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李東九(190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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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소설가. 문학 평론가. 극작가. 교육자. 세례명은 베네딕도. 1931년 일본 구주제국대학(九 州帝國大學)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일시 대구교 남학교(嶠南學校)에 재직하다가 동성상업학교 교사로 옮겨 1942년까 지 재임하였다. 1934년 6월 윤형중(尹亨重, 마 태오) 신부, 장면(張勉, 요한), 장발(張勃, 루도 비코), 정지용(鄭芝溶, 프란치스코) 등과 함께 《가톨릭 청년》을 창간하여, 〈도항노동자〉(渡航勞動者), 〈풍선〉 (風船) 등의 소설과 가톨릭 문학이나 작가론 등의 평론 을 발표하였다. 또한 1939년 경향잡지사에서 기해박해 (己亥迫害) 100주년 기념으로 현상 모집한 치명 성극 (致命聖劇)에 4막극 〈순교자〉(列敎者)가 1등으로 당선 되어 《경향잡지》 1939년 7월호에 게재된 바 있으며, 1940년에는 보댕(J. Bodin, 邊若瑟) 신부가 작곡한 〈복자 찬미가〉에 가사를 붙이기도 하였다. 1939년 9월에 천주 교 순교자 현양회 중앙위원회 간사로 선임되었다. 1942 년 4월 1일부로 계성학교 제3대 교장 겸 계성여학원 원 장으로 취임하였으나, 1943년 7월 21일 한강에서 개최 된 계성학교 주최의 수영 강습회에 참가하였다가 심장 마비로 익사하였다. 7월 23일 학교장으로 장례 미사가 치러졌고, 유해는 종현(현 명동) 본당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향잡지》 1940년 9월호 ; 1943년 8 월호/ 《嶠南六十年史》, 大倫中高等學校, 1981/ 《동성 80년사》, 동성 중고등학교, 1987/ 《계성국민학교 110년사》, 계성국민학교, 1994.〔崔起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