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 본당
義州本堂
글자 크기
9권

1 / 3
▲ 의주 성당 전경.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동외동 소재. 1911년에 설립되어 1950년에 폐쇄된 침 묵의 교회. 주보는 성모 승천. 관할 구역은 의주군(義州 郡) 전 지역(비현 본당 구역 제외) 및 삭주군(朔州郡) 전 지역. 관할 공소는 영삭(寧朔) · 청성진(淸城鎮) · 삭주 (朔州) · 수진(水鎮) · 고성(古城) · 송장(松長). 〔교 세〕 1937년 474명, 1945년 1,500명. 〔역대 신부〕 초대 서 병익(徐丙翼) 바오로(1911. 9~1924), 2대 클리어리(P. Cleary, 吉) 파트리치오(1924~1928. 4), 3대 펠로퀸(L. Peloquin, 白) 레오(1928. 4~1931. 1), 4대 레이(T. Ray, 李) 토마스(1931. 1~11), 5대 부스(W. Booth, 夫文化) 굴리엘 모(1931. 11~1932. 6), 6대 레이(1932. 6~10), 7대 치섬 (Donald Chisholm, 池) 도날도(1932. 10~1934. 2), 8대 파디 (J. Pardy, 巴智) 야고보(1934. 2~1941. 12), 9대 강영걸(康 永杰) 바오로(1942. 2~1943. 4), 10대 김교명(金敎明) 베네딕도(1943. 4~1950.6). 〔전 사〕 의주는 옛부터 중국으로 가는 관문으로, 성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초대 신자들이 북경(北京)을 왕 래하는 데 거쳐야 했던 통로였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회 의 성지라 할 만큼 역사적 고적이 많은 곳이다. 교우들은 프랑스 선교사들을 국내로 안내하거나 북경 교회와 연락 을 취하기 위하여 주막을 열고 빈번히 왕래하였다. 그러 나 의주에 선교사들의 입국 통로가 점차 육로에서 해로 (서해)로 바뀌면서, 점차 선교사들은 남부 지방에 치중 하여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1896년 평양 본당이 평안도에서 최초로 설립되자 교 회 당국은 1898년 샤플랭(Chaplain, 蔡) 신부로 하여금 숙천(肅川) 섶가지 [薪枝里]에 새 본당을 신설하도록 하 면서 의주 지방의 선교를 서둘렀다. 샤플랭 신부는 1899년 가을 의주를 첫 번째 선교지로 정하여 평북 지 방 최초의 의주 공소를 마련하였다. 1902년에 영유(永 柔) 본당이 신설되고 섶가지 본당을 영유 본당에서 관할 하게 되자 의주 지방도 영유 본당의 소속 공소가 되었다. 〔본당 설립과 폐쇄〕 1911년 9월 의주 본당 초대 주임 으로 임명된 서병익 신부는 의주 읍내 남문동(南門洞)에 임시 성당을 마련하고 사목하기 시작하였다. 1917년 의 주군 남면 신미도 공소의 최응하(崔應夏, 베드로) 회장 이 평생 모은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면서 이듬해 동외동 (東外洞)에 성당 부지를 마련하고 공사를 시작하여 1919년 10월 7일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주례로 성 당 준공식과 봉헌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새 성당 봉헌식 을 마친 지 1개월 뒤인 11월 4일 상해의 임시 정부에서 국내의 천주교 신자들에게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2천 만 동포와 행동을 같이해 주기를 호 소하는 <천주교 동포에게〉란 제목의 문서가 의주 본당에 서 일본 관헌에 발각 · 압수되는 사건이 있었다. 1921년 11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2명 이 의주 본당으로 파견되었다. 1923년 평안남북도가 메 리놀 외방전교회의 포교 전담지가 되면서, 의주 본당은 평양교구 신설 준비차 한국에 진출하는 메리놀 외방전교 회 선발대 회원들의 본거지가 되어 이해 5월 한국에 도 착한 지부장 번(P.J. Byrne, 方溢思) 신부는 의주에 본부를 설치하였다. 그 해 10월 클리어리 신부, 11월에 모리스 (J.E. Morris, 睦怡世) 신부가 입국하여 번 신부와 합류했 다. 이에 따라 1924년 서병익 신부는 서울교구로 돌아 가고 이후 메리놀회 신부들이 본당 사목을 담당하였다. 2대 주임 클리어리 신부는 해성유치원을 확장해서 해성 학원(海星學院)을 신설하여 문맹 퇴치에 힘썼고, 1925 년에 캐시디(Joseph Cassidy, 姜) 신부가 사재를 들여 양로 원을 마련하여 평양교구 내 최초의 자선 사업 기관이 되 었다. 클리어리 신부의 재임기였던 1927년 평양교구가 설정되어, 의주 본당은 서울교구에서 평양교구로 이속되었다. 8대 주임 파디 신부는 주일학교 운영, 유치원 및 양로원 시설 확장 등 교회 시설 확충을 위해 노력하였고, 해성학교를 정식 인가받아 운영하였다. 한편, 1924년 10월 메리놀회 수녀들은 의주에 임시 본부를 정하고 시 약소(施藥所), 고아원 개설 등 자선 사업에 힘썼다. 그러나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평양교구 내의 모든 메리놀회 성직자들이 체포 구금되고 평양교구가 방 인 교구(邦人敎區)로 되었다. 1942년 2월 강영걸 신부 가 주임으로 부임하여 인근의 강계(江界) · 중강진(中江 鎭) 본당까지 맡아 사목하다가 1943년 4월 김교명 신부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1945년 교회 부속 해성학교와 유치원 등은 폐쇄되었지만, 방인 수도회인 '영원한 도움 의 성모 수녀회' 분원이 마련되어 수녀들이 양로원 운영과 신심 단체 지도를 담당하였는데, 이 무렵 본당의 교세는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이후 공산 당국의 감시하에서도 의주 변문에서 복자 성월 행사가 거행되었고, 또 김 교명 신부는 폐허화된 의주 변문과 선교사들이 몰래 국내로 잠입하던 의주성 수구문(水口門) 일대를 보수하고 자 공산 당국과 교섭을 벌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50년 6월 25일 김교명 신부가 공산 당국에 의해 체포 됨으로써 본당이 폐쇄되었다. (→ 메리놀 외방전교회 ; 모리스, 존 에드워드 ; 침묵의 교회 ; 평양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平壤教區史 編纂委員會 編, 《天主 敎 平壤教區史》, 분도출판사, 1981/ 서상요,〈義州本堂), 《교회와 역 사》 96호, 1983. 〔金志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