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헌 李光獻(1787~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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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일명 치문. 본관은 광주(廣州). 성녀 권희(權喜, 바르바라)의 남편이며, 성녀 이 아가타의 아버지. 성인 이광렬(李光 烈, 요한)의 형. 젊은 시절에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가 채 못 되어 천주교에 입교하여 지난날의 생활을 뉘우치고 천주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 생활을 하여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었다. 그로 인해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거듭되는 박해를 피해 다니느라 가산을 전부 잃고 순교 할 때까지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가난으로 인한 결핍을 참을성 있게 견디어 나갔으며 언제나 명랑하고 만족한 생활을 하여 남을 도와 주기에 힘썼다. 또한 냉담자를 권 면하고 병약자를 위로하며 외교인들에게 전교하는 한편, 주교와 신부들을 보좌하여 신자들을 모아 미사에 참여하 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헌종 5) 기해박해(己亥迫害) 초 어떤 예비 신자가 붙잡혔는데, 그 남편이 아내를 구하고자 53명의 천주교 신자를 밀고하여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도청에서 심문을 마친 후 4월 18일 형조로 이송되었 다. 형조에서 배교하면 가족과 함께 석방시켜 주겠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3차례의 혹형과 고문을 받아 다리가 부러지고 살이 터져 온몸이 피범백이 되었으나 끝까지 배 교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5월 24일 남명혁(南明赫, 다미아노)을 비롯한 8명의 신자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 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53세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 서소문 밖 ; 이광렬)
※ 참고문헌 《기해일기》/《달레 교회사》 中. 〔孫淑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