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시오, 안티오키아의 Ignatius Antiochenus(3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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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의 순교.

이냐시오의 순교.


성인. 순교자. 안티오키아의 주교. 교부. 축일은 10월 17일. 〔생 애〕 이냐시오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세운 시 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의 제2대 혹은 제3대 주교로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다음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맹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에 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265?~339)는 《교회사》 3권의 제36장을 이냐시오에 대한 내용으로 할애하는데, 이냐시오는 사도 베드로 다음으로 안티오키아 교회의 제 2대 주교였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책의 다른 부분(《교회 사》 3, 22)에서는 이냐시오가 에보디오 주교의 뒤를 이어 제3대 주교였다고 한다. 또한, 《연대기》에서는 베스파시 아누스 황제(69~79)가 재임 중이던 70년에 이냐시오가 주교직을 맡았다고 한다. 요한 그리소스토모(Joannes Chrysostomus, 344/354?~407)는 "성 이냐시오를 기념하는 강론"(《PG》 50, 588)에서 이냐시오가 사도들과 관계를 직 접 맺던 분이라고 하였다. 이런 여러 증언으로보아 이냐 시오는 사도 교부에 속하며, 교부학에서는 연대적으로 그를 글레멘스 1세 교황(90/92~101?) 다음의 사도 교부로 꼽는다. 이냐시오가 안티오키아에서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과, 그가 쓴 일곱 개의 편지 외에는 그의 생애에 대한 사료가 거의 없다. 안티오키아는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이라 불린 곳이며(사도 11, 26),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이 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출발하였던 선교의 중 심지였다. 특히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부터 안티오키아 교회와 로마 교회는 초대 교회 안에서 기둥 역할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간다는 소식은 전 교회의 슬픔이었다. 이냐시 오는 10명의 군인들에 의해 끌려가면서도(로마 5, 1) 묵 게 되는 도시마다 몰래 찾아온 그곳 교회의 신자들에게 설교하고, 이단에 빠지지 말고 사도적 전통에 충실할 것 을 권고하였다(에우세비오, 《교회사》 3, 36, 4). 순교지로 향한 그의 여정이 스미르나에 도착하였을 때 에페소 교 회(오네시모 주교), 막네시아 교회(다마스 주교), 트랄레스 교회(폴리비오 주교)에서 주교와 함께 온 위문단을 만났 다. 이냐시오는 자신이 스미르나에 도착한 날이 8월 24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로마 10, 3). 그는 이곳에서 자기에 게 위문단을 보낸 세 교회의 주교와 신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담긴 권고의 편지를 각각 보내고, 순교를 당하게 될 로마 교회에도 편지를 보냈다(에우세비오, 《교회사》 3, 36, 5). 트로아스에서는 필라델피아 교회와 스미르나 교회에게, 그리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스미르나의 폴리카 르포 주교(69~155)에게 편지를 보냈다(에우세비오, 《교회 사》 3, 36, 10). 이냐시오는 시칠리아의 필로와 안티오키 아의 아카토포라는 두 부제의 방문을 받고, 안티오키아 에서 박해가 끝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트로아스에 서 그는 배로 마케도니아의 네아폴리스에 도착하였고 후 에 같이 처형받는 조시모와 루포와 합류하였고(에우세비 오, 《교회사》 3, 36, 13), 이탈리아의 브린디시를 거쳐 아 피아 가도(街道)로 로마에까지 압송되었다. 로마에 도착 해서는 맹수형으로 순교하였으며, 후에 신자들이 그의 유해를 안티오키아로 옮겨 안장하였다. 이냐시오의 순교 연도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 에우세비오는 트라야누스 황제(98~117) 집권 10년째 해인 107년에 순교한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저 서〕 이냐시오가 쓴 일곱 개의 편지 중에서 여섯 개 는 교회 공동체(에페소, 막네시아, 트랄레스, 로마, 스미르나, 필라델피아)에 보낸 것이고, 한 개는 폴리카르포 주교 개 인에게 보낸 것이다. 폴리카르포 주교에게 보낸 편지는 선배 주교로서 후배 주교에게 사목자로서 지녀야 할 자 세와 덕을 가르쳐 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 외에 다른 다섯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일치하고 교회의 장상들에게 순명 하며, 그릇된 이단들에 조심하라는 권고를 담고 있다. 여 기서 말하는 이단들은, 그노시스주의의 그리스도 가현설 과 유대교의 안식일을 고수하려는 자들을 뜻한다. 극단 적인 이원론을 토대로 한 그노시스주의자들은 예수 그리 스도가 참으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환상으로 나타났 기 때문에 그분의 육신과 관련이 있는 탄생 · 수난 · 죽 음 · 부활 모두를 부인하였다(스미 1-6장 ; 트랄 9-10장 ; 에페 7, 2). 한편 안식일 고수자들은 교회가 구약의 안식 일 대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을 지키기로 한 결 정을 거부하고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들이다(막네 810장 : 필라 5-9장). 특기할 점은, 이냐시오가 최초로 그 리스도 교회 공동체를 일컬어 '가톨릭 교회' (ἡ καθολικὴ ἐκκλησία ; 스미 8, 2)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공동체로서 그 안에는 반드시 주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로마 교회에 보낸 서간은 다른 여섯 서간과 성격 을 달리한다. 이 서간에는 교회 장상들에 대한 순명의 권 고나, 이단에 대한 경고가 없는 대신 이냐시오 자신의 신 앙 자세와 주님께 대한 사랑 그리고 승화된 인간의 신비 적인 면을 감동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이냐시오의 편지 들은 평상시에 보낸 편지가 아니라 순교지로 가는 여정 에서 쓴 것들이기에 그 호소력이 크며 감동적이다. 사실 이냐시오가 순교한 후에 편지를 받은 각 교회뿐만 아니 라 다른 교회들도 이 편지들을 서로 돌려가며 보거나 복 사하여 보관하였기 때문에 교회 안에 널리 유포되었다 (폴리카르포의 필립비 교회에 보낸 편지 참조). 이냐시오의 일 곱 편지는 '긴 사본' (recensio longior) · '중간 사본' (recensio media) · '짧은 사본' (recensio brevissima) 등 세 가지로 전해지는데, 학계에서는 '중간 사본' 이 원본에 가장 가 깝다고 한다. 〔가르침〕 로마 교회에 대한 존경심 : 앞에서 언급한 바 와 같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는 다른 여섯 편지와 성 격이 다르다. 이냐시오는 원로 주교로서 다른 교회들에 게는 일치와 조화를 권고하고 있는 반면, 로마 교회에 대 해서는 이런 권고를 감히 줄 수 없는 이유는, "저는 베드 로와 바오로처럼 여러분에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고 나는 한 죄수일 뿐입니다"(로마 4, 3)라고 설 명한다. 특히 로마서간의 서두 인사에 나오는, "여러분 의 교회는 로마인들의 지역 안에서 선도(先導)하며, 하 느님께 합당하고 존경 · 흠숭 · 성공 · 순결을 지닌 복된 교회입니다. 또한 사랑을 선도하며 그리스도의 법과 아 버지의 이름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라는 표현에 대해 가톨릭 학자들과 프로테스탄트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 다. 이 논란은 로마 교회가 타 교회들에 대해 수위권(首 位權)을 갖느냐 하는 미묘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 이다. 여기서 "선도하다" (προσκάθηται)라는 동사가 연 이어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첫째 경우에는 '로마 교회 가 로마 제국 안에 있는 교회들에 대해 수위권을 갖고 있 다' 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경우는 '사랑을 실천 하는 데 있어 다른 교회들 보다 앞서다' 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으나, 다른 편지들에서 이냐시오는 '사랑' 이란 단어를 교회와 동의어, 곧 '사랑의 공동체' 라는 뜻으로 여러 번 사용하고 있다(필라 11, 2 ; 스미 12, 1 ; 트랄 13, 1 ; 로마 9, 3). 따라서 이 경우에도 '로마 교회가 다른 교 회공동체들을 선도한다' 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미묘한 표현상의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이냐시오는 로마 교회에 대해, "여러분은 아무와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로마 3, 1)라고 칭찬 하고, 주교를 잃게 된 시리아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고 염려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로마 9, 1). 로마 교회에 대한 이러한 그의 존경심은 로마 교회가 두 으뜸 사도들 에 의해 세워져 그 권위를 받은 교회라는 점에 근거를 두 고 있다. 안티오키아 교회 역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가르침을 받아 세워진 교회이지만, 로마 교회는 두 사도의 가르침이 그들 자신의 순교로써 증거된 교회라는 점에서 다른 어떤 교회보다 권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순교 영성 : 이냐시오가 지녔던 순교에 대한 열망은 여러 편지에 나타나 있다. 그는 순교를 그리스도께 대한 불붙는 사랑, 그분과의 완전한 일치로 표현하고 있다. "제가 왜 제 자신을 바치려는 것입니까?···제가 맹수들 가까이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저는 모 든 것을 참아 낼 수 있는데, 완전한 인간이 되신 그분께 서 저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스미 4, 2). "저는 아 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자가 못 됩니다. 참으로 저는 이제서야 겨우 그분의 제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에페 3, 1). 순교에 대한 그의 열망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더욱 생생히 표현되어 있다. "불도 좋고 십자 가도 좋고 맹수의 무리도 좋으며, 뼈를 비틀고 사지를 찢 어도 좋고, 팔다리를 자르고 온몸을 난도질해도 좋습니 다. 악한 자의 잔인한 형벌도 좋습니다. 다만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 갈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목표도 지상의 모든 왕국도 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 끝까지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 는 것이 저에게는 더 낫습니다. 제가 찾고 있는 것은 우 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이며, 제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이제 출산의 (고통이) 저에게 가까웠습니다" (로마 5, 3-6, 1). 여기서 순교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출산' 으로 표현되어 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을 얻듯이, 이 냐시오는 순교의 수난을 통해 하느님 안에 새로 태어나 는 부활의 기쁨을 얻게 된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에 순교 할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냐시오의 이러 한 믿음에 따라 교회는 순교자들의 순교일을 '천상 탄 일' (dies natalis)이라고 부르고, 순교일을 그들의 축일로 정하고 있다. 순교와 성체 신비 : 이냐시오가 자신의 순교를 성체의 신비와 연결시킨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저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 두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제가 하느님 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밀이니, 맹수의 이 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오히 려 맹수들을 유인해서 그들이 저의 무덤이 되게 하십시 오. 또 제가 죽었을 때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도록 맹 수들이 제 몸의 어떤 부분도 남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 다. 그리하여 세상이 저의 몸을 볼 수 없게 될 때 저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 을 거쳐 제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그리스도께 간구해 주십시오”(로마4, 1-2). 여 기서 이냐시오는 자기가 "하느님의 밀", "깨끗한 빵이 된다고 말하는데, 마치 밀이 맷돌에 갈려 가루가 되고 그 가루로 빵이 만들어지듯이, 자신의 몸이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순교를 성체 신비에 동참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 이다. 맹수들이 자기 몸을 깡그리 먹어 치워 장사지낼 수 고까지 없애 주길 바라는 그의 바람은, 당신의 몸과 피를 인류 구원을 위해 내어 놓으셨고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 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온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로 바쳐지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저를 위해 하지 마 십시오. 제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로마 2, 2). 또 그는 한시라도 빨리 순교하고 싶은 열망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 때문에 마련된 맹수 떼를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그 맹수들이 나에게 성급히 달려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맹수들이 겁을 먹어 달려들지 못한 경우가 있지만, 그와는 달리 맹수들이 저를 재빨리 삼켜 버리도록 유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맹수들이 만일 원치 않으면 저는 강요하겠습니다"(로마 5, 2). 이처럼 놀라운 영성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평소에 미사를 봉헌하 면서 성체에 나타나는 그리스도 사랑의 신비를 너무나 잘 깨닫고 묵상하였기 때문이라고밖에는 달리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그는 순교가 그리스도의 극진한 사랑에 대 한 자신의 응답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 사도 교부 ; 폴리카르포, 스미르나의) ※ 참고문헌  박미경, 《이냐시오스 일곱 편지》, 교부 문헌 총서 13, 분도출판사, 2000/ G. Trentin, Rassegna di studi su Ignazio, 《StudPat》, 1972, pp. 75~871 K. Bommes, Weizen Gottes. Untersuchung zur Theologie des Martyriuns bei Ignatius von Antiochien, Köln · Bonn, 1976/ H. Paulsen, Studien zur Theologie des Ignatius von Antiochien, Göttingen, 1978/ P. Meinhold. Studien zur Ignatius von Antiochien, Wiesbaden, 1979/ R. Joly, Le dossier d'Ignace d'Antioche, Bruxelles, 1979/ J. Rius-Camps, The Four Autentic Letters of Ignatius the Martyr, Roma, 1979. 〔李瀅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