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두 李敏斗(1902~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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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사제 피정 후 드망즈 주교와 함께(맨 오른쪽이 이민두 신부, 1937년 5월 2일).
광주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타데오. 1902년 전남 나 주에서 태어나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29년 5월 25일 계산(桂山) 본당에서 뮈텔(Mutel, 閔德孝) 주 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전주(현 전동) 본당 2대 보좌 (1929. 5~1931. 5)로 임명되었다. 이후 경남 통영(현 태평 동) 본당 2대 주임을 거쳐 1934년 6월에 여수(현 동산동)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던 중 태평양 전쟁 이 발발하자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일본 경찰에 체포 되어 2년 간의 옥고를 치렀다. 1944년 노안 본당의 9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농촌 계몽에 앞장서는 한편, 유치원 을 설립하여 어린이 조기 교육에도 주력하였다. 여수 본당에 다시 부임한 이민두 신부는 1954년 무안(務安) 본 당 초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그 해 11월 20일 광주교구의 지원을 받아 사제관을 준공하는 등 본당 기반 조성을 위해 노력하다가, 1955년 12월 13일 급성 중풍으로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가톨릭시보〉 1955. 12. 25, 7면. 〔金志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