로 도망가서 숨어 살았다고 한다. 뒷날 온 임금이 그를 초빙하여 구주(九州) 의 우두머리로 삼으려고 하니, 그는 이 말을 듣고 영수의 물가로 달려가서 귀를 씻었다고 한다. ※ 참고문헌 李學勤 主編, 《論語註疏》, 북경대학교 출판부, 1999/ 郭慶藩 撰, 《莊子釋》, 臺灣, 世界書局, 1981. 〔李康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