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라〕ideologia 〔영〕id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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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특정 계급 이해에 상응하는 행동 규범, 입장 및 가치 평가를 포괄하는 정치적 · 법적 · 윤리적 · 종교적 · 철학 적 관점과 관념. 세계를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뒷받 침하는 관념 체계로도 불린다. 넓은 의미로는 체계적인 관념의 인도를 받는 모든 종류의 행동 지향적 이론이나 관념 체계에 비추어 정치에 접근하는 모든 시도를 뜻한 다. 좁은 의미로는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데스튀트 드 트라시(A.L.C. Destutt de Tracy, 1754~1836)의 본래 견해에 가까운 인간 경험과 외부 세계에 관한 포괄적인 설명 이 론을 포함하고, 일반적 · 추상적 용어로 사회 · 정치를 조 직하는 계획을 제시하며,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해 투쟁도 불사하고 때로는 강한 투신을 요구하며, 광범위한 대중 을 지향하고 지식인에게 특별한 지도 역할을 부여하는 경향을 갖는 관념 체계를 가리킨다. 〔기 원〕 프랑스 혁명기에 철학자 데스튀트 드 트라시 는 저서 《이데올로기의 요소》(Eléments d'idéologie, 1801) 에서 새로운 과학적 사고 방식을 구조적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 과학적 사고 방식의 약칭으로 이데올로기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가 말한 과학적 사고 방식은 인간 정신에서 편견을 몰아내고 이성을 복권시킴으로써 인간 에게 봉사하고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근대 세계에서 최초로 발견되는 이데올로기적 요소는 유토피아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운동의 대표적인 인 물이 사보나롤라(G. Savonarola, 1452~1498)이다. 그는 그 리스도교 공동체의 이상향을 현재 실현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를 지배하고 경 제와 시민의 사생활을 감독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이용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교에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가미한 그의 유토피아 운동은 칼뱅(J. Calvin, 1509~ 1564)의 제네바 및 신대륙의 청교도들에게 영감을 주었 다. 그리스도교에 내재된 종말론적 긴장이 현세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성적 차원에만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이데올로기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이데올로기의 초기 형태는 정치 철학에서도 발견된다.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N. di B. dei Machiabelli, 1469~1527) 가 그 선구자이다. 또한 17세기 영국에서 추상적 이론이 성장하고 이론 체계의 확립과 정치를 원리에 따라 논의 하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이데올로기적 양식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이론적 개념으로써의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 주의에서 시작되었다. 〔이데올로기론〕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영역은 광범위 하다. 그렇기에 이 용어를 인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났던 모든 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 행위로 이해한 마르크스(K. Marx, 1818~1883)의 이데올로기론과 그의 이론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정교화한 알튀세(L. Althusser)의 이론을 살펴 보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이데 올로기가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관계를 반영한다. 이의 기초적인 전제들은 마르크스의 가장 유명한 다음 두 논 점들에서 표현되고 있다. 첫째, 물질적 생활의 생산 양식 이 일반적인 사회적 · 정치적 · 지적인 생활 과정을 조건 짓는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 니라,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 둘 째, 지배 계급을 구성하는 개인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의 식을 소유하며 따라서 사고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 나의 계급으로서 지배하고 한 시대의 범위와 한계를 결 정하는 한, 그들이 사회의 전 범위에서 그러할 것이란 사 실, 즉 다른 무엇보다도 사고자로서, 이념의 생산자로서 지배하며 그 시대의 이념의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리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념이 그 시대의 지배 이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두 개의 구조 가운데, 하부 구조 를 형성하는 경제가 상부 구조를 이루는 법 · 국가 · 이데 올로기 · 종교 등을 자동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으로 경제 결정론을 반영한다. 그리고 소위 허위 의식으로써의 이 데올로기를 강조하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에게 허위 의 식은 이 계급이 사회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신이나 자연 법칙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상정할 때 발생한다. 피지배 계급의 허위 의식은 그들의 사회적 · 개인적 상황을 지배 적인 이데올로기가 제공하는 용어로 이해하게 될 때 발 생한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을 위한 생산과 보급이다. 결국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지배 계급이 사회 활동의 전 범위에 걸쳐 자신들의 지배권을 일반화하고 확장하며 그 과정에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를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 그 래서 합법적인 것으로 여기게 하는 수단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란 용어는 오직 경멸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다. 이는 종교적 · 신학적 가르침과 철학만이 아니라 바우어(B. Bauer) · 레비 스트로스(C. Lévi-Strauss) · 포이어바흐(L.A. Feuerbach) 등과 같이 종교적 형식과 제도를 공격한 사람들의 비판에도 적용된다. 혁 명적인 실천을 통하여 그것을 행하는 "말" 로만 떠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레닌(V.I. Lenin, 1870~1924)만이 이 데올로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뿐이다. 과학과는 달 리, 이데올로기는 사회 계급들의 투쟁을 반영하는 생산 양식의 구조에 속한다. 이데올로기적 투쟁은 계급 투쟁 의 한 방법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러시아 혁명(1917)의 승리는, 프롤레타리아의 공산주의자 이데올로기의 승리 일 수 있다. 마르크스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와 이데올로기론은 정통을 자처하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에 계승되었으나, 대부분의 사회주의 계열에서는 상부 구조와 이데올로기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 었다. 지식 사회학의 거두인 만하임(K. Mannheim, 1893~1947)과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대표적이고, 현실 사 회주의 체제들도 대부분 이 계열에 속한다. 알튀세 :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론을 재해석 하고, 이를 심화시켜 마르크스 이후 변화된 이데올로기론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 그 역시 사회주의 실험 과정에서 나타난 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대폭 수정하였다. 그는 라킹(J.M.E. Lacan, 1901~1981)의 해석 방법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효과로써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 려고 하였다. 그의 논문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Ideological State Apparatus)는 그의 이데올로기론의 정수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사회의 총체성을 사회 구성체(social formations)란 개념을 도입하여 수정하려 하였다. 그의 사 회 구성체는 마르크스처럼 단순히 토대와 상부 구조의 이원적인 구조가 아니다. 그리고 그 구성 요소들 간의 관 계도 일대일 대응의 일원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의 사회 구성체는 마르크스의 두 개 층위와 다르게 경제적 층위, 정치적 층위, 이데올로기적 층위 셋으로 나뉜다. 마르크 스가 상부 구조에 포함시킨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각각 다른 층위로 구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층위들 간의 관계 도 마르크스주의처럼 경제적 층위가 정치적 층위나 이데 올로기적 층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자율성 을 누리는 것으로 그리고 각 층위가 결정되는 과정을 중 첩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그는 이데올로기론을 단순하게 혹은 기계적으로 계급에 환원시키는 것을 반대 하고, 그 대신 생산 관계에서의 위치에 따라 특정 계급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닌다고 본다. 그는 이의 근거로 지 배 계급이 하나의 일관된 이데올로기를 지니지 않고 역 사적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과 피지배 계급도 때로는 지배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 를 자기 것인 양 사용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 논증을 통하여 계급과 이데올로기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토대와 상부 구조 간의 관계가 기계적이지 않으며 토대 의 존재를 위해서 반드시 상부 구조가 개입한다는 상부 구조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알튀세 이데올로기론의 두 번째 논점은 이데올로기가 곧 허위 의식이란 등식이다. 그는 허위 의식은 진실된 의 식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게 진실된 의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 주체인 노동 계급이 따르는 혁 명이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것이다. 허위 의식은 혁명 주체들이 진실한 의식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것이 아닌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알튀세는 특정 계급이 지녀야 할 이데올로기 대신 다른 이데올로 기를 지니는 폐해를 공격하기 위해서 허위 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이데올로기의 사 회적 기능이었다. 그는 특정 생산 양식 안의 사람들이나 구성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재생산되어야 한다고 보면서, 여기서 이데올로 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기능은 이 데올로기적 국가 기구(가족 · 학교 · 종교 기구)로 생산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중요한 역 할을 한다.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이 요구하 는 윤리 · 가치 · 규범을 만들어 내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 다. 이데올로기의 이러한 기능 때문에 가치가 있는 노동 도 정치적 · 이데올로기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면 상당 한 문제를 갖게 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에게 텔레비 전 · 광고 · 영화 등 대중 문화는 당연히 이데올로기적 국 가 기구에 해당한다. 이것들이 자본주의가 어려움 없이 재생산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정 정도 학습 기능을 지니고, 지배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규범이나 지식들을 전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규범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그들이 계급 사 회에서 맡는 역할을 배우게 된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으 로 자본주의가 재생산된다. 둘째는 실천으로서의 이데올 로기인데, 그는 사회 문화적 제도의 제반 실천들 속에 이 데올로기가 들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이데올로기 는 세상에 대해 사고하고 추정할 수 있는 틀이다. 즉 사 람들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자신들이 처한 시간 · 공간적 사건들을 해석해 낸다. 이 틀은 인간의 말 속에서, 그리 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 속에서 나타난다. 이데 올로기가 드러나는 것이 바로 말이며 행동들인 것이다. 말과 행동과 같은 실천은 항상 사회 제도들과 닿아 있다.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을 분석한다는 것은 사회 제도들의 이데올로기적 행위들을 해부하는 것과 통한다. 그에게 이데올로기는 정신적이면서 실천을 담은 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허위 의식으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 나, 이데올로기를 통하지 않은 실천이란 없다는 점을 명 확히 하였다. 이데올로기가 생산되는 것은 사람들이 현 실에 대한 허위 표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 아니라, 이데 올로기적 국가 기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발생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이데올로기에 따르지 않고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우리의 실천은 있을 수 없다. 그에 게 이데올로기란 현재의 상황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개 인이 현재 상황과 맺어야 하는 가상적 관계의 표현이다. 이데올로기가 투영하는 것은 현실 세계가 아니라 인간과 현실 사이의 관계란 뜻이다. 또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론은 호명을 통한 이데올로기의 주체 형성(복종함으로써 주인이 되는 과정)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에게 전이되는 과 정까지를 그리고 있다. 그의 이데올로기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데올 로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식의 그물망(fabric) 역할을 하는 점을 지적한 부분이다. 그는 촘촘히 짜여진 그물망 안에서 개인은 어쩔 수 없이 갇히게 되고, 그 안에서 자신 의 의식인 양 실천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 주려고 하였다. 구조가 만들어 내는 이데올로기, 동시에 그의 부름을 받 게 되는 개인들, 다시 이 개인들로 인하여 재생산되는 이데올로기 그리고 구조의 순환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의 변모 : 1950년대의 냉전은 마르크스 주의 일변도의 이데올로기론과 함의를 달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서 좁은 의미의 정의를 따를 때 사회주의는 자 본주의를 허위 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였고,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를 현실을 그릇되게 반영하고 자본 주의 체제 전복을 목표로 하는 위험한 사상 정도로 간주 하였다. 이러한 상호 간의 체제에 대한 이질적인 규정은 근 50년 간이나 국제 정치 무대에서 통용되었다. 냉전의 사실상 붕괴 이후 이데올로기는 알튀세의 의미, 또는 문 화론의 연구자들이 보여 주는 통찰에 가깝게 사용되는 듯하다. 〔가톨릭의 반응과 응용〕 이데올로기에 대한 교회의 입 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편견을 갖고 있었 다. 하지만 이 공의회에서, 이데올로기는 국가나 집단의 이해 관계에 따라 변질된 조직적인 사상의 표현으로 이 해하였다. 〈사목 헌장〉(Gaudium et spes)은 이데올로기를 민족주의나 군사주의의 실현을 위한 도구로 간주하였다. 또한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Presbyterorum Ordinis)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건설과 관련하여, 어떤 사제든지 특정 이념에 종사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나아가 공의회는 이데올로기를 다루면서 "조직적인 무신 론"은 거부하여야 한다고 함으로써 공산주의를 은근히 겨냥하면서도 직접적인 공격은 피해 갔다. 본문은 이데올로기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것이었으나, 이전보다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 주었다. 1979년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개최된 제3차 라틴 아메 리카 주교 회의에서는 좀더 발전된 견해를 표명하였다. 주교들은 이데올로기를 사회의 유력한 집단의 입장에서 다듬어진 삶의 여러 양상들을 바라보는 태도라고 규정하 였다. 결국 이데올로기에 의해 옹호되는 이해 관계가 합 법적인 것이고, 다른 집단들의 근본적인 시각을 존중한 다면, 그 이데올로기는 합법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는 행동을 위한 매개체일 수도 있 다. 이 주교 회의는 이데올로기가 절대시되고 우상화되 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세 가지 주요한 이데올로기를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마르크스주 의의 집단주의,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로 규정하였다. 이데올로기는 가톨릭 교회의 신학과 사명 실현의 방식 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신학에서는 해방 신학이 사회 분석의 도구로써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 정확하게 말 하면 그 가운데서도 사적 유물론을 차용하였다. 물론 일 방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적 수용이었다. 그러나 마르크 스주의 이데올로기는 무신론을 주창함으로써 가톨릭 교 회와 지난 150년 동안 서구 사회에서 긴장 관계를 형성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특히 가톨릭 사회론 과 실천 신학의 일부 분야들은 반종교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면 선택적 수용을 통하여 교회의 사명을 새롭게 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사실 교회는 현실 사회를 해석하는 객관적인 눈을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제공받아야 하기에, 이런 시도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 마르크스주의 ; 사회주의) ※ 참고문헌 J. Larrain, The Concept of ldeology, London, Hutchinson, 1982/ L. Althusser,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London, New Left Books, 1971/ S. Hall, The Rediscovery of Ideology, Gurevitch et al., eds., 1982. 〔朴文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