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식 李敏植(1829~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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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1846년 병오박해(丙午迫害) 때 김대건(金大建, 안드 레아) 신부의 시신을 미리내로 이장한 사람. 세례명은 빈천시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구교우 집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열심하고 겸손하여 모든 교우들에게 착한 표양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김대건 신부의 순교를 목 격하고 40여 일 동안 김 신부의 시신을 거두려고 노력하 다가, 10월 26일 밤 포졸들의 감시를 뚫고 시신을 거두 어 미리내에 안장하였다. 또한 1853년에는 다블뤼 (Daveluy, 安敦伊) 주교의 분부로 사망한 페레올(Ferréol, 高) 주교의 시신을 미리내에 모시기도 하였다. 그 뒤 병 인박해를 잘 넘긴 이민식은 40여 세에 중국과 일본에 가서 신품 공부를 하였으나 50세에 포기하고 돌아온 다음, 여러 해 동안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의 복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는 1901년 5월 시복 수속 관계로 김대 건 신부의 유해를 발굴할 때 유일한 증인으로 참여했으 며, 평생을 자신이 거두어 안장한 김대건 신부의 묘소를 돌보다가 검은정이에서 1921년 12월 9일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김용태 . 마백락 공저,《한국 천주교 신앙의 명문 성 김대건 신부 가문의 순교자들과 증거자들》, 대건인쇄출판사, 1996/ 《가톨릭 사전》/ 《경향잡지》 484호(1921. 12. 31). 〔孫淑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