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李甲秀(1924~ )

글자 크기
9
1 / 3


주교. 제2대 부산교구장. 세례명은 가브리엘. 1924년 2월 29일 경북 영천에서 이능호(李能皓, 가시미로)와 최순이(崔順伊, 루피나)의 3남 4녀 중 3남으로 출생. 1938년 영천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소신학교 과정인 동성 상업학교 을조를 거쳐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재학 하였으나, 1945년에 학교가 폐교되고 일제에 의하여 일 본군에 징병되어 광복이 될 때까지 일본에서 강제 복무 하였다. 귀국 후 성신대학에 재학하며 부제로 있을 때 한 국 전쟁이 발발하여 대구로 피난하였다가 1950년 10월 28일 성신대학을 졸업한 뒤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 서 대구교구장 최덕홍(崔德弘, 요한) 주교의 주례로 사 제 서품을 받았다. 범일 본당 보좌를 거쳐 1952년 9월 도미, 미국 마케트 대학교와 포담 대학교에서 수학하여 1957년에 사회학 석사를, 1961년 2월 〈Sociology of Conversion : Sociological Implications of Religious Conversion to Christianity in Korea〉라는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 았다. 귀국하여 대구대교구장 비서와 학생 지도 신부를 맡으며, 효성여자대학과 경북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하 다가, 1966년 8월 선목고등학교(소신학교) 교장에 부임 하였다. 1971년 8월 2일 부산교구 보좌 주교에 임명되 어, 8월 24일 범일동 성당에서 서정길(徐正吉, 요한) 대 주교의 주례로 주교 수품을 받고 1972년 3월 30일부터 교구 관리자로 재임하다가, 1975년 7월 17일 부산 중앙 주교좌 성당에서 제2대 부산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 한 국 주교 회의 교육위원회 위원장, 선교 위원회 위원장, 매스컴 위원회 위원장, 사회 주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 임하였으며, 학교 법인 세종학숙과 성모학원의 이사장, 파티마의 성모 푸른 군대 이사장 등을 맡기도 하였다. 1991년부터 동아시아 주교 회의 연합회 상임 위원으로 재임한 바 있다. 1999년 8월 29일에 은퇴한 뒤 정명조 (鄭明祚, 아우구스티노) 부교구장 주교에게 교구장을 인 계하였다. 이갑수 주교가 부산교구장에 착좌한 1975년 의 부산교구는 신자 94,504명에 본당 40개소, 방인 사 제 63명의 규모였으나, 은퇴하던 1999년 현재 신자 357,593명, 본당 92개소, 방인 사제 227명의 규모로 크게 확장되었다. 또한 1978년부터 해양 사목을 시작한데 이어 교도 사목 등의 특수 사목을 활성화하였고 1980년대 중반 이후 신앙 쇄신과 지역 사회 복음화 등 미래 지향적인 사업에 주력하여 신앙 대회 및 교구 공의회를 개최하며 사회 복지 사업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특히 1990년 12월 부산 가톨릭대학을 설립하여 부산교구 성직자의 자체 양성을 이루어, 1998년에 첫 사제를 배출하였다. 은퇴한 이후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 부산교구) ※ 참고문헌  《이갑수 주교 사제 서품 50주년 기념 사진첩》, 2000/ <가톨릭신문> 1971. 8.15 1975. 7. 271 <평화신문> 1995. 6. 25 ; 1999. 8. 8 · 8. 29 ; 2000. 4. 16.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