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기 李道起(1743~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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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천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뻐하는 이도기 바오로(탁희성 작).
1797년 정사박해(丁巳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충청도 청양(靑陽) 출신. 그는 글을 배우지는 못 했으나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뒤부터는 성령의 학교에서 사랑과 실천을 배워 얼마 안되는 재산을 모두 비신자들 을 입교시키는 데 사용하였다. 그는 이곳저곳으로 피해 다니며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의 활동은 청양뿐 아니라 홍주(洪州) · 공주(公州) · 은진(恩 津) 등지에까지 미쳤다. 이름이 알려지자 그는 칠갑산을 넘어 정산(定山) 땅으로 피신하여 한 옹기점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전교로 이 마을 사람들도 곧 모두 입교하였 다. 1797년 정사박해가 시작되자 인근의 김(金)이라는 비신자가 그에게 천주교 신자들의 우두머리로 고발하겠 다고 위협하였다. 아내가 겁을 먹고 도망가기를 권했으나 그는 자신을 신임하는 신입 교우들을 염려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6월 8일(음) 집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10 여 명의 포졸들이 나타나 그를 체포하였다. 포졸들은 집 을 뒤져 십자고상과 천주교 관련 서적 몇 권을 찾아냈다. 그들은 그를 근처의 숲 속으로 끌고가 매질을 하면서 주 문모 신부의 은신처와 동료 신자들의 이름을 대도록 하였으나 헛일이었다. 정산 현감은 십자고상과 책들을 살펴보고 나서 그에게 선생과 제자들을 대라고 다그쳤으나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동료들은 한 사람만 빼고는 현감의 요 구대로 하였다. 이튿날 포졸들은 그를 장터로 끌고 나가 열두 시간이 넘도록 갖은 매질과 비난의 소리를 퍼부었 다. 닷새 후 현감은 장터에서 큰 잔치를 베풀면서 그에게 배교하라고 요구하였으나 그는 천주교의 진리를 설명할 뿐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다시 무수한 매질을 당했다. 이후에도 현감은 여러 차례 그를 불러내어 회유하거나 배교하라면서 매질을 하였으나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 다. 그는 도망갈 기회를 주어도 끝내 도망가지 않았으며, 아내와 신자들이 찾아와도 마음이 약해질 것을 두려워하 여 물리치곤 하였다. 1798년 6월 10일(음) 아침에 포졸 들이 와서 사형 집행일이 되었다고 일러주자 그는 기뻐 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얼굴까지 환해졌다. 형장으로 끌려간 그는 무수한 매질을 받고 끝내 6월 12일(음) 순 교하였다. 그가 순교하던 날 밤 큰 광채가 그의 몸을 둘 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이러한 그의 순교 행적을 담은 《정산일기》(定山日記)가 오 늘날 전해지고 있다. (→ 정사박해 ; 《정산일기》)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pp. 400~410/ 《정산일기》/ 조광 역 주, 《사학징의》 1,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2001, pp. 266~268 〔孫淑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