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동 본당

里門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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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2동 321-31 소재. 1962년 12월 27일 청량리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다.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 역은 동대문구 이문1~3동, 휘경1 · 2동, 회기동. 〔교 세〕 1966년 2,695명, 1973년 3,305명, 1977년 6,053 명, 1984년 6,120명, 1990년 5,848명, 1995년 5,740 명, 2000년 5,776명. 〔역대 신부〕 초대 최석우(崔奭祐) 안드레아(1962. 12~1963. 8), 2대 최익철(崔益喆) 베네딕 도(1963. 8~1967. 11), 3대 김영일(金永一) 발타사르(1967. 11~1971.5), 4대 최창정(崔昌鼎) 요아킴(1971. 5~1976. 5), 5대 김수창(金壽昌) 야고보(1976. 5~1977. 5), 6대 안충석 (安忠錫) 루가(1977. 5~1982. 9), 7대 김덕제(金德濟) 치 릴로(1982. 9~1986. 2), 8대 김대성(金大星) 바오로(1986. 2~1991. 8) , 9대 손영일(孫榮一) 바르나바(1991. 8~1997. 9) 10대 이원용(李沅勇) 안드레아(1997. 9~2001. 9) 11 대 전창문(田昌文) 가브리엘(2001. 9~현재). 〔설립과 발전〕 1955년 10월에 설립된 청량리 본당은 신자가 급증하여 1961년에는 신자수가 5,000명이 넘었 다. 신자수의 증가로 답십리, 이문동 등 성당과 멀어 불 편을 겪어야 했던 주변 지역의 신자들 사이에서 성당 분 리가 논의되자 청량리 본당의 이삼복(李三馥, 요한) 신 부는 이문동 지역 신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1962년 3 월 새 성당 부지로 성황당 터였던 이문동 321-31 소재 430평을 자신의 명의로 매입하였다. 이문동 본당은 1962년 12월 27일 청량리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최석우 신부가 부임하였다. 미군들 이 명동 성당에 남기고 간 콘세트를 얻어 1963년 4월 31평의 가건물 성당과 사제관(18평), 창고(10평)를 건립 하였다. 그러나 성당으로 쓰였던 콘세트 건물이 자리가 협소하여 들어가지도 못한 본당 신자들은 마당에서 스피 커를 통해 나오는 전례 지시에 따라 미사를 봉헌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3대 주임 김영일 신부는 성당 신축에 역점을 두면서 성당 기구의 정비와 전교사업의 강 화로 교세를 신장시켜 나갔다. 성당 신축 공사는 1969 년 3월부터 시작되어 10월 24일에 김수환 추기경의 주 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이문동 본당의 관할 구 역은 3개 구의 17개 동과 양주군 4개 면의 공소로 광범 위하여, 김영일 신부는 과감히 신설되는 자(子) 본당을 지원함으로써 관할 구역을 축소하는 가운데 성장된 성당으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따라서 1969년 9월 장위동 본 당이, 1970년 11월에는 상봉동 본당이 분가하였다. 성 당 신축의 여세를 몰아 1971년 4월에 사제관을 철거하 여 30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총 90평 규모의 공 간을 만들어 협소한 사제관을 확장하고 각종 단체의 모임 장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4대 주임 최창정 신부는 재임 기간 중에 사제관을 완공하고 이어 주일학교를 신 축하여 시설을 확장하였다. 또 지역 사회를 위한 유치원 의 설립과 신자들 간의 상호 부조를 위한 신용 협동 조합 의 설립 등의 사업으로 도약의 발판을 구축하였다. 6대 주임 안충석 신부 재임기인 1978년 4월에 석관동 본당 이 분리되었으며, 1981년 11월에 대지 95평(적산 25평 포함)을 매입하여 교육관(건평 144평, 지하 1층, 지상 2층) 을 준공하였다. 8대 주임 김대성 신부는 1987년 8월에 옥상 방수와 1층 구조를 변경하는 교육관 대보수 공사를 실시하였고, 1988년 2월에는 본당 도색 공사 및 노후된 전기 배선을 교체하여 성당의 환경을 개선하였다. 9대 주임 손영일 신부는 1996년 8월에 대희년을 대비해서 2000년대 복음화 전 신자 교육을 실시하였다. 10대 주임 이원용 신부 재임기인 1998년 2월에 선교 팸플릿을 제작 배포하고, 9월에는 전 신자 가두 선교를 실시하였 다. 그 해 10월 전교의 달을 맞아 "잃은 양 찾기 운동"을 실시하였고, 11월에는 전 신자 명찰 달고 인사 나누기 운동을 통해 신자들간의 우애를 다지고자 하였다. (→ 서울대교구 ; 청량리 본당) ※ 참고문헌  천주교 청량리 교회, 《清凉里聖堂四半世紀》, 1982.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