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론 義化論

〔라〕Theoria Justificatio · 〔영〕Theory of Jus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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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론을 주장한 사도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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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론을 주장한 사도 바오로.


율법을 행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사람이 의롭게 되어 구원받는다는 사도 바오로의 가르 침. 루터(M. Luther, 1483~1546)가 종교 개혁을 일으켰을 때 근간으로 삼았던 교리로, 그는 인간이 '오직 성서와 은총과 믿음만으로' (sola Scriptura, sola Gratia, Sola Fide) 구 원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의 선한 행동 이나 가톨릭 교회의 성사, 특히 고해성사를 부정하였다. 하지만 가톨릭에서 의화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 안에 일어난 내면적인 변화로써, 능동적인 의미에서는 죄의 상태에서 은총의 상태로 건너가면서 하느님이 인간의 영 혼을 변화시키는 행위이다. 수동적인 의미에서는 하느님 이 의롭게 하는 행위로써 영혼의 변화나 의화에 수반되 는 것을 포함한다. 가톨릭에서는 의화론 또는 성의론(成 義論)이라 하고,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의인론(義認論) , 인의론(認義論) 또는 칭의론(稱義論)이라고 한다. I . 성서에서의 의화론 의화론은 종교 개혁의 전통에 있는 프로테스탄트에게 는 금과옥조와도 같은 신앙 체계이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 중에는 의화론이 바오로 신학의 중심이며, 그리 스도 복음의 정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루터가 가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켰을 때 근간으로 삼 았던 교리가 의화론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종교 개혁 직후, 1547년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루터의 의 화론에 맞서서 나름대로의 의화론 교리를 천명하였다. 이렇듯 의화론은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에게 매우 중요한 교리이다. 그리고 의화론은 바오로 서간에 나타난 구원론의 핵심 주제이다. 바오로는 로마서 3장 24-25절에서 예수의 대 속적 죽음으로 이룩된 인류 구원을 밝히면서 네 가지 표 현을 사용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느 님은 그분을 세워 그분의 피를 통해서 신앙으로 (얻는) 속죄 (제물)로 삼으셨으니 그것은 과거에 저질러진 죄들 을 너그럽게 보아 넘기심으로써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의화(義化, Sδικαιόω), 속량(贖 良, ἀπολύτρωσις) , 속죄물(贖罪物, ἱλαστήριον, 관서(寬 恕, πάρεσις)라는 개념들을 사용했다. '의화' 는 구원을 말하는 한 가지 표현이다. 바오로에 따르면, 인간은 율법을 지키거나 양심을 지 켜서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인 간을 구원하기로 약속하시고 또한 그 약속을 성실히 지 키심으로써, 당신의 신의를 드러내신 덕분에 인간이 의 롭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화론의 핵심 사상이다. 의 화론에 등장하는 "의롭게 하다" , "의롭게 되다"라는 동 사는 바오로의 친서에 26번 나오는데, 갈라디아서에 8 번〔2, 16(3번). 17 : 3, 8. 11. 24 ; 5, 4〕, 고린토 전서에 3 번〔4, 4 ; 6, 11(2번)〕, 로마서에 15번〔2, 13 ; 3, 4. 20. 24. 26. 28. 30 ; 4, 2. 5 ; 5, 1. 9 ; 6, 7 ; 8, 30(2번). 33〕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의화론은 로마서의 핵심 주제이 다. 그리고 인간은 율법의 행업과 상관없이 그리스도 예 수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라는 공식은 바오로 서간 중 갈라디아서(2, 16), 로마서(3, 28), 필립비서(3, 9)에만 제한되어 나온다. 〔죄인으로서의 인간과 하느님의 진노〕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1장 18절에서 3장 20절까지 인간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진노' 를 서술한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가릴 것 없이 인간은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에(3, 9-20) 하느님의 진노가 이방인들뿐 아니라(1, 18-32) 유대인들에게 도(2, 1-3, 8) 내렸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진노가 내린 이유를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과연 하느님의 진노는 진리를 불의로 짓누르는 인간 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를 거슬러 하늘로부터 계시됩니 다. 그것은 하느님에 관해서 알 만한 것이 그들 가운데에 환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실상 하느님께서 그들에 게 환히 드러내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세상이 창조된 이래 그 지으신 것들을 통하여 이성(의 눈)에는 보입니 다. 그래서 그들은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실 그들은 하느님을 알고서도 (그분께) 하느님으로서의 영광과 감 사를 드리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네 (허튼) 생각들로 허 망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은 어두워졌습니 다. 그들은 지혜 있는 자들이로라 자처하고 있지만 어리 석은 자들이 되었고 썩어 없어질 수 없는 하느님의 영광 을 썩어 없어질 사람과, 날짐승들과 네발짐승들과 길짐 승들의 형상을 닮은 꼴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의 마음의 욕정대로 그들을 더러 움에 부치시어 자기네 몸을 스스로 욕되게 하도록 버려 두셨습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뒤바꾸었 고 조물주 대신 피조물을 위하고 받들어 섬겼습니다. 그 분은 세세에 찬송받으시옵니다. 아멘.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을 욕된 정념에 넘겨주셨 습니다. 실상 그들의 여자들은 자연스러운 성교를 자연 에 반대되는 성교로 뒤바꾸었으며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와의 자연스러운 성교를 버리고 자기들끼리 서로 색 정에 불탔습니다. 그러면서 남자들이 남자들과 파렴치한 짓을 행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 몸을 가 지고 (저지른) 탈선에 마땅한 대가를 받았습니다. 그리 고 그들은 하느님을 인식하는 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을 그들의 분별없는 정신대 로 버려 두셨고 그들은 해서는 안될 일을 하기에까지 이 르렀습니다. 그들은 온갖 불의, 악행, 탐욕, 악의로 가득 차 있고 질투, 살인, 싸움, 사기, 교활이 가득합니다. 그 들은 수군덕거리며 헐뜯고, 하느님을 미워하고, 포악하 며 오만하고 허세를 부리며 고약한 짓을 고안해 내고 부 모에게 거역하며 지각없고 신의 없고 몰인정하고 무자비 합니다. 이런 짓들을 행하는 자들은 죽어 마땅하다는 하 느님의 법규를 잘 알면서도 그들은 그 짓을 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행하는 자들에게 갈채마저 보냅니다" (1, 18-32). 이방인들은 피조물을 이성으로 살펴보면 창조주를 알 수 있는데도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않았다(2021절). 이방인들은 불멸하는 하느님의 영광 대신에 썩어 없어질 사람과 날짐승과 네발짐승과 길짐승 모양의 형상 을 만들어 섬겼다(23절, 25절). 또한 그들은 욕정에 압도 되어 동성애와 같은 파렴치한 짓을 했다(24절, 26-27절). 그리하여 그들은 온갖 죄악들을 저지르게 되었다(28-31 절). 이어서 바오로는 하느님의 진노가 유대인들에게 내린 이유를 밝힌다. "그런데 그대는 명색이 유대인이요, 율법을 믿고 안심 하고 있으며 하느님을 자랑삼고 또한 (그분의) 뜻을 알 고 있으며 율법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요긴한 것을 가 려볼 줄 알고 눈먼 자들의 인도자요 어둠 속에 있는 자들 의 빛이며 무식한 자들의 교육자요 철없는 자들의 선생 이며 인식과 진리의 형상을 바로 율법 안에 가지고 있노 라 자처하는 터에-남은 가르치면서 왜 그대 자신을 가 르치려고는 하지 않습니까? 도둑질하지 말라고 설교하 는 그대가 왜 도둑질을 하며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 대가 왜 간음하며 우상들이라면 끔찍하게 싫어하는 그대 가 왜 신전을 노략질합니까? 율법을 자랑으로 삼는 그대 가 왜 율법을 어겨 하느님을 욕되게 합니까? 과연 (성서 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느님의 이름이 그대들 때문에 이 방 민족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습니다. 실상 할례란 그대가 율법을 준행할 때에야 유익합니 다. 그대가 율법을 어기는 자라면 그대의 할례는 다시 비 할례로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비할례(자)가 율법 의 규정들을 지킨다면 그의 비할례가 할례로 간주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본래의 비할례(자)라도 율법을 다 지키면 (율법) 문자와 할례를 가지고도 율법을 어기 는 그대를 심판할 것입니다. 실상 겉모양뿐인 유대인이 란 없는 법이고 살에 드러나는 겉모양만의 할례라는 것 도 없는 법입니다. 오히려 속이 유대인이어야 하며 (율 법) 문자가 아니라 영 안에서 (받은) 마음의 할례라야 합 니다.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들로부터 오지 않고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란 무엇이겠습니까? 가지가지로 많습니다. 우선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들을 위탁받았습니다. 그런데 몇몇이 불충 했다고 해서 어떻다는 겁니까? 그들의 불충이 하느님의 신의를 무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진실하신 분으로 드러나야 하겠습니 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쟁이로 드러나도 말입니다. (성서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당신 말씀으로 의로우시다고 인정받고 당신이 판단을 받 으실 때 이길 수 있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의 가 하느님의 의로움을 돋보이게 한다면 우리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진노를 쏟아 내시는 하느님이야 말로 부당하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내가 사람들의 관 례대로 말해 보는 것입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러고서야 하느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나의 거짓 때문에 하느님의 진실하심이 그 영광을 위하여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나는 죄인으로 심판을 받고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모독당하고 있듯이 그리고 어떤 자들이 우리가 그런 말 을 한다고 헐뜯고 있듯이, 우리는 과연 선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악이라도 행하자는 것입니까? 이런 자들은 심판 을 (받아) 마땅합니다" (2, 17-3, 8).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진 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2, 12-24). 따라서 유대인 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으며 그들이 행하는 할례도 구원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2, 24-29). 바오로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 느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 이방인들은 이성으 로 하느님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대신 우 상들을 섬겼고, 유대인들은 율법을 제시받고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죄인들이다.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서술한 하느님의 진노 사상은 구약성서의 가르침에 바탕 을 두고 있다. 구약성서에서도 '야훼의 진노' 는 유일신 신앙을 저버리고 당신께 충실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 (출애 32, 10 ; 신명 11, 16-17 ; 이사 2, 20 ; 5, 25 ; 예레 21, 12 ; 39, 31)과 악한 행동을 일삼고 있는 이방인들(이 사 10, 5-11 ; 에제 36, 5-6) 모두에게 내린다. 〔하느님의 의로움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1장 16-17 절에서 로마서 전체의 기본 명제를 제시하면서 '하느님 의 의로움' 을 말한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 니다. 복음은, 믿는 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먼저 유대인 그 다음에는 헬라인도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능력 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이 (복음) 안에 하느님의 의로움 이 신앙에서 신앙으로 계시됩니다. '신앙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습니다" (1, 16-17). 바오로는 이어서 죄인인 인간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진노를 서술한 후에(1, 18-3, 20),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이룩된 하느님의 의로움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제 율법과는 상관없이 율법과 예언자들에 의해 증언된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께 대한 신앙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차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상 모든 이가 범죄하였고 그래서 하느님 의 영광을 빼앗겼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되었습니 다. 하느님은 그분을 세워 그분의 피를 통해서 신앙으로 (얻는) 속죄 (제물)로 삼으셨으니 그것은 과거에 저질러 진 죄들을 너그럽게 보아 넘기심으로써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시대에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기 위함이며 또한 당신이 의로우시고 예수께 대 한 신앙으로 (사는) 이를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 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그럴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무슨 율법으로 인해서입니까? 행위의 율법으로 (인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신앙의 율법으로 인해서입니다. 실상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업과는 상 관없이 신앙으로 의롭게 된다고 판단합니다. 아니면, 그 분은 유대인들만의 하느님이시겠습니까? 이방 민족들의 (하느님)도 되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방 민족들의 (하 느님이시기)도 합니다. 정녕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 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할례를 신앙으로 의롭게 하시 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할례도 신앙을 통해서 (의롭게 하 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신앙으로 율법을 폐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율법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3, 21-31). 바오로가 전개한 의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 느님의 의로움' 이다. 그는 하느님의 의로움에 근거하여 자신의 의화론을 서술하였다. 따라서 의화론을 이해하려 면 '하느님의 의로움'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하느님의 의로움' 은 우리 에게 생소한 표현이기 때문에 그 뜻을 올바로 헤아리기 란 쉽지 않다. 여기서는 구약과 로마서에서 쓰인 '하느 님의 의로움' 의 용례를 통해서 그 의미를 찾도록 하겠 다. 바오로가 언급한 '하느님의 의로움' 이란 표현은 하느 님의 진노와 마찬가지로 구약성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야훼의 의로움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가장 오래된 전승은 드보라의 노래이다. "물 구유 사이에 서 있는 양치기들의 목소리에 따라 거기에서 그들은 주님의 의로운 업적을 노래하네.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선도하신 의로운 업적을 그때에 주님의 백성이 성문께로 내려갔 네"판관 5, 11).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여자 판관으로서,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를 물리친 여자 예언자인데 그가 부른 승리의 노래 가운데 '야훼의 의로움' 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드보라가 노래한 야훼의 의로움은 야훼가 이스라엘에 베풀어 주신 구원과 승리를 뜻한다. 또한 예언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 앞으로 나서시오. 내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베푸신 의로운 업적을 모두 들어, 주님 앞에서 여러분과 시비를 가려야 하겠소"(1사무 12, 7)라고 했는데, 여기서 도 야훼의 의로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원수들의 위협과 억압에서 이끌어 낸 구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구약에 나 타난 '야훼의 의로움' 은 '야훼의 구원' 을 뜻한다. 이러한 사상이 담겨 있는 성서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내 말을 들어라, 마음이 굳은 자들아 정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아. 나는 내 정의를 가까이 가져왔다.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나의 구원은 지체하지 않는다.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는 시온에 구원을 베 푼다"(이사 46, 12-13). "내가 재빠르게 나의 정의를 가까 이 가져오리니 나의 구원이 나아가고 나의 팔이 민족들 을 심판하리라. 섬들이 나를 고대하며 나의 팔에 희망을 걸리라.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어라. 밑으로 땅을 바라보 아라. 하늘은 연기처럼 스러지고 땅은 옷처럼 해어지며 그 주민들은 모기 떼처럼 죽어 가리라. 그러나 나의 구원 은 영원하고 나의 정의는 꺾이지 않으리라"(이사 51, 5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 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정 의가 곧 드러나리라"(이사 56, 1). "저의 입은 당신의 정의를, 당신 구원의 행적을 온종일 이야기하리니 저로서 는 그 수를 이루 다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저는 주 하느님의 위업을 칭송하며 들어가 오로지 당신의 정 의만을 기리리이다"(시편 71, 15-16). "저의 혀도 온종일 당신의 정의를 이야기하리니 저의 불행을 꾀하던 자들이 부끄러워 얼굴 붉혔기 때문이옵니다"(시편 71, 24). '하느님의 의로움' 이라는 표현은 바오로 친서에 여덟 번 언급된다(2고린 5, 21 ; 로마 1, 17 ; 3, 5. 21. 22. 25. 26 ; 10, 3). 대부분 로마서에서 언급되는 '하느님의 의 로움'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로마서에 나타난 용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서에서 '하느님의 의로움' 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낱말은 '하느님의 신의' , '하느 님의 진실' , '하느님의 은총' 이다. "그런데 몇몇이 불충했다고 해서 어떻다는 겁니까? 그 들의 불충이 하느님의 신의를 무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 는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진실하신 분 으로 드러나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쟁이로 드러나도 말입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 다. '그것은 당신이 당신 말씀으로 의로우시다고 인정받 고 당신이 판단을 받으실 때 이길 수 있기 위함입니다' " (로마 3, 3-4). "그러나 만일 나의 거짓 때문에 하느님의 진실하심이 그 영광을 위하여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나는 죄인으로 심판을 받고 있습니까?" (로마 3, 7). "실상 모든 이가 범죄하였고 그래서 하느님 의 영광을 빼앗겼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되었습니 다" (로마 3, 23-24). 또한 로마서에서 '하느님의 의로움' 과 반대되는 낱말 은 '하느님의 진노' 이다. "과연 하느님의 진노는 진리를 불의로 짓누르는 인간 들의 온갖 불경과 불의를 거슬러 하늘로부터 계시됩니 다"로마 1, 18). "그러나 우리의 불의가 하느님의 의로움 을 돋보이게 한다면 우리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 까? 진노를 쏟아 내리시는 하느님이야말로 부당하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내가 사람들의 관례대로 말해 보는 것입니다"(로마 3, 5). "하느님께서는 진노를 보이시고 당신의 권능을 알리시려고, 멸망하도록 마련된 진노의 그릇들을 크나큰 인내로써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그리 고 이것은 영광을 받도록 그분께서 미리 마련하신 자비 의 그릇들에게 당신 영광의 풍부하심을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으니"(로마 9, 22-23) 그런데 9장 22-23절에선 '진노의 그릇들' 과 '자비의 그릇들' 이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나타난다. 즉, 진노 와 자비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앞에서 '하느님의 의로 움' 과 반대되는 낱말이 '하느님의 진노' 였고, 9장 2223절에선 '진노' 와 '자비' 가 반대되는 개념으로 나타나 기 때문에 '하느님의 의로움' 과 '하느님의 자비' 는 같은 의미라 하겠다. 이렇게 볼 때 '하느님의 의로움' 은 '하느님의 신의' , '하느님의 진실' , '하느님의 은총' ,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 이다. 이런 표현들에 담겨 있는 의미는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섬기겠다는 약속을 저버렸지만, 하느님은 자비 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 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의롭게 하다' , '의롭게 되다 라는 동사에 담긴 의미도 '하느님의 의로움' 에 따 라 풀이하면 하느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어 자비로이 죄 인을 의인으로 간주하셔서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하느님 께서 신실하셔서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키 신다는 내용은 로마서 9-11장에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 들은 하느님과 맺었던 약속을 저버렸지만 하느님은 자신 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공로를 쌓거나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약속 을 잊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키시는 '하느님의 자비' , 곧 '하느님의 의로움' 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구원받는다.

〔의 미〕 일부 프로테스탄트에선 바오로의 의화론에 근 거하여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주창한다. 특히, 루터 및 그의 영향을 받은 프로테스탄트 일부에서 는 '오직 성서만으로 (sola scriptura) '오직 은총만으로'(sola gratia), '오직 믿음만으로' (sola fide) 구원받는다고 주장한다. 루터는 자신의 개혁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는 말에 얽매인 나머지 행동과 실천을 경시하고,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간' 으로 평가 절하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바오로의 의화론은 결코 인간의 무행동 · 무실천을 드 러내는 교리가 아니다. 그가 의화론을 전개하면서 말하 는 행위는 인과응보와 상선벌악에 젖어서 율법을 지키 고, 성전에 헌금을 많이 하면 의인이고 구원받는다고 주 장하는 유대인들의 율법의 행업을 가리킨다. 그리고 바 오로가 로마서를 비롯하여 그의 친서들에서 주장하는 사 상은 '믿음으로' 이지, 결코 '믿음만으로' 가 아니다. 만 일 바오로가 '믿음' 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믿음, 희망, 사랑, 이 세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1고린 13, 13)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사랑' 대신에 '믿음' 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오로는 희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선언하였다. "우리는 희망을 지향하도록(희망으로 말미 암아) 구원되었기 때문입니다"(로마 8, 24). 따라서 바오 로가 말하는 믿음은 사랑과 희망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믿음이다. 그러므로 의화론을 통해서 믿음이냐 행함이냐 는 식의 양자택일을 따지기보다는 신앙의 실천을 이룩하 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물론 인간은 유한하고 죄 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공로를 쌓 거나 율법을 지켜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 음으로써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의인으로 간주하셔서 구원하시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에 감격하면서 끊임없이 신앙의 실천을 통 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실상 그 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거나 할례를 받지 않 은 것에 무슨 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사랑으로 행동 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 참고문헌  김창락, <바울의 성의론 · 칭의론 이해>, 《종교 신학 연구》 10집, 서강대학교 종교신학연구소, 1977/ 박영식, 《로마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 성서 6a, 분도출판사, 1996/ 서중석, 《바 울 서신 해석》, 대한기독교서회, 1998/ 정양모, 《바울로 친서 이야 기》, 성서와함께, 1996/ Richard B. Hays, Justification, 《ABD》 Ⅲ, pp. 1129~1133/ C.E.B.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I- II :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Edinburgh, 1979/ Joseph A. Fitzmyer, S.J., Romans, The Anchor Bible, The Double day, 1993/ Ulrich Wilckens, Der Briefan die Roimer I - Ⅱ- Ⅲ : EKK, Neukirchener, 1977. 〔柳忠熙〕
II . 교의사에서의 의화론

의화론에 관한 교리의 본질과 의미는 그리스도교 신앙 의 핵심적인 문제가 거론될 때 가장 잘 드러난다. 그리스 도교 신앙의 중심적인 가르침은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 이고 인간은 죄인인데, 하느님께서 인간을 의화하신다" 는 내용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죄인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이 새로운 관계는 교회 내외의 사람들 간에도 현실적으로 가능함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의화론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는 단순히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 전제 조건과 결과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화에 대한 개념과 교리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야 한다. 의화에 대한 개념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안에 서 사용된 수많은 표현 중의 하나로써, 특별히 바오로 서 간에서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위해 어떻게 구원 행위를 하셨는지 서술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따라서 어떤 면에 서는 성서학적인 연구의 한 분야이기도 하다. 의화에 관 한 교리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분야로 써 성서적 기원과는 독립적으로 발달해왔다. 의화론 연구는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성인의 저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동 방 교회 신학에서는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았다. 중세와 그 이후의 스콜라학은 의화론 신학을 사변적으로 발전시 켰고, 의화론에 관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주장에 대하여 트리엔트 공의회(1545~1643)는 스콜라 신학적인 배경에 서 의화론에 관해 계시된 교리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교부들의 주장〕 콘스탄틴 대제(306~337)가 로마 제국 의 일치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통치하고 있을 때 교회 는 이단자들의 도전에 직면하여 완전히 일치되지 않고 심한 내적 분쟁의 혼란 중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324년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된 직후, 공의회에서 일치를 재 건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때의 문 제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론과 삼위 일체론에 집중되었 고, 곧 의화론까지 더해져, 향후 이 삼대 교리 논쟁이 서 방 교회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아우구스티노 이전에는 의화 문제를 다룬 신학 사상이 주로 그리스도교 초기의 교리와 전례에서 드러났다. 특 히 세례와 이에 연계된 참회의 교리와 전례에서 이 교리 가 성립되었다. 또한 인간의 타락 상태에 대하여 교의가 명확하게 정리되기 이전에 펠라지우스주의 논쟁이 가열 되어 원죄에 관한 교리에서 다루어졌다. 즉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인 본성의 원상 회복은 일반적으로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생명에의 참여라는 이중적인 측면에서 이해 되었는데, 그리스 교부들은 세례가 죄를 사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반면 라틴 교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 로 시작하는 새로운 생명을 중요시하며 죄의 용서에 관 심을 더욱 집중하였다.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 는 근거로 내재하시는 '성령' 이나 '말씀' 또는 삼위에 대하여 그리스 교부들이 강조할 때, 라틴 교부들은 내재 하는 것보다 오히려 인간 안에서 변화된 것에 대하여 더 강조하였다. 그러나 430년경에 저술된 것으로 여겨지는 《가(假)첼레스티노 발췌집》(Capitula pseudo-Caelestina seu Indiculus)에서도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해질 수 없고 은 총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D. 240).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자유 의지를 올바르 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였다(D. 242). 순교자인 유스티 노(Justinus, 100/110?~165)는 '인간의 책임을 제거하는 상 태에서 모든 인간 행위가 미리 정해져 있다' 라는 주장을 거부하였다. 즉 진정한 책임은 자유를 전제로 해야 한다 는 것이다. 의화에 관한 교의사는 서방 교회의 영역에 국한된다고 볼 수 있다. 동방 교회는 의화에 관한 내용보다는 '신화' (神化, deificatio)의 개념에서 인간이 하느님 생명에 참여 하도록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섭리로 아드님이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으로 오셨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 '신화' 의 개념은 어느 정도 신플라톤주의와 연결되었 다. 그리고 예정, 은총, 자유 의지와 같은 문제에 대한 초기 교부들의 이해는 교회에 관한 여러 문제들과 혼재 해 있었다. 사실 4세기 말 그리스 교부들은 성서적인 기 초보다는 철학적인 기초에서 인간 자유 의지에 대한 논 의를 많이 하였다. 플라톤 철학의 전통에서 필로(Philoc Alexandria, 기원전 15/10?~서기 45/50?)의 영향을 많이 받 은 그들은, 당시 운명론에 반대하여 인간이 선과 악을 선 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어 떤 학자들은 초기 교회가 의화를 율법이나 도덕 또는 종 교적 계율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경향이 우세하였 다고 보고 있으나, 사실은 초기 교부들이 율법 준수에 의 한 의화에 많이 기울어진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우구스티노의 의화론〕 인간이 선해지고 올바른 일 을 하는데 그리스도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한 펠라지우스(Pelagius, 354?~418?)의 주장이 아우구스티노 로 하여금 의화론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의화에 관한 아우구스티노의 교리가 단 지 펠라지우스주의에 반대하기 위한 것만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펠라지우스에 의하면, 인간은 선하며 하느님 의 선물인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대로 그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필요하지 않는 의로 써 선행을 행할 수 있고 하느님의 섭리를 실행할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원한다면 신앙의 노력으로 자력 으로 구원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로 인해 이러한 주 장을 따르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은총과 구속(救贖)의 필 요성에 대해 바탕이 되는 원죄와 그 결과를 부정하고 경 시했으며, 유아 세례도 거부하였다. 그의 추종자들이 설 명한 원죄에 대한 교리는 마니교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 명백한 자연주의에 반대하여, 인간 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은총과 구속이 필요함 을 옹호하였다. 타락한 인간의 능력을 과장한 펠라지우 스에 대한 반발로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이 자기가 원하 는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 를 소유하고 있다 는 것을 인정하였다. 동시에 인간이 외부의 어떠한 개입 도 없이 자동적으로 행위로 옮기는 '자유' 를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을 부인하였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자유 의지를 소유하였다 할지라도 이제 인간의 자유 의지는 죄와 타협하였고 그래서 그 자유 의지는 이제 정복된 자 유 의지라는 것이다. 자유 의지는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원죄로 인해 자유 의지의 능 력을 빼앗겼지만 은총에 의해 치유될 것이라는 것이다.정복당한 자유 의지는 의화 안에서 은총의 치유하는 작 용으로 자유로운 자유 의지가 된다. 우리가 무엇인가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없었다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책임이 수반되는 명령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의화 은총은 인간에게 범죄로 말미암아 잃었던 하느님 의 생명을 다시 얻게 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은총으로 죄를 사할 뿐만 아니라 범죄를 피하도록 도와준 다. 의화 은총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야기된 모든 것을 제거하지는 않는다. 욕정은 세례 후에도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죄로 남아 있지 않고 다만 하나의 사실로 남아 있 다. 그리고 그 욕정이 행위로 넘어가면 죄가 된다. 단죄 받은 처지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의화는 사람의 협력을 기대하지만, 동 시에 인간으로 하여금 협력하도록 하는 하느님의 은총이 기도 하다. 치유 은총이 그들을 정화하지 않는다면 비록 덕스럽게 보이는 것까지도 욕정이나 무질서한 자애심으 로 불가피하게 행동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자 했던 것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느님 의 역사하심으로 의화된 죄인이 단번에 완전히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영성 생활의 성장을 위해 계속 적으로 하느님께 기도할 필요가 있다. 아우구스티노에게 있어서 의화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의롭게 되는 시작 과 그 결과로 완전하게 되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의화론에 관한 아우구스티노적 개념은 후대 라틴 신학 에 오랫동안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노에게 의화하는 은총은, 조력 은 총과 상존 은총 사이에 어떠한 구별도 없는 총체적인 의 미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은총과 인간의 자유로 운 협력을 확신하였지만, 화해시키는 은총과 자유 의지 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의 생 각으로는 은총이 그 본래의 자유 의지를 회복할 것으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마니교에 내포되어 있는 약간의 긍정적인 요소를 수긍하면서도 아우구스티노는 세례 이후 에도 남아 있는 욕정의 무질서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았다. 의화론에 대한 아우구스티노의 이 가르침은 세례 후 그리스도인 조건의 상태를 처음으로 체계화한 것이었다. 교리에 있어서 향후 모든 발전에 결정적으로 가장 중 요한 요소는, 인간의 의는 하느님의 의에 참여하도록 하 는 하느님의 선물로써, 당연히 단죄받았을 인간을 하느 님께서 구원하실 때 자비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아우구 스티노에게 있어서 이러한 은총의 무상성은 가장 민감한 점이다. 즉 의화 과정에 있어서 모든 우선권은 하느님에 게서 오는 것이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다. 후에 반(半)펠라지우스주의라고 알려진 펠라지우 스 이단의 잔류자들이 때때로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의 착한 행동을 준비하는 것으로 암시하였다. 그러나 아우 구스티노는 신앙의 시작은 신앙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여 상태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과 함 께 하느님의 선물이며 은총이라고 항변하였다. 서방 세계에서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은 죄 사함, 의화 론, 의화의 총체적인 무상성, 그리고 의화의 상대적인 불 완전 등에 대한 교리를 체계화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이 었다. 즉 이 모든 것은 인간의 타락과 그 결과에 관한 그 의 교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반면, 동방 교회에서 그의 영향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스 교부들은 인간의 개인적인 자유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죄라 고 부르는 것에 주저하였고, 오히려 인간의 신화에 대한 교리를 계속 강조하였다. 〔중세 시대의 신학〕 중세의 모든 신학은 대부분 아우 구스티노 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문학적인 작품들도 은총에 관한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적 내용을 소 재로 하였지만, 실제로 의화에 관한 그의 교리는 크게 부 각되지 않았다. 중세 시대의 신학은 온전히 아우구스티 노의 신학과 연계되어 그 내용을 옹호하고 확산시키는 시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물론 의화론 신학도 예외는 아 니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노의 의화론 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의화론에 관한 중세 시대 신학의 올바른 이해를 위 한 본질적인 전제 조건이다. 교부 시대에는 그리스도가 '누구' 였는지를 증명하는 데 몰두하였다면, 중세 시대의 신학은 그리스도가 무엇을 하였는지의 문제에 대하여 몰 두하였다고 볼 수 있다. 중세 시대에는 신학적인 해석의 특별한 쟁점에 관계있 다고 생각되는 성서학적이고 교부학적인 자료들을 수집 하는 것이 학문의 기본적인 준비로 생각하는 경향이 특 징이었다. 예를 들면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의화론에 관한 아우구스티노 저서의 교의적인 내용을 재수정하고 체계화하며, 분류화하여 그 개념에 대한 연구가 제일차 적인 것으로 고려되었다. 그러한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베드로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 1095~1160)의 4권으로 된 《명제집》(Sententiarum libri, 1157~1158)으로써 이 작품의 4/5는 아우구스티노의 저서에서 수천 개의 문장을 인용한 형태였다. 11세기 말과 12세기 초에 문학, 과학, 철학, 신학 등 제반 분야에 있어서 교회와 사회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서유럽의 정치적인 안정이 크게 기여한 것이었다. 1207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 (1198~1216)의 칙령에 따라 신학에 관한 8개 강좌를 맡 은 일반 교수들에 의해 대학교에서 신학이 강의되었고, 이로 인해 신학의 발전이 촉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의화에 관한 교부학이 스콜라 신학으로 넘어갈 때 매 우 다른 사고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교부들의 사목적 · 실천적인 접근은 실용적인 학문보다는 사변적 · 스콜라 적인 길을 열어 주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스콜라 신학자들로 하여금 단지 죄의 상태와 비교하여 의화의 상태를 연구할 뿐만 아니라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 환되는 과정까지도 연구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행위 와 습성, 형상적이고 질료적인 인과 관계로써의 변화나 변천처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철학의 스콜라 신학과 죄 와 은총의 어떤 개념에 대한 점진적인 설명에 적용하도 록 준비되었다. 그러한 발달은 신학 그 자체의 발달이었 음에도 불구하고 중세기 의화에 대한 이해는 13세기 초 파리에 도미니코회와 작은 형제회가 학교를 설립하여 신 학을 가르치면서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 문 제를 다루었던 여러 학파들이 주지주의(主知主義, intellectualismus)나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simus)로 분류 될 수 있다. 1216년 6월 24일 도미니코 참사회는 알베르토(1200~ 1280),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타란토의 베드로 등 의 저서들은 교의적 내용에 있어서 하나의 규범과 같은 수준이라고 발표하였다. 파리에서 초기 도미니코회 학교 의 일반적인 특성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집약될 수 있는데, 주지주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특징이다. 의화 에 관한 초기 도미니코회 학파의 가장 중요한 면은 '근 원적 의' (Justitia originalis)에 관한 문제로써, 이는 성화하 는 은총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의화의 형상인 (形相因)은 창조된 상존 은총으로, 공로의 원리는 창조 된 상존 은총이 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새로운 것이 주 입됨으로 기존의 형식 하나가 퇴출되는 것이다. 이와 같 이 그는 죄의 용서와 은총의 주입 사이, 그리고 다른 측 면에서는 하느님의 행위와 인간의 자유로운 협력 사이에 조직적이고 필요한 연결을 보여 주었다. 그는 의화가 본 질적으로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그리고 신적인 행 위와 인간적인 행위 양면 모두를 포함한다고 생각하였 다. 은총은 하느님에 의해서 역사(役事)되고 죄는 인간 에 의해 저질러지며, 은총이라는 새로운 형태에 의해 습 관적인 죄가 영혼으로부터 추방되는 점에서 의화는 복합 적인 양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는 분리할 수 없다. 주입된 은총의 정도나 욕정의 지속성 등 여타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는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이 의화 신학이 객관적이거나 존재론적인 수준 에서 다루어졌다. 주의주의라는 경향은 작은 형제회 학파에 적합한 이론 이다. 초기 작은 형제회 학교의 의화에 관한 가르침의 특 징은, '근원적 의' 가 조력 은총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 되었고, 의의 형상인은 창조된 상존 은총이 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초기 작은 형제회 학파는 보나벤투라(1217?~ 1274)의 지도와 가르침에 의존하였지만, 후기에 와서는 스코투스(J.D. Scotus, 1265/1266~1308)가 그를 대신하였다. 보나벤투라는 가끔 죄의 용서와 은총의 주입이 하나의 사실로 연결되었지만 원리는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스코 투스는 이 둘이 하느님의 결정에 의해서만 관계가 있지 본성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이 관념을 더욱 발전시켰다. 은총과 애덕을 동일시하고, 습관적인 죄에 대해서는 벌받기로 되어 있는 것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 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은총 안에서 하느님께서 그렇 게 받아 주심에 의해 성화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고, 그는 의화의 조직적 구조를 없앴다. 그는 하느님의 뜻이 죄 사함과 은총의 주입 사이에 실제적인 관계를 위한 유 일한 이유이며, 또한 세상 만사의 원인으로 보았다. 이 이론은 스코투스를 통하여 월리엄의 오컴(William of Ockham, 1285~1349)이 주장한 유명론(唯名論)에까지 진행 되었다. 오컴은 하느님의 뜻(섭리)에서 의화에 관한 두 가지 관점의 관계를 위한 유일한 근거로 보았을 뿐만 아 니라, 인간 지성의 실재론을 부정하고 단지 유명론적인 가치를 인간의 개념에 부여하면서 하느님은 당신의 뜻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하실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즉 하느 님은 죄 사함 없이 은총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의주의는 토마스에 의해 연구된 의화론에 관한 유기 적인 개념을 멀리하였다. 유명론은 토마스의 실재론을 거부하였는데, 인간의 개념은 초자연적 실재를 표현하는 데 신뢰할 수 없고, 계시만이 이런 것들이 왜 있고 무엇 인지의 이유를 밝혀 하느님의 안배를 드러낼 수 있다고 하였다. 지성의 이러한 불신뢰는 존재론적인 수준에서 심리적인 수준의 단계로 이동하였다. 주의주의와 유명론 과 심리주의는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유명론 신학은 의 화론에 대한 루터(M. Luther, 1483~1546)의 새로운 사상을 위한 길잡이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즉 루터가 자신의 체험으로 확신하게 된 것처럼 하느님은 의화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죄 사함 없이도 의화하신다 는 것이다. 의화에 대한 유명론적 관점의 이 명백한 탈선 은 약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스콜라주의적인 교리의 공 통성이 토마스 실재론의 유기적인 개념과 흡사하다는 것이 그렇게 놀랄 만한 것은 아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와 의화론〕 1530~1700년대까지 루 터교와 여타 개혁 교회들은 의화를 선언적인 수준에 한 정 지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흔히 '의로움을 받는 자'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었다. 즉 하느님 앞에서 의화는 의 인과 죄인이 본성적으로 차이가 없고, 그리스도께서 그 에게 어떤 선언을 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등장으로 트리엔트 공의회 는 성전(聖傳)의 원천에 충실하면서 의화에 대한 가톨릭 교리를 깊이 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재확인하였 다. 첫째, 의화의 부정적인 요소에 대해서 교회는 원죄든 지 개인적인 죄든지 의화된 영혼 안에서 죄는 실제로 용 서받아 없어진다고 하였다. 영혼은 부패한 상태 그대로 인데 겉으로만 그리스도께서 눈감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변화시켜 그 영혼을 완전히 치유한다고 가 르쳤다. "만일 누가 세례성사로 받은 우리 주 예수 그리 스도의 은총을 통하여 원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부인하거 나 죄가 온전히 제거되지 않았고 단지 죄가 지워졌다거 나 죄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자는 교회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D. 1515 ; Cf. St. Aug. Cont. duas : 44, 562)고 발표하였다. 둘째, 교회는 루 터교 교리의 반대 명제인 의(義)의 긍정적인 요소에 대 해서 명확하게 정의하고 구속(救贖)의 참된 부유함에 이 르기까지 강조하였다. 즉 교회는 은총이 그리스도의 의 를 죄인에게 단순하게 주는 표면적인 명칭이 아니라 인 간의 영적인 재생과 성화라는 것을 가르쳤다(D. 1515). 이러한 교리는 고해성사에서도 반복되었다. 의화에 대 한 교령은 스콜라 신학의 후속적인 발전에 크게 기여하 였다. 세례 이후에도 지속되는 욕정에도 불구하고(D. 1515) 의화는 진정한 죄 사함(D. 1528)을 포함하며, 성령 으로 인해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은총과 애덕 행위 없이 그 리스도께서 주시는 의(義)로만 혹은 단순히 죄 사함만으 로 의화된다는 것을 단죄하였다(D. 1561). 또 의화 자체 는 단순히 죄를 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화에 수반되는 은총과 은사를 자유롭게 받아들임으로써 내적 인간의 성 화와 쇄신까지 이룰 수 있도록 한다고 가르쳤다(D.1528). 은총과 은혜에 대한 인간의 자발적인 수용, 신앙, 희망, 회개, 사랑이 바로 의화를 준비하는 것이다(D. 1526). 가톨릭 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우리 의화의 바탕 을 하느님의 사랑에 두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 물에서 항상 어떤 선이 드러나게 한다. 하느님이 의인에 게 주시는 사랑은 당신 사랑의 선물로써 의를 부어 주심 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 며(요한 3, 5),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요한 1, 13) 참된 의와 성덕으로 새롭게 된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사 람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2고린 5, 12 ; 에페 4, 23). 〔기타 교회 회의의 가르침〕 이미 언급한 트리엔트 공 의회의 교의적 입장은 의화 신학을 위한 기본적인 교의 이다(D. 1520~1583). 공의회는 형상인(形相因)(D. 1529) 외에 의화의 다른 원인들을 열거하였다. 형상인은 하느 님과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다. 작용인 (作用因)은 무상적인 자비를 베푸는 하느님 자신이다. 공로인(功勞因)은 십자가상의 수난으로 인간을 구원하 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D. 1529, 1549). 도구인 (道具因)은 실제로 혹은 원의만으로(D. 1524) 받은 첫 번 째 의화를 위한 신앙의 성사인 세례이다. 이렇게 트리엔 트 공의회의 교령은 펠라지우스주의와 반(半)펠라지우 스주의에 대항하여 원죄와 은총에 관하여 논의하며 8개 항의 교리를 결의한 카르타고 교회 회의(418. 5. 1 ; D.222~230)와 아를의 체사리오 주교(?~542)가 주재한 제 2차 오랑주 교회 회의(529. 7. 3 ; D. 371~397)의 가르침 등 수세기에 걸친 교리를 통합하고 종합하였다. 특히 오랑 주 교회 회의의 마지막 회기에서는 은총과 인간의 협력 및 예정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사실 오랑주 교 회 회의는 카르타고 교회 회의의 결의 사항에 세부 지침 을 추가하였을 뿐 새로운 선언을 하지 않았다. 중세기 이 래 새로운 교의적 선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후에도 본질적으로 가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를 들면 1860년에 발표된 훈령에 의하면 의화는 세례자에게 이 미 약속된 선물이며(D. 2836~2838), 신앙이 모든 의화의 기초이자 뿌리라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의를 제1차 바 티칸 공의회(1869-1870)에서도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제2 차 바티칸 공의회는 "죄로 손상된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 은총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지향을 완전히 실현할 수 없다" (D. 4317 ; 사목 17항)고 강조함으 로써 인간의 자유와 은총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 확인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령은 처음으로 은총이 의화에서 각 개인에게 적용되고 타락한 인간을 치유하기 위해 오 신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속, 말하자면 인간 의화의 내용 을 요약하였다(D. 1521~1523). 의화 자체에 대한 첫 번 째 요점은 주도권이 하느님의 은총으로부터 오지 인간의 자유 의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교의는 공식적으로 은총의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음을 재확인한 제2차 오랑주 교회 회의(D. 373~378)와 트리엔트 공의 회에 의해(D. 1525) 공식적으로 단죄된 반펠라지우스주 의의 오류와 은총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협력을 제외 시키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을 부인하였다. 그러면서도 의 화는 인간의 자유로운 협력을 요구한다(D. 1524~1527). 의화는 "죄의 용서뿐만 아니라 은총과 은혜의 자발적인 수용에 의하여 내적 인간의 성화와 쇄신도 가져온다" (D. 1528). 위의 내용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욕정 자체 는 죄가 아니고 다만 죄로 기울어지는 가능성이기 때문 에 죄와 욕정은 구분되고, 고해성사를 통한 죄의 용서는 실제로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내적인 인간은 자발적으로 은총과 은혜를 받아들임으로써 거룩하게 쇄신되는데(D. 1528), 이 성화와 쇄신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하 느님에게서 받은 영속적인 은사로써 신앙과 희망과 사랑 과 함께 은총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각자가 자발적 으로 은총과 은사를 받아들여야 한다(D. 1528). 〔루터교와의 합의를 위한 노력〕 16세기에 가톨릭 교회 의 트리엔트 공의회와 루터교의 신조에서 상대방의 의화 교리를 단죄하였다. 이후 400년 동안 가톨릭 교회와 루 터교는 의화에 관한 자신들의 16세기 선언을 계속해서 확언해 왔다. 198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독일 방 문 이후 "루터교-로마 가톨릭 합동위원회"(Lutheran-Roman Catholic Joint Commission)는 루터교와 가톨릭 교회가 16세기에 선언한 상호 단죄에 대해 연구하여 두 교회의 많은 단죄는 상대의 주장을 오해한 것에서 비롯되었고, 오늘날에는 더 이상 상대방 교회의 교리와 관습에 적용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1993년에 루터교 세계 연맹과 교황청 그리스도교인 일치 촉진 평의회는 의화 교리에 관한 문헌의 초안을 준 비하기 시작하였다. 1994년에 교황청 그리스도교인 일 치 촉진 평의회는 합동 선언문 초안을 작성하여 지역 교 회의 주교 회의에 보내어 의견을 구하였다. 1996년에 루터교 세계 연맹과 그리스도교인 일치 촉진 평의회는 수집된 견해와 문제점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합동 소위원 회를 구성하였다. 1997년 2월에 정리된 문헌의 최종안 의 양측 교회에 전달되어 받아들일 것인지, 배척할 것인 지를 결정하도록 요청하였다. 1999년 10월 31일 오전 에 독일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서 그리스도교인 일 치 촉진 평의회 의장인 카시디(E.I. Cassidy) 추기경과 루 터교 세계 연맹의 크라우제(C. Krause) 회장이 의화 교리 에 관한 합동 선언문에 서명하였다. 이 합동 선언문의 핵 심은 삼위 일체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모두, 의화가 삼위 일체이신 하느 님의 역사(役事)라고 확신한다. 성부께서는 죄인들을 구 원하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셨다. 의화의 토대와 전제는 그리스도의 육화와 죽음 그리고 부활이 다. 그래서 육화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정의(Righteousness)가 되심을 뜻하며,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 의 뜻과 일치하여 이 정의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의 어떠 한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 음 안에서, 오로지 은총에 의해 우리는 하느님께 수락되 어, 우리를 선행으로 준비시키고 부르시면서 우리의 마 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받게 된다"(15항). 그러나 의화 교리에 관해서 루터교와 가톨릭 교회는 모두 의화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임을 인정하면서 도 의화 교리에 대해 전부 합의했다고 단언하기에는 차 이점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 핵심적 차이점 은 루터교에서 강조하는 의화 즉 교리와 실천의 기준으 로써의 의화와 '의인인 동시에 죄인' 이라는 문제와 가톨 릭 교회가 강조하는 공로(선행)와 하느님의 은총과의 협력에 관한 문제이다. 하지만 합동 선언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는 합의문의 주제인 의화 교리는 루터 종교 개혁의 출발 점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의화 교리가 중요한 신학 주제 로써 루터 교회 신자들에게는 교회의 존폐가 걸려 있다 는 점이다. 셋째, 합동 선언은 앞으로 신학 발전의 토대 가 된다는 점이다. 넷째, 두 교회의 선언에 대한 공식 인 준은 완전한 가시적 일치에 이르겠다는 뜻을 보여 주고 있다. 다섯째, 합동 선언은 루터교와 가톨릭 교회가 처음 으로 공식 인준한 문서란 점이다. 여섯째, 합동 선언의 수용은 앞으로 다른 신학 문제를 다루는 데에 본보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의 의〕 의화론에 관한 연구는 의화의 본질적인 요소 와 그 결과를 뚜렷이 밝힌다는 의미 외에도 이와 관련된 신학의 발달 과정을 규명하는 데 필요한 분야이다. 의화 론 신학의 발달은 신학자들이 자신들 시대의 문화적 상 황이란 범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신학적이고 세속적인 개념들이 그 시대와 지역의 문화적 상황과 어떤 상관 관 계를 갖고 있는지 보여 주는 한 범례이다. 따라서 어떤 부분은 종교 개혁이라는 역사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며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의화에 있어서 가톨릭 교리는 선행 을 중요시하고 프로테스탄트는 믿음만을 중요시한다는 이분법적인 표현은 서로간의 과장된 오해가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의화에 있어서 선 행을 중요시한다고오해받는 가톨릭 신앙이 믿음을 이차 적인 요소로 보지 않고 오히려 본질적인 요소로 여기고 있으며, 또한 믿음만을 절대적인 요소로 여긴다는 프로 테스탄트 신앙이 선행을 불필요한 요소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의화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의 우선 순 위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는 오늘날 서로 다른 전통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또 16 세기 종교 개혁에 의해 갈라진 신앙 공동체들과의 대화와 화해를 위한 그리스도교 신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구원론 ; 로마인 들에게 보낸 편지 ; 루터 ; 루터교 ; 아우구스티노, 히포의 ; 은총 ; 주의주의 ; 주지주의 ; 트리엔트 공의회)
※ 참고문헌  배한국 편, 《루터의 종교 개혁》(지원용 박사 논문 집), 컨콜디아사, 1980/ A. di Berardino(cura), Patrologia Ⅲ , Marietti, 1978/ O. de La Brosse etc., Latran V et Trente, Histoire des Conciles Oecuméniques.10, Paris 1975/ M. Daffara, Giustificatione, 《EC》 Ⅵ, pp. 824~830/ R.Franco, 《SM》, pp. 239~241/ H.G. Beck · K.A. Fink etc., From the High Middle Ages to the Eve of the Refomationl A. Franzen, 최석우 역, 《세계 교회사》, 분도출판사, 2001/ B.A.Gerrish, The Westminster Dictionary of Christian Theology, edit. by A. Richardson · J. Bowden, The Westminster Press, 1983, Pp. 314~316/ P. Hünermann(Cura), Enchiridion Symboolrum definitionumm et declarationum de rebus fidei et morum, Edizioni Dehoniane Bologna, 1995/ E. Iserloh · J. Glazik etc., Reformation and Counter Reformation, History of the Church, edit. by H. Jedin, New York, 1980/ H. Jedin(ed.), Il Concilio di Trento, 1-IV . Morcellian, 1973/ R. Koch, 장익 역, 《구원 신학》, 분도출판사, 19771 P. De Letter, 《NCE》 8, pp. 82~88/ A. McGrath, Justitia Dei. A History ofthe Christian Doctrine of Justification, Cambridge, 2000/ J. Neuner . H. Roos, The Teaching of the Catholic Church, trans. by Der G. Kirche, Alba House, 1967/ J. Pelikan, The Emergence ofthe Catholic Tradition 100~600(박종숙 역, 《고대 교회 교리사》,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P. Schoonenberg, 조정헌 역, 《인 간과 죄》, 분도출판사, 1978/ A.F. Simpson, 《기독교 대사전》 12, pp.994~996. 〔金喜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