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영〕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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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서남 아시아에 있는 국가. 공식 이름은 이란 이슬람 공 화국(Jomhūrī-ye Eslāmī-ye Īrān).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스피 해, 투르크메니스탄, 동쪽으로 파 키스탄, 남쪽으로 페르시아 만과 오만 만, 서쪽으로는 터 키, 이라크와 접하고 있다. 면적은 1,638,057k㎡이고, 인구는 62,750,000명(2001)이며, 수도는 테헤란(Teheran)이다. 공용어는 페르시아어이며, 국교는 이슬람이다. 기원전 2000년 이후 인도-유럽 어족에 속하는 이란인 들이 나타나 여러 왕국을 이루기 시작했다. 기원전 331 년 중동 지역을 통일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던 페르시아 는 알렉산데르 대왕과의 전쟁에서 패해 멸망하였다. 이 어 파르티아 제국(Pathia, 기원전 247~서기 224)은 오늘 날 이란 전역과 바빌로니아를 포함하는 대제국을 이룩하 였으나 사산 왕조(Sasan, 224~651)에 멸망당하였다. 페르 시아족이 세운 세 번째 왕조인 사산 왕조는 파르티아 왕 조보다 더 민족적이었고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면서 영토 확장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계속된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져 결국 이슬람 제국에 의해 멸 망당하였고, 이때부터 조로아스터교를 믿어 온 이란인들 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하였다. 9세기부터 최초의 이란계 독립 무슬림 왕조인 동부 이란의 타히르 왕조(Tahirid Dynasty, 821~873)를 비롯하여 여러 무슬림 왕조 들이 출현하였다. 이후 몽골의 침입으로 일한조(Il-Khanid dynasty, 1256~1353)의 통치를 받았고, 1336년 일한조의 아부 사이드가 사망한 뒤 이란은 다시 지방 왕조가 지배 하는 여러 소국가로 분열되었다. 16세기 터키계의 사파위(Safawi, 1500~1722) 왕조가 등 장하여 강력한 통일 국가를 건설하였다. 사파위 왕조는 현대 이란의 국가적 성격을 규정한 모체로서, 이때부터 이란의 국토는 종교적 · 영토적으로 거의 안정되었다. 사 파위 왕조는 국가적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랍인과 차별을 두어야 했지만, 이슬람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순니파 이슬람에서 시아파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1758년 잔드(Zand) 왕조는 이란을 통일하였고, 이후 수 많은 내전 끝에 1779년 카자르(Qājār) 왕조가 지배권을 확립했으나, 1차 세계대전에 이은 기근과 경제적 붕괴로 1921년 쿠데타가 일어났다. 1925년 레자 샤 팔라비(Reza Shah Pahlavi, 1925~1941)가 권력을 잡고 왕위에 올랐으 며 그가 왕위에서 물러난 뒤, 1941년 아들 모하마드 레 자 샤 팔라비(Mohammad Reza Shah Pahlavi, 1941~1979)가 즉위하였다. 1960년대 중반 팔라비는 토지 개혁, 공업 화를 도모하는 '백색 혁명' 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밀 경찰 조직 사바크(SAVK)를 통하여 반대파에 대한 가혹 한 탄압을 자행하였으며, 관료들의 부패도 극에 달하였다. 1978년 종교 세력을 중심으로 반정부 · 반국왕 투쟁 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 1900?~1989) 또한 국왕의 퇴위를 요구했다. 결국 1979년 1월 팔라비가 국외로 추방되었고, 같은 해 4월 국민 투표를 통해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혁명을 통해 수립된 새 정부는 1980~1988년까지 이라크와 전쟁을 치렀다. 1세기경 그리스도교는 주로 시리아인들에게 전래되었고, 이들은 소규모의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이 공동체는 곧 이교도 행정가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3세기 사산 왕 조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그리스도교에 탄압을 가했고, 340년에 시작된 혹독한 박해는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사산 왕조의 지배하에서 교회는 거의 외부 와 단절되어 독창적으로 발전하였다. 5세기 후반에는 네 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가 주류를 이루었고 인도, 중국, 몽고에 선교사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640년 이슬 람이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으나, 중세 이래로 가톨릭 선 교사들은 이 지역에서 경미하게나마 지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고 14~18세기에는 주로 도미니코 수도회가, 17세기에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가르멜회, 카푸친 작 은 형제회, 예수회가 활동하였다. 17세기 초, 그리스도교 신자수는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따르던 신자들이 아르메니아로부터 대거 이주해 옴에 따 라 급증하였다. 1834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으나 1918년 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 하였다. 1629년 설정된 라틴 전례를 따르는 신자들을 위한 이스파한(Isfahan) 교구는 1910년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이와 함께 1859년 아르메니아 전례(Armenian rite) 를 따르는 신자들을 위한 이스파한 교구가 설립되었고, 칼데아 전례(Chaldeanrite)를 따르는 신자들을 위한 사난 다이(Sanandaj, 1853년 설립) 대교구와 리자이예(Rizaiyeh, 1890년 복구) 대교구도 설립되었다. 1980년 정부는 교회 가 운영하는 사회 단체를 국유화하였고, 약 75%의 가톨릭 선교사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란을 떠났다. 1999년 3월 교황청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이란의 대통령 하타미(Mohammad Khatami, 1943~ )가 만나 가톨릭과 이슬람교의 관계 개선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2001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21,000명이며, 대교구 4, 교구 2, 본당 17개에 대주교 4, 주교 2, 신부 18(교구 소속 7, 수도회 소속 11), 종신 부제 6, 수녀 29명이 있다. 그리고 2000년 현재 33명의 한인 교포 신자들이 신부 1 명의 관할 하에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 페르시아) ※ 참고문헌 김정위, 《중동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5/ Bernard Lewis, 이희수 역, 《중동의 역사》, 까치, 1998/ T.P. Joyce, 《NCE》 7, pp. 608~610/ 2002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18/ Helga Anschütz, The Encyclopedia of Christianity vol 2, Wm. B. Eerdmons Publishing Company, 1999, pp. 731~734.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