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 離教

〔라〕schisma · 〔영〕sc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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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에 대한 순명을 외적 · 공적으로 거부하거나 신자 들과의 친교를 거부하는 것. 초대 교회 때부터 다양한 모 습으로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일치를 어렵게 만들었던 분열과 쟁론을 지칭한다. 이교를 의미하는 라틴어 "스키스마"(schisma)는 '갈라짐' 또는 '균열' 을 뜻하는 그리스어 "스키스마" (σχίσμα)에서 유래했다. 〔교회사적 의미의 형성과 역사〕 신약성서에서 유대인 과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갈라짐' (이교)에 대해 언급하 고 있다. 그리고 예수의 언행으로 군중들 사이에 '분열' 이 생겼다고 전한다. "예수로 말미암아 군중 가운데에는 분열이 생겼다"(요한 7, 43).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 교회 의 '분열' 을 알고 있었으며, 또 그를 인정한다(1고린 11, 18). 그런데 신약성서를 비롯한 초기 교회 문헌에서는 이교와 이단(haeresis)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사용되지 않 으며, 이교는 특정한 단체의 분열과 쟁론을 지칭하였다 (요한 9, 16 ; 10, 19 ; 1고린 1, 10 ; 12, 25 ; 유스티노, Dial. 35. 3 ; 이레네오, Haer. Ⅳ, 26. 2 ; 33. 7 ; 히폴리토, Haer. Ⅵ, 35. 5 ; 테르툴리아노, Praescr. 5. 1ff ; 치프리아노, Ep. 3. 3 : 43. 7 ; 49. 2 ; 59. 5 ; 66. 5 Test. 3. 86). 초기 교회는종교적인 문제에서 이견이 생길 때, 그것 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기 쉽도록 '이교' 라는 용어를 사용 하였다. 우선 이 개념은 주교의 합법적 권위에 순명하기 를 거부함으로써 교회와의 통일 또는 일치를 거부하고, 교회 공동체 구성원과의 친교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였 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전통 안에서 이교는 우선 교황의 권위에 대한 순명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뜻하고, 지역을 초월한 교황의 재치권 아래에 있는 교회 구성원들과의 일치의 단절을 지칭하였다. 역사적으로, 이미 3세기에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 교인 치프리아노(200~258)는 《재세례 논쟁》(De Rebaptismate)에서 전체 교회의 일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이교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가이사리아의 바실리오(329~ 379)는 편지에서 가타리파(Cathari)와 몬타누스파에 대한 세례성사의 유효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 이교와 이 단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단' 은 완전히 교회로부터 분리된 것이며, 신앙 고백의 관점에서 떨어 져 나간 것을 의미한다. 반면, '이교' 는 어떤 특정한 교 회에 대한 자신의 입장으로 해서 전체 교회와의 일치로 부터 떨어져 나간 것을 의미한다.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의 규정에 의하면, 올바른 신앙에 대한 고백 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로부터 떨 어져 있고 콘스탄티노플에 모인 주교들과 통교하지 않는 주교들과 공동체를 형성하는 사람들을 '이단자' 라 지칭 하였다. 이 조항에서는 아직 이교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 게 정리되지 않았다. 한편 라틴 교부들의 문헌에서는 이교와 이단에 대한 보다 명확한 구분이 시도되었다. 북아프리카의 도나투스 주의(Donatismus)와의 성사에 대한 논쟁 속에서, 밀레베 의 주교 읍타토(Optatus, +4세기)는 교회의 신앙으로부터 분리된 이단자의 성사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반면, 이교 도의 성사는 유효하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에 이르러 '이단자' 와 '이교도'에 대한 개념이 정확하게 구별되고 규정되었다. 393년 에 아우구스티노는 이단자와 이교자를 다음과 같이 규정 하였다. 즉 전자는 올바른 신앙이 사라진 자이고, 후자는 신앙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를 떠 난 자(a fratem caritatae dissiliunt)라고 하였다(《신앙과 신경》 10, 21). 또한 그는 400년에 《파우스트 논박》(Contra Faustum manichaeum, 20, 3)에서 교리와 전례 예식에서 크 게 구별되지는 않지만, 그 교회로부터 분리되려고 하는 자를 이교도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노의 개념 규정은 세비야의 이시도로(Isidorus, 560?~636)에 의해 전적으로 수용되었다. 또한 예로니모(Hieronymus, 343~420)에 의해서도 이단 과 이교 사이의 구분이 시도되었다. 그에 의하면 이단은 왜곡된 교리를 선포하는 것이지만, 이교는 주교들 사이 의 불일치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덧붙 여 각각의 이교 집단은 그 자체의 이단적 교리로 인해서 교회와의 분리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초기 교회에서 이단과 이교는 확실히 구분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앙 교리와 교회법적 구조의 발전에 따라 각각의 유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되면서 각각의 개념 규정이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이교는 이단과 분명히 구분된다. 교회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친교의 단절' 이라는 측면에서 이 단과 이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교회로부터의 이탈' 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단' 은 '신앙' 의 일치와 관련 되어 문제가 발생되지만, '이교' 는 '교회' 의 일치에 대 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교의 문제는 교회 의 제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단은 신앙의 이해, 즉 신 학적 이견이 주요 원인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아 격 렬하고 심각한 이단은 교회 공동체와의 갈라짐, 즉 이교 에까지 이룰 수 있다. 즉 이교의 전제는 지역 교회 성직 자들의 수장인 주교와 관련해서 이루어진 교회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사에 있어, 한 지역 교회에 두 명의 주교가 있는 경우 서로 파문을 하면서 종교상의 이견을 확인하 였다. 즉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이교 개념을 볼 때, 중요 한 것은 종교적 불일치의 제도적 공고화와 병행하여 주 교 중심으로 형성된 교회의 구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교에 대한 문제의 관건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교황과의 일체성 - 교황 인정과 교황 제도의 합법성의 문제 등-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에 달려 있었다. 그렇기에 대표적인 교회의 분열은 1054년에 이루어진 동서방 교회의 분열인 동방 이교이 다. 이는 각 교회의 교리에 관한 내용이 손상되지 않고 교회의 위계 제도와 관련된 것이었다. 또한 대립 교황으 로 인해 로마와 아비뇽에 동시에 둘 또는 세 명의 교황이 있게 되는 서구 대이교(1378~1417)가 있다. 그리고 제1 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에서 신앙 교리로 결정된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반대하여 독일에서 발생한 이 교인 구가톨릭교(Altkatholizismus)가 있다. 〔교회 일치적 관점과 전망〕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 회론은 '분열' 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의 '존속하는 연 결성' 에 유념하면서, "하나이요 볼 수 있는 하느님의 교 회"를 갈망하며 교회 일치 운동을 선언하고 있다(교령 Unitatis redintegratio ; Orientalium Ecclesiarum 참조). 그리고 특별히 '갈라진' 동방 교회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방 교회는 자매 교회로서 그들의 전통과 전례는 살아 있는 교회의 커다란 유산이라 하면서, 신앙과 전례상의 일치 를 강조하고 있다. 이로써 과거 가톨릭 교회가 프로테스 탄트의 종교 개혁에 맞서, 교회는 교황권을 중심으로 한 교계 제도를 갖춘 사회라고 정의했을 때, 이교는 바로 이 러한 교계 제도 즉 교회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게 되었 고, 이로써 자매 교회인 동방 교회에 대한 형제적 태도를 수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는 이교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회복하면서, 형제적 사 랑의 공동체로의 일치를 희망하고 있다. 따라서 공의회는 '이교도' (schismaticus)라는 용어보다 는 기본 교리나 교회의 신비와 단절되지 않은 '갈라진 형제' 임을 강조하고, 성령의 힘으로 '가톨릭적' 일치를 되찾고자 하였다. 하지만 교회 일치의 중심은 가톨릭 교 회가 되고, 교황의 베드로 수위권 계승과 우선적 재치권 이 강조되고 있다. 즉 교회는 이교 개념을 교황권에 초점 을 맞추고 교회 구성원과의 친교의 단절과 회복을 중심 으로 개진하고 있다. 현 교회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단, 배교(apostasia) 그리고 이교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이 단이란 세례받은 후 천상적 가톨릭 신앙으로 믿어야 할 어떤 진리를 완강히 거부하거나 그것에 대해 완고히 의 심하는 것이고, 배교란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부 포기하는 것이며, 이교란 교황에게 대한 순종 또는 그에게 종속 하는 교회의 구성원들과의 친교를 거부하는 것이다" (751 조). 따라서 이교의 문제는 여러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할 수 있겠으나, 우선은 교황권과 관련한 교회법과 교회론 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그 핵심에 이를 수가 있다. 그리 고 교회 일치적 관점의 현실적인 문제들은 교회의 단일 성과 다원성의 관계 그리고 교황의 우선적 재치권(Jurisdiktionsprimat)에 대한 인정과 제한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부터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운 진정한 지상의 교회는 신앙의 문제와 관련되어 기초된 것이기에, 교회 구조와 행정권 에 대한 불일치는 사실 교회의 제도적 분열의 큰 이유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전통적인 이해에 의거해서 이교가 신앙상의 불일치가 아니라 교회의 구조에 관한 불일치 에서 유래한다면, 사실상 이교의 문제는 교회 '안의' 문 제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적인 의미에서 '이교도' 라는 표현보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잘 지적하였듯이 '갈라진 형제' 라는 표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일치의 관점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이교자에 대한 교회법적 처벌〕 이교도만이 아니라 배 교자나 이단자에 대한 처벌은 모두 같다. 만일 이교도가 신자라면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 그리고 교회 직무에서 법 자체로 해임되며(교회법 194조 1항), 장기간 의 항명이나 심각한 추문으로 인해 필요한 경우에는 다 른 형벌이 추가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성직자라면 앞서 언급한 처벌 외에 다음과 같은 형벌이 추가될 수 있다 (1336조 1항). 즉 일정한 장소나 지역 내에 거주하는 것 이 금지되거나 또는 그 장소 안에서만 거주하도록 명령 할 수 있다. 권력 · 직무 임무 · 권리 · 특전 · 특별 권 한 · 은전 · 명의 · 표장 등 단순히 명예적인 것까지도 박 탈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행사를 금지하거나 또는 일정 한 장소 안에서나 일정한 장소 밖에서의 행사를 금지당 할 수 있으며, 성직자 신분에서 제명된다. (⇦ 교회 분열 ; → 교회 일치 운동 ; 구가톨릭교 ; 대립 교황 ; 동방 가톨릭 교회 ; 동방 이교 ; 몬타누스주의 ; 배교 ; 서구 대이교 ; 이단) ※ 참고문헌  W. Beinert, 《LTnK》9, p. 151/ J. Beutler, 《LTnK》 9, p. 147/ 0. Engels, 《LTnK》9, pp. 148~151/ S.L. Greenslade, Schism in the Early Church, London, 1953/ W.A. Löhr, 《TRE》 30, pp. 129~135/ W. Ullman, The Origin of the Great Schism, London, 1948/ H. Vorgrimler, Neues Theologisches Wörterbuch, Freiburg · Basel · Wien, 2000, p. 552. 〔吳敏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