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언 李景彥(1790~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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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본관은 전주(全州). 이윤하 (李潤夏)의 차남이며, 이경도(李景陶, 가롤로)와 이순이 (李順伊, 루갈다)의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천주교 신자 와 같이 교육을 받았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1801 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형과 누나가 순교한 뒤 집안이 완전히 파산하였다. 과부가 된 어머니와 형수와 셋이 서울에서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성서를 필 사하고 성화를 그려서 교우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중인(中人) 가문에 장가들었으나, 일생 동안 아 내와의 사이에서 많은 풍파를 겪었다. 1815년(순조 15) 어머니와 형수는 충청도 연풍으로 낙향하였으나, 그는 아내와 함께 서울에 남아 가난 속에서도 밤낮으로 교우 들을 가르치고 외교인의 전교에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난 속에서도 북경으로 가는 밀사(密使)들을 위한 여비를 마련하는 일에 가장 힘쓴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했다. 그는 1827년(순조 27) 전라도 지역에 박해가 일어났을 때 필사한 교리책과 상본(像本)이 고발되어 전라도 감영 에서 파견한 포졸들에 의해 4월 21일 서울에서 체포되 었다. 4월 28일 전라 감영으로 압송된 후 6월 27일 36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그가 옥중 생활에서 틈틈이 쓴 옥 중 수기가 1965년에 발견되어 교회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으며, 명도회(明) 회원이었던 그는 회장과 회원들에게 보내는 옥중 편지도 남겼다. (→ 정해박해 ; 명도회 ; 성직자 영입 운동 ; 이경도 ; 이순이 ; 이윤하)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中/ 《日省錄》 《代廳時 日錄》/ 金 九鼎, <敎會史에서 내가 發見한 珍貴한 史料>, 《가톨릭靑年》, 1965 년 6월호.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