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 李明雨(1911~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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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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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신부. 몬시뇰. 세례명은 야고보. 1911년 6 월 29일 경북 상주에서 출생하여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 교를 나와 1935년 6월 15일 계산동 본당에서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고 경남 거제 본당 주임(1935. 6~1943. 2)을 맡았다. 1943년 2월 주교 비서로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4월부터 계산동 본당 보좌(1944. 4~1945. 4)를 겸임하였다. 이명우 신부는 태평 양 전쟁 말기에 일제가 전국 성당의 종을 징발해 갈 때 일 본 헌병과 맞서 성당의 종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는 데, 특히 마산 완월동 본당의 종을 지키려고 기차로 내려 가던 중 삼랑진의 플램폼에서 일본 헌병에게 심하게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 다. 1945년 왜관 본당 6 대 주임(1945. 4~1948. 8) 으로 부임하여 순심중 학교를 설립하고 왜관 순심 교육 재단 이사장 겸 초대 순심 중학교장 을 역임하였으며, 낙산 본당 7대 주임(1945. 4~ 8)을 겸하였다. 부산 중 앙 본당 초대 주임(1948. 8~1950. 3), 영천 본당 3 대 주임(1950. 4~1959. 9), 삼덕 본당 8대 주임(1959. 9~ 1961. 12)을 거쳐 1961년 12월에 교구 사무국장, 1962 년 7월 대구교구 부주교로 임명되었고 대봉 본당 주임 (1961. 1~1971. 11)을 겸하였다. 이후 가톨릭 문화관장 및 액션 협의회 총책(1971. 11~ 1972. 10)에 임명되어 1972년 1월부터 가톨릭 센터 총무를 겸임하다가 1978년 1월에 대구 가톨릭 근로자 회관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1980년 8월 은퇴하였으며 이듬해 10월 3일 대구대교구의 발전 에 기여한 공로로 몬시놀에 피명되었다. 이명우 몬시뇰 은 본당 사목 · 청소년 교육 사업 그리고 교구 행정 사목 을 두루 맡았는데, 대구 지방 법원 가사 재판 조정 위원, 대한 적십자사 경북 지사 상임 위원, 경북 도정 자문 위 원, 재단 법인 대구 천주교회 유지 재단 부이사장, 대구 대교구 사제단 대의원, 통일 주체 국민 회의 대의원, 대 구대교구 관재 위원,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자문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84년 9월 1일 대구 가톨릭병원에서 숙환으로 선종하여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 되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가톨릭신문〉 1984. 9. 9, 5면/ 대구대 교구사 편찬위원회, 《大邱本堂 百年史》, 계산 본당 창립 100주년 기 념 행사위원회, 1986. 〔金志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