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
驕慢
〔라〕superbia · 〔영〕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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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쌓던 바벨탑.
자기 처지 이상으로 높이는 오만으로서 겸손 의 덕에 반대됨. 교만도 그 정도나 종류가 다양 한데, 하느님의 권위나 합법적인 교회의 권위 를 부정하지 않는 한 그 죄악이 훨씬 가볍다고 할 수 있으며, 하느님 아래에서 하느님의 권위 를 인정하면서 타인과 같은 수준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업적을 인정하는 것은 교만에 속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자긍심은 오히려 합법적이며 필요한 것이다. 교만 중에서 가장 사악한 것은 자신을 하느님과 동등하거나 능가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하느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다. 〔구약성서〕 전반적으로 인간의 주제넘음과 자찬에 대 하여 경고한다. 하느님은 "거만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시 고" (시편 18, 27), "안하무인인 오만 불손한 자를 용납하지 않으시며" (시편 101, 5), "거만한 사람의 집을 헐어 버리신다" (잠언 15, 25). 실제로 지혜의 논리에 따라 "잘난 체하다가는 창피를 당하는 법" (잠언 11, 2)이며, "거만엔 재난이 따르고 불손엔 멸망이 따른다" (잠언 16, 18). 더 나아가 구약성서는 교만을 죄의 실제적인 근거로 지적한다(이사 2, 6-22). 교만한 인간은 하느님에게 의지하거나 복종하기를 거절하며 하느님을 무시하고, 세상의 향락과 쾌락을 좇으며 죄를 저지른다. 또 하느님의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기 때문에 교만은 죄의 뿌리이자 근본인 것이다. 에제키엘서 16장 49-50절에서는 소돔의 죄가 바로 거만을 떨며 가난한 자들의 손을 잡아 주지 않고 역겨운 짓을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교만은 무신론의 근거가 된다. "재산이 많이 모이니까 그 재산 때문에 그만 제 마음은 거만해졌다. 너는 속으로 신이라도 된 듯 우줄댓다" (에제 28, 5-6). 무신론을 근거로 인간은 악을 저지른다. "악한 욕망 품고도 자랑스레 뽐내고 탐욕으로 악담하며 야훼께조차 코웃음 칩니다" (시편 10, 3). 시편과 지혜 문학에서 교만과 자랑은 악한 자의 특성이라 한 다(시편 5, 5 ; 12, 3 ; 49, 6 ; 75, 4 ; 잠언 8, 13 : 15, 25 ; 21, 4 ; 욥기 35, 12). 결국 교만은 불신앙의 뿌리가 되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파괴시킨다. 또 개인의 교 만함뿐만 아니라, 민족의 교만함 역시 하느님에 대한 불 신앙을 초래한다. "유대의 거만과 예루살렘의 엄청난 거만을 꺾어 버리겠다. 이 몹쓸 민족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저희의 악한 생각을 굽히지 않고 멋대로 살아왔다. 다른 신들을 따라다니며 섬기고 예배했다" (예레 13, 910). 야훼는 진노하여 교만한 민족을 파멸시킨다(이사 16, 6 ; 10, 12-19 ; 예레 13, 9 ; 50, 29-32 ; 호세 5, 5). 교만은 인간의 한계를 망각한 데서 비롯된다. 교만함은 인간의 피조성을 부정하고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려는 태도이다. 야훼는 인간의 자기 처지에 대한 망각을 항상 새롭게 일깨운다. "도끼가 도끼질 하는 사람에게 어찌 으스대겠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어찌 잘난 체하겠느냐?" (이사 10, 15) 교만한 민족과 거만한 개인을 파멸시킴으로써 야훼 홀로 영광스럽고 자 하며(이사 2, 11-17), 교만한 자들의 승리가 궁극적으로는 가난하고 겸손하게 남은 자들을 야훼 안에 세워 놓는 이유가 된다(이사 3, 14-15 ; 스바 3, 12). 이스라엘이 참으로 자랑해야 하는 것은 야훼의 의로운 행적뿐이다 (시편 20, 7 ; 34, 2 ; 예레 9, 23 ; 13, 15-16). 〔신약성서〕 하느님이 교만한 자를 흩어 버리고 겸손한 자를 높인다는 사상은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로 이어 진다. "그분이 당신 팔로 힘을 행사하시어 그 심사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다"(루가 1, 51). 야고보서 4장 1절과 베드로 전서 5장 5절에서도 잠언 3장 34절을 인용하여 하느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교만한 자는 물리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오로 역시 로마서 1장 30 절에서 타락한 이방 사회를 묘사하면서 교만한 자와 자 랑하는 자를 죄인으로 취급한다. 거만한 행동이나 과시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야고 4, 16 ; 1요한 2, 16). 하지만 사랑의 찬가에 따르면 "사랑은 허세를 부리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는다" (1고린 13, 4). 또한 바오로는 교만을 유 대교의 특징적인 정신으로 보았으며 유대인들의 하느님 에 대한 불신앙의 직접적 원인으로 보았다. 인간은 자신 의 행위를 자랑할 수 없고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의로움 을 얻을 수 있는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스스 로 의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에페 2, 9 ; 1고린 1, 26-31 ; 로마 4, 1-2). 그것이 바로 교만이다. 그러나 하느 님의 구원 활동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1고린 1, 29-31 ; 갈라 6, 14 : 필립 3, 3). 바오로는 자신의 직무(2고린 4, 1-6 ; 6, 3-10), 자 신의 고통과 연약함(2고린 11, 23-30 ; 12, 9), 그리고 자 신의 교우들에 대해서(2고린 7, 14 ; 8, 24 ; 9, 2-3) 자랑 하는데, 그 이유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자랑 의 내용이며, 그 모든 자랑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1고린 15, 10). 〔윤리신학〕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만을 죄의 뿌리이며 근본으로 여겨 왔다. 대(大)그레고리오 교황(Gregorius Magnus, 590~604) 시대부터 일곱 가지 주요한 악덕(나태, 질투, 허영, 사음, 탐욕, 탐식, 분노)을 칠죄종(七罪宗)이라 불러 왔으며, 이 칠죄종의 근원을 교만과 욕정이라 하였 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과 욕정으로부터 다른 악덕이 생겨나므로 교만을 주요 악덕이라 불렀다. 그는 사탄 이 하느님에 대해 교만한 마음을 품고 지극히 높은 보좌 에 앉으려 시도했을 때, 교만이 처음으로 나타났으며(이 사 14, 12-14), 타락한 마귀가 아담과 하와에게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는 갈망을 심어 주어(창세 3, 5), 그 결과 인 간의 본질이 타락했다고 보았다(로마 1, 21-23). 곧 인간 이 하느님처럼 되려 했던 시도가 바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교만의 행위였다. 본회퍼(D. Bonhöffer) 역시 원죄에 대한 해석에서 인간이 자신의 한계성을 망각하고 신처럼 되려고 한 점은 인간의 죄이며 비극이라고 말한다. 교만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은 불트만(R. Bultmann)과 니부어(R. Niebuhr)에게서 비롯된다. 불트만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 세상의 주인이며 삶의 주인인 양 착각하는 것이 바로 교만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세계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창조자로서 대립하여 있는데, 하느님을 자신의 중심으로 삼지 않는 사람은 세상적인 것 (육의 세계)을 자신의 신으로 삼게 된다. 결국 세상에 속한 것을 자랑하고 신뢰하게 되는데, 이 것이 곧 교만이다. 니부어는 교만을 권력의 교만, 지식의 교만, 도덕적 교만, 종교적 교만 등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권력을 장악한 지 배자들은 그들의 권력을 더욱 안전하고 확고하 게 굳히기 위하여 정치적 억압을 감행하는데, 이는 권력 을 최고의 우상으로 삼은 인간의 교만으로부터 생기는 현상이다. 지식의 교만은 권력의 교만을 정신화한 것으 로서, 유한한 지식을 궁극적인 지식으로 위장할 때 나타 난다. 도덕적 교만은 자신의 선을 무조건적인 도덕의 가치로 확립할 때 생겨난다. 종교적 교만은 종교의 자기 주장과 독선 안에 숨어 있다. 교만은 타인을 배제시키는 자기애(自己愛)로부터 생 겨난다.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자기 자신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을 단순히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때, 그는 교만의 악덕을 지닌다. 교만한 사람이란, 삶의 근원인 창조주를 배신하고 피조물에 집착하며 자신이 선택한 방법에 의지하고,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다. 특히 교만한 사람은 사악한 수단을 사용하여 능력 이상의 명예, 권력, 부를 추구하는 무절제한 욕망을 갖는다. 이러한 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느님에게 창조된 존재인 인간의 한계성을 재발견해야 하고(로마 12, 3), 자신을 성령에 복종시켜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하며(1고린 2, 14-15), 은총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한다(요한 15, 5) (→ 겸손 ; 칠죄종) ※ 참고문헌 송기득,《인간》, 한국신학연구소, 1984, pp. 107~162/ 유봉준, 《기초 윤리신학》, 가톨릭출판사, 1978, pp. 228~235/ R. Bultmann, 허혁 역, 《신약성서신학》, 성광문화사, 1976, pp. 185~270/ R. Niebuhr, The Nature and Destimy of Man, vol. 1, New York, 1941, pp. 150~240/ S.F. Parmisano, 《NCE》 11/ J.A. Wharton, 《IDB》3. 〔姜永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