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 陰陽五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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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상에 있어서, 우주와 인간사(人間事)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개념. 이것은 동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철학 적 개념으로 서양 철학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사상이 다. 음양(陰陽)과 오행(五行, 木 · 火 · 土 · 金 · 水)은 원래 체계가 다른 사상이었으나,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 代)에 제(齊)나라의 추연(鄒衍)이 양자를 결합시켜 오늘 날처럼 병칭하게 되었고, 한대(漢代) 이후에는 보다 보 편화되어 천문(天文) · 의약(醫藥) · 음악 · 점복(占 卜 ) · 우주 · 자연 · 사회 · 인간 · 의술 등의 현상을 설명하는 틀로써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음양론〕 장립문(張立文)은 음양의 짝을 이룬 범주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첫째 주희(朱熹)가 음양을 오행과 함께 만물을 낳는 재료라고 생각했듯이, 객관 존재의 요소 또는 질료를 가리키며, 둘 째 대대(待對) · 통일(統一) · 변화의 기능을 가지고 있 는 객관 실체를 가리킨다. 즉 음양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 단히 운동 · 변화하며, 운동 · 변화를 자기의 존재 방식으 로 삼고, 음양 범주 그 자체는 상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양의 동태적 구조는 반드시 대대 · 통 일 · 변화의 3가지 기능을 구비하고 있다. 셋째 일체의 객관 사물이 구비하고 있는 속성을 가리킨다. 속성은 객 관 사물의 성질을 가리키는 것으로, 양은 강함〔剛〕 · 건 강〔健〕 · 더위〔熱〕 · 펼침〔伸〕의 상징이고, 음은 부드러움 〔柔〕 · 순종〔順]〕 · 추위〔寒〕 · 굽힘〔屈〕의 상징이다(자연 속성). 또한 양은 귀(貴) · 부(富) · 높음(尊)이고, 음은 천(賤) · 가난〔窮〕 · 낮음〔卑〕이며(사회적 속성), 양은 군 주〔君〕 · 아버지〔父〕 · 남편〔夫〕이고, 음은 신하〔臣〕 · 아 들〔子〕 · 아내(妻〕이다(등급의 속성). 그리고 양은 선 (善) · 인(仁) · 사랑〔愛〕이며, 음은 악(惡) · 사나움 [戾〕 · 잔인함〔殘〕이다(전통 도덕 속성). 이로부터 음양은 최대의 보편성과 포용성을 갖게 되는데, 음양은 자신의 속성으로 자연 · 사회 · 정치 · 도덕 등 각종 현상을 규정 하고 있다.
음양 사상의 내원은, 농경 사회에서 자연 현상을 관찰 하는 가운데, 햇볕〔陽)을 향한 것은 수확이 풍성하고, 해 를 등지고 그늘〔陰〕을 향한 것은 생산이 줄어들어, "그 그늘과 햇볕을 선택한다" (相其陰陽, 《詩經 · 公劉)는 인 식에서 비롯되었다. 음의 본래 의미는 해를 등지고 있어 햇볕이 비치지 못한다는 뜻인데, 《설문해자)(說文解字) 에는 “어두움〔闇〕이다. 물의 남쪽, 산의 북쪽이다" 라고 하였고, 서개(徐鍇)는 "산의 북쪽, 물의 남쪽은 해가 미 치지 못하는 곳이다" 라고 말하였다. 양의 본래 의미는 해를 향하고 있어 햇볕이 비치는 곳이다. 《설문해자》에 의하면 "높고 밝다" 〔高明〕고 했는데, 계복(桂馥)은 "높 고 밝다는 것은 그늘에 대(對)하여 말한 것이다" (《說文字 解義證》)라고 하였다. 또 양의 원래 글자는 '역' (易)인데, 《설문해자》에 의하면, “易은 열다〔開〕이다. 日 · - · 勿 로 되어 있다" 고 했다. 여기서 일(日)과 일(一)은 해[日] 가 지상〔一〕에 있다는 뜻이고, 물(勿)은 햇볕이 사방으 로 내려 쏘는 형상이다.
은대(殷代)에는 음양이 아직 상대적인 개념으로 있지 않았다. 《역경》(易經) 중에 음(陰) 자가하나 나타나는데, <중부>(中孚) 9, 2 효사(爻辭)에 "우는 학이 그늘에 있고, 그 새끼가 그것에 화답한다" (鳴鶴在陰 其子和之) 고 되어 있다. 이때의 음(陰)은 그늘 음(陰)과 같은 뜻으로 쓰인 것이다. 《상서》(尙書)에는 '음' 또는 '양' 자가 각각 세 번씩 나타날 뿐 함께 쓰이지 않았고, 《시경》(詩經)에도 '음' 이 아홉 군데, 양이 열여덟 군데 언급되지만, 음양을 같이 사용한 것은 한 곳뿐이다. 즉 《시경》 <대아(大雅) · 공유(公劉)> 에 "해 그림자 재시고 언덕에 올라 응달과 양지쪽을 헤아리시며"(匪景遍周 相其陰陽) 라고 하여, 해를 향했는가 또는 등졌는가의 뜻으 로 쓰였지만, 여기에는 추상적 · 철학적인 개념은 없다. 다만 주(周) 유왕(幽王) 2년(기원전 780)에 서주(西周) 의 내〔川〕가 모두 진동하였는데, 백양보(伯陽父)는 지진 이 발생한 원인에 대하여 "양(陽)이 숨어서 나타나지 못 하면, 음(陰)이 눌려서 증발할 수 없다. 이에 지진이 생 겨났다" 고 하여, 음양의 두 힘을 대거시킴으로써 자연 현상에 대한 음양의 영향을 말하고 있다.
춘추 시대에 이르러 음양은 현상을 해석하는 능력으로 각 방면에 운용되어, 중국 철학의 기본 개념이 되었다. 《논어》 중에는 양화(陽貨) 등 인명에 '양' 자가 나올 뿐 이지만, 《좌전》(左傳) · 《국어》(國語) 중에는 음양이 많이 발견되어, 서주 이래의 우주와 인생을 해석하는 데 쓰 이었다. <좌전> 희공(僖公) 16년의 기록을 보면, 이해 봄 별똥별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자, 송 양공이 숙흥 (叔興)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조짐인가? 길흉이 어 디에 있는가?" 숙흥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음양의 일입 니다. 길흉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길흉은 인간으로 인 하여 생깁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자연 현상을 길흉으 로써가 아니라, 음양으로 해석한 것이며, 여기에는 원시 과학적 사유가 들어 있다.
《국어 · 월어(越語)》에는 범려(范蠡)가 음양으로 천도 (天道)와 인도(人道)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 기재되어 있 다. 월왕(越王) 구천(句賤)이 오나라에 패한 뒤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치려 하자, 범려는 군사를 쓰는 방법을 이렇게 말하였다. "양이 지극하면 음이 된다. 음이 지극 하면 양이 된다. ··· 옛날 군대를 잘 운용하는 이는 천지의 상도(常道)를 따라서 그것과 함께 실행한다. 뒤쳐지면 음을 쓰고 앞서면 양을 쓴다." 범려는 음양의 개념으로 전쟁의 공격과 수비를 해석했던 것이다.
《묵자》(墨子)에는 "음양의 조화는 있지 아니함이 없 ···사시(四時)의 규칙을 음양이라 한다" (《묵자》 辭過) "사시가 순조로우면 음양, 비, 이슬이 때맞추어 내린다" (《묵자》 天志中)고 하여, 음양을 세 번 언급하였다. 《맹자》 에는 음양을 논한 곳이 많지 않다. 《맹자》에는 '양' 자가 여섯 번, '음' 자가 두 번 나오는데, '양' 자는 태양 · 인 명 · 지명을 가리키며, '음' 자는 '날씨가 흐림' (迨天之 未陰雨)과 '산의 북쪽' (箕山之陰)을 가리켜, 구체적인 사물을 지칭하고 있다.
장자(莊子)는 노자(老子)의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안고 있다" (萬物負陰而抱陽)는 생각을 계승하여, "음양 이란 기(氣)의 큰 것이다"(《莊子) 則陽)라고 하고, 음양이 서로 비추고 서로 다스리는 데서 만물이 생겨난다고 생 각하였다. 장자는 인간의 질병과 정서도 음양과 관련 있 다고 하여 "일이 만약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음양의 근심 이 있게 될 것이다. 만약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지지 않더 라도 뒤에 아무런 근심이 없는 것은 오직 덕(德) 있는 자 만이 할 수 있다" (《莊子》 人間世)고 하여, 일이 이루어지 지 못하면 징벌을 받을 수 있고, 일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음양의 기운이 들끓어, 조절 능력을 잃고 질병에 걸릴 수 도 있다고 보았다. 장자는 과도한 즐거움이나 분노는 음 기와 양기를 손상시킨다고 하여, "음양의 조화" 론을 전 개하였다.
《주역》(周易)의 핵심 사상은 음양학설로, 이의 저자는 음양과 괘(卦)를 결합시켜 《주역》의 구조를 형성하였다. 《주역》의 기초는 '- 과 '--' 의 두 가지 부호인데, 전자 를 양효(陽爻), 후자를 음효(陰爻)라고 일컫는다. 이 음 양의 효(爻)가 조합되어 괘(卦)가 만들어지는데, <주역> 은 음양학설을 이론의 기초로 삼아, 천지 만물의 생성 및 그 운동의 변화와 발전의 법칙 문제에 해답을 주고 있다. 《주역》은 세 개의 양효인 '☰'을 건(乾)이라 하고 하늘 과 아버지를 상징하였으며, 세 개의 음효인 ☷ 을 곤 (坤)이라 하여 땅과 어머니를 상징하였다. 《주역》의 <계 사〉(繫辭)에는 "한 번 음으로 되고 양으로 되는 것을 일 러 도(道)”(一陰一陽之謂道)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음 양을 모든 도리와 원칙으로 삼은 것이며, 형이상학적 특 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대 · 통일 · 변화의 규 칙성을 포괄하고 있다.
순자(荀子)는 《주역》의 음양 사상을 흡수하여 그의 자 연 철학의 한 부분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뭇별이 궤도 를 따라 돌고, 해와 달이 번갈아 비치며, 사계절이 차례 로 갈마들고, 음양이 크게 화합하며, 바람과 비가 널리 뿌려져 만물이 제각기 그 조화를 얻어 생겨난다" (《순자》 天論)고 하여, 음양이 뭇별, 해와 달, 사시 등과 함께 자 체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운동 · 변화한다고 생각하였다. 순자는 음양의 변화는 결코 어떤 외재적인 힘이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음양이 접촉하여 변화가 일어난 다" (《순자》 禮論)고 하여, 음양 자체의 접촉에 의하여 생 긴 것으로 간주하였다.
전국 시대에는 음양가(陰陽家)가 독립된 학파로 생겨 났는데, 그 대표 인물이 바로 추연(鄒衍)이다. 사마담(司 馬談)의 《육가요지》(六家要旨)에는 "음양가의 도술을 살 펴보면, 너무나 길흉의 징조를 중시하고 꺼리는 것이 많 고 ··· 그러나 그들이 나누어 놓은 사계절의 순서는 착란 시킬 수 없다" 고 하여 음양가의 특색을 설명하고 있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는 “추연(鄒衍)은 음양 으로써 운행을 주관하고 제후에게 드러났다" 고 했으며, 또 추연은 "음양의 사그러짐과 자라남을 살핀다”(《사기》 孟荀列傳)고 하였다. 음양 사상은 추연의 오행학설과 서 로 결합하여 음양오행설이 되고, 이것이 음양가의 기초 학설이 되었다.
〔오행론〕 '오행' 두 글자는 《상서》 <감서>(甘誓)에 처 음으로 나타나지만, 오행을 '금 · 목 · 수 · 화 · 토 라고 한다면, 이것은 이미 갑골(甲骨), 금문(今文)에도 나타 나 있다. 중국 철학에 있어서 오행은 대체로 네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다섯 가지의 물질적 요소이다. 즉 물〔水〕 · 불 〔火〕 · 나무〔木〕 · 쇠〔金〕 · 흙〔土〕은 인간의 일상 생활과 가장 접촉이 많고 가장 간단한 것이며, 또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가장 필수적이며 직접적인 생활 자료이다. 둘째, 다섯 가지의 도덕 행위를 가리킨다. 오행학설은 자연 영 역에서 사회 영역으로 확대되어, 일종의 의례에 합치되 는 행위 규범이 되었다. 이에 오행은 오상(五常), 즉 인 (仁) · 의(義) · 예(禮) · 지(智) · 신(信)의 다섯 가지 도 덕 규범과도 관련되어, 인은 목과, 의는 금과, 예는 화 와, 지는 수와, 신은 토와 연결된다. 셋째, 다섯 가지의 심리 활동 또는 정감 의식을 가리킨다. 오행학설은 사회 영역에서 다시 인간의 내면 세계로 확대되면서, 희노(喜 怒) · 호소(呼笑) · 우비(優悲) · 곡신(哭呻) 등과 대응되 어 인격화되기도 한다. 넷째, 하늘의 의지가 보여 주는 사물을 가리킨다. 즉 하늘의 의지는 '화 · 수 · 목 · 금 · 토 의 재이(災異)를 통하여 인간에게 전달됨으로써, 오 행은 천인감응(天人感應)의 감응물이 된다는 것이다.
오행 사상은 오랜 기간의 변화를 거치면서, 역사관에 도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전국 시대에는 오행을 다섯 가 지 덕(德)으로 규정하여 오덕종시(五德終始) 사상이 등 장하였다. 이 오덕종시설은 추연이 주장했는데, <한서> (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추자종시오덕' (鄒子終始五 德) 56편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고, 《여씨춘추》(呂氏春秋) 〈응동〉(應同) 편에 다 음과 같은 오덕종시의 내용이 남아 있다.
"대체로 제왕이 장차 일어나려 하면 하늘은 반드시 조 짐을 아래 백성에게 보여 준다. 황제(黃帝) 때에 하늘이 큰 지렁이와 큰 청개구리를 보여 주었다. 황제가 말하였 다. 토기(土氣)가 승(勝)하다! 토기가 승하므로 그 색깔 은 노랑을 숭상한다. 그 일거리로 삼는 것은 흙〔土〕이다. 우(禹) 임금 때, 하늘은 초목을 가을 겨울에도 죽이지 않 음을 보여 주었다. 우 임금이 말하였다. 목기(木氣)가 승 하다! 목기가 승하므로 그 색깔은 파랑을 숭상한다. 그 일거리로 삼는 것은 나무〔木〕이다. 탕(湯) 임금 때, 하늘 은 금칼이 물에서 생기는 것을 보여 주었다. 탕 임금이 말하였다. 금기(金氣)가 승하다! 금기가 승하므로 그 색 깔은 흰 색을 숭상한다. 그 일거리로 삼는 것은 쇠(金)이 다. 문왕 때에 하늘이 불을 보여 주었는데, 붉은 새가 단 서(丹書)를 물고 주나라 사(社)에 모이었다. 문왕이 말 하였다. 화기(火氣)가 승하다! 화기가 승하므로 그 색깔 은 빨강을 승상한다. 그 일거리로 삼는 것은 불〔火〕이다. 불을 대신하는 것은 반드시 물[水]일 것이다. 하늘은 또 먼저 수기(水氣)가 승한 것을 보여 주었다. 수기가 승하 므로 그 색깔은 검은 색을 숭상한다. 그 일거리 삼는 것 은 물〔水〕이다. 수기가 지극하나 알지 못한다. 운수가 갖 추어지면 장차 토(土)로 옮겨 가게 될 것이다."
오덕종시설은 주대(周代) 사람의 '덕을 닦은 자가 천 명을 받는다' 는 천명관(天命觀)과 크게 다른 역사관을 보여 주었다. 즉 황제에서 하(夏)의 우(禹), 은(殷)의 탕 (湯), 주(周)의 문왕(文王) 그리고 진(秦) · 한(漢)에 이 르기까지, 역사 발전의 저력은 오기(五氣)의 운행이며, 인간의 의지는 결정적인 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오덕(五德)의 덕은 기(氣)의 운행에 합치되어야 하는 데, 황제는 토덕으로 천하의 왕이 되고, 하우(夏禹)는 목 덕으로 천하의 왕이 되었다는 것은, 오행의 상승(相勝) 으로 역사의 변화를 설명한 것이다. 즉 토덕은 수덕을 이 기고, 목덕은 토덕을 이기며, 금덕은 목덕을 이기고, 화 덕은 금덕을 이기며, 수덕은 화덕을 이긴다는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진 · 한 시대의 사상 조류를 잘 반영하고 있다. 진한 시대에는 오행 사상이 음양과 서 로 결합되어, 정치 · 경제 · 생활 · 도덕 · 자연 과학 등 각 방면에 영향을 주었다. 《여씨춘추》 · 《춘추번로》春秋繁 露) 등을 참고로 오행과 관련된 것을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음양오행〕 한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黃帝內徑)을 보면, "대체로 오운 음양(五運陰陽)은 천지의 도이다. 만 물의 강기(綱紀)이고 변화의 부모이며, 살리고 죽임〔生 殺〕의 근본 시작이고 신명(神明)의 창고이다. 통하지 않 을 수 있겠는가?"(《秦問》 天元氣大論)라고 하였다. 여기서 오운은 목운(木運) · 화운 · 토운 · 금운 · 수운의 줄인 말 이다. 우주 만물은 오행 법칙에 의하여 운동 · 변화하며, 오행의 구조는 사물이 보편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것이 다. 오행은 앞서 언급한 대로 상생 상승(相生相勝)의 대 대(待對) 통일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무가 쇠를 만나면 베어지고, 불은 물을 만나면 꺼지고, 흙은 나무를 만나면 끌어올려지고, 쇠가 불을 만나면 이지러지고, 물이 흙을 만나면 끊어진다. 만물이 모두 그러하다" 寶命全形 論).
음양오행은 한대(漢代)의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에 의하여 더욱 체계화되었다. 그는 "하늘은 모 든 만물의 조상"이라고 하였고, "천 · 지 · 음 · 양 · 목· 화 · 토 · 금 · 수, 아홉은 사람과 더불어 열〔+〕이 되는 데, 하늘의 수(數)가 모두 거론된 것"이라고 하였다. 천 지 · 음양 · 오행 · 인간을 자연(天)의 이치로 생각한 동 중서는, 이 하늘의 수를 '10단' (十端)이라고도 했는데, 10단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천 · 지 · 인' 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음양 오행에 통하며, 음양 오행은 이 셋을 합하여 하나의 몸〔一體〕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그는 "천 에는 음양이 있고, 사람에게도 음양이 있다" "음은 형기 (刑氣)이고 양은 덕기(德氣)이다" "하늘은 양에게 맡기 고 음에게 맡기지 않으며, 덕을 좋아하지 형 (刑)을 좋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음양을 가치론적으로 파악하면서 상하 · 주종 등으로 차별화하였다. 이에 "정치를 하는 데 형벌에 맡기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며 왕도(王道) 가 아니다" 라고 했고, 삼강(三綱)의 내용이 되는 "군신, 부자, 부부의 의미도 모두 음양의 도(道)에서 취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군주 · 아버지 · 남편은 양(陽)으로 높고 주(主)가 되며, 신하 · 아들 · 아내는 음(陰)으로 낮고 따 라가는 존재가 된다. 동중서는 "천에는 오행이 있다. 첫 째는 목(木), 둘째는 화(火), 셋째는 토(土), 넷째는 금 (金), 다섯째는 수(水)라고 한다. 목은 오행의 시작이요, 수는 오행의 끝이며, 토는 오행의 가운데이다. 이것은 천 의 순서이다. 목이 화를 낳고, 화가 토를 낳고, 토가 금 을 낳고, 금이 수를 낳고, 수가 목을 낳는다. 이것이 아 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다. ··· 그러므로 오행이란 효자 · 충 신의 행위이다" 라고 하여, 오행 상생(相生) 사상을 전개 하였다. 즉 동중서는 인격적 자연(天)의 원기(元氣)에 서, 음양 · 오행 · 사시(四時)를 통하여 만물이 생겨나는 우주론을 전개했던 것이다.
위진 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에는 음양오행학설이 주로 도교의 전적(典籍)에 운용되어 나타나며, 수 · 당 시대에도 한대 학자들의 주(注)를 풀이〔疏〕만 하였을 뿐 이론적인 고찰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송대(宋代)에 이르면, 주돈이(周敦頌)가 태극도(太極圖)를 그려 태극 과 음양오행 및 만물의 관계를 설명하였는데, 이것은 동 중서 이후 가장 체계적으로 우주와 인생에 대하여 설명 한 것이 되었다. <태극도>는 도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 는데, 그 주요한 부분이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의 <수화광곽도)(水火匱廓圖)와 <삼오지정도>(三五至精圖) 에서 나왔다고 한다.
주돈이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극(無極)이면서 태극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움직임이 끝까지 가면 고요해진다. 고요함이 음을 낳고 고요함이 끝까지 가면 다시 움직인다. 한 번 움직이 고 한 번 고요해지는 것은 서로 그 뿌리가 된다. 나뉘어 음이 되고 나뉘어 양이 되니, 양의(兩儀)가 거기에 세워 진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 · 화 · 목 · 금 · 토를 낳는다. 다섯 기운(五氣)이 순조롭게 퍼져 사계절〔四時〕 이 운동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다. 음양은 하나의 태 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의 생겨남은 각기 그 성질을 하나씩 갖는다. 무극의 참됨과 이(二, 음양) · 오 (五, 오행)의 정수가 묘하게 합하여 엉긴다. 하늘의 도는 남성을 이루고, 땅의 도는 여성을 이룬다. 두 기운이 교 감하여 만물을 변화 · 생성시킨다. 만물이 생겨나고 또 생겨나 변화가 무궁하다.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남을 얻 어 가장 영특하다. ··그러므로 하늘의 도를 세워 음과 양 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부드러움〔柔〕과 굳셈〔〕剛〕이 라 하고, 사람의 도를 세워 인(仁)과 의(義)라고 한다."
《태극도설》의 최고의 범주는 '무극이면서 태극' 이며, 기초적인 것은 음양, 오행, 천 · 지 · 인이다. 이것은 동중 서의 10단과 일치하는 것이다. 주돈이는 음양이 태극에 서, 오행이 음양에서 생겨났다고 하였으며, 태극은 본래 끝이 없는 무극이라고 보았다. 그는 오행을 오기(五氣) 로 간주하여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 극이라고 하여, 음양 속에 태극이 있고, 오행 속에 음양 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음양과 오행의 정기(精)가 합하여 모든 사물을 생겨나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하늘〔乾〕과 땅〔坤〕의 길〔道〕이 남녀를 각각 이룬다고 보 았고, 인간은 음양오행의 가장 빼어난 기운〔秀氣〕을 얻 어 생겨났으므로, 가장 영특하여 만물보다 한 단계 높은 존재라고 하였다. 이처럼 주돈이의 《태극도설》은 뒷날 음양오행과 태극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모델이 되었 다.
음양오행설이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며,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음양오행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참위설(讖說)과 풍수지리설(風水地 理說)이 크게 유행하였다. 또한 음양오행설은 풍수지리 설이나 참위설뿐만 아니라 성리학의 세계관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는데, 조선 중엽에 일어난 일련의 철학 논쟁들, 즉 이언적(李彥迪)과 손숙돈(孫叔數)의 무극태극 (無極太極) 논쟁,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의 사단 칠정(四端七情) 논쟁,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사단 칠정 논쟁 등에서, 음양오행설이 세계관의 기본 원리로 관철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참고문헌  張立文, 《中國哲學範疇發展史〉天道篇》 中國人民 大學出版社, 1989/ 謝松齡, 《天人象 : 陰陽五行學說史導論》, 山東文 藝出版社, 1989/ 芷人, 《陰陽五行及其體系》, 文津出版社, 1992. 〔鄭仁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