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임 李梅任(1788~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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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를 보이며 자수한 성녀 이매임 데레사(탁희성 작).

묵주를 보이며 자수한 성녀 이매임 데레사(탁희성 작).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기해박해 때 순교. 세례명은 데레사. 성녀 허계임(許季任, 막달레나)의 시누이이며 성녀 이정희(李貞喜, 바르바라) · 이영희(李英喜, 막달레나) 자매의 고모이다. 그녀는 시골 양반인 외교인 (外敎人) 가정에서 태어나 결혼하였으나 20세에 과부가 되었으며, 봉천(奉天, 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친정으 로 돌아온 후 한 동네에 사는 여교우의 전교로 입교하였 다. 입교 후 그녀는 친정 식구들인 올케 허계임과 두 조 카 이정희 · 이영희를 가르치고 권면하여 신앙으로 인도 했다. 이후 그녀는 봉천에서 따로 집을 마련하여 살았다. 이어 조카 이영희가 동정을 지키며 살기 위하여 서울로 도망갔다가 다시는 강제로 혼인시키지 않는다는 아버지 의 다짐을 받고 돌아와 그녀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또한 조카 이정희도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이 죽고, 또 그 집에서는 수계 생활을 계속하기가 어렵게 되자 친정으로 돌아와 그녀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이와 같이 그녀와 함께 살던 두 조카들은 뒤에 서울로 이주하여 유 파치피코 (余恒德) 신부가 마련해 준 학도리골의 작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녀는 올케 허계임과 함께 해마다 판공 성사를 받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는데, 그때마다 두 조카들이 살 고 있는 집에 가서 묵었다. 1839년 3월 말에도 그녀는 허계임과 함께 판공 성사 를 받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가 두 조카들이 살고 있는 집에 들렀다. 당시 이 집에는 이영희의 조카인 이 바르바 라도 같이 살고 있었다. 또한 그곳에는 동정(童貞)을 지 키며 사는 김 루치아와 과부인 김성임(金成任, 마르타)도 와 있었다. 이들 일곱 여인들은 모여서 순교에 대한 이야 기만 하였다. 그때 기해박해가 일어나 사방에서 크게 위 세를 떨치자, 이 일곱 여인들은 순교하고 싶은 의욕이 불 꽃같이 치솟아 자수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이때 마침 한 사람이 와서 "남(南) 다미아노(明赫)의 온 집안이 체포되 었고, 포졸들이 아직도 그 집을 파괴하고 있다" 라는 소식 을 전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일곱 여인들은 더 이상 참 지 못하고, 1839년 4월 11일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포 졸들한테로 가서 묵주를 내보이며 자수하였다. 그리하여 결박당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포도대장이 순교하고자 하는 이들 일곱 여인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부드러운 말로 달래기도 하고 누차 무서운 형벌을 가하기도 하였으 나 모두 헛일이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모두 형조로 이송 하였다. 형조에 가서도 이들 일곱 여인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이매임은 1839년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으니, 그때 그녀의 나이는 51세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이영희 ; 이정희 ; 허계임) ※ 참고문헌  《기해일기》/ 《달레 교회사》 中, pp. 396~400, 426~427/ 《기해병오순교자증언록》 1, 48b~50b/ 林忠信 · 崔奭祐 역 주, 《崔良業神父書翰集》,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pp. 315~321/ 《承 政院日記》 憲宗 己亥 6월 10일.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