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異邦人

〔라〕gentes · 〔영〕gent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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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그곳의 본토인과 머무는 사람. 〔개 념〕 구약성서에서는 씨족이나 부족, 민족이나 나 라가 다른 사람들을 여러 부류로 나누어 부른다. 혈통이 나 고향이나 국가가 다른 이들을 '멀다 · 다르다 · 낯설 다' 라는 뜻을 지닌 '자르' (וַר), 이러한 이들 가운데에서 자기들 곁에 지속적으로 체류하는 이들을 '머무르다 · 살 다' 라는 뜻을 지닌 '게르' (גֵּר) 또는 '토샤브' (תּוֹשָׁב)에서 고 일컫는다. 이 두 부류의 중간에 속하는 이들로서, 일 시적으로 체류하는 이들을 '자르' 와 원의미가 같은 '노 크리' (נָכְרִי)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다른 민족 전체를 가 리킬 때에는 보통으로 집합 명사 '고이' (גּוֹי), 드물게는 '러옴' (לָאם)을 사용한다. 이 밖에도 '암' (עַם)이 있는 데, 이 세 가지 모두 '민족 · 백성' 을 뜻한다. 통상 '암' , 때로는 '고이' 와 '러옴' 이 단수로 쓰일 경우에는 일반적 으로 동족을 가리킨다. 그리고 '고이' , 일부 본문에서는 '암' 이 복수로 쓰일 경우에는, 유대 민족 이외의 민족들 을 뜻한다. 이러한 구분은 신약성서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자르'와 노크리' 에는 '다른 사람에게 속하다, 낯설다' 를 뜻 하는 '알로트리오스' (ἀλλότριος), 또 '종족이 다르다' 를 뜻하는 '알로게네스' (ἀλλογενής)와 '알로필로스' (ἀλλο'φυλος)가 해당된다. '게르' 와 '토샤브' 에 상응하는 그리 스어는 '곁에 사는 · 머무르는 이' 를 뜻하는 '파로이코 스 (πάροικος), 때로는 '낯선 이, 손님' 을 뜻하는 '크세 노스 (ξένος)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 유다 민족 또는 백 성을 가리킬 때에는 통상 '라오스' (λαός), 그 밖의 이민 족들을 가리킬 때에는 일반적으로 '에트노스' (έθνος)의 복수인 '에트네' (ἔθνη)를 쓴다. 이 명사에서 파생한 형 용사 '에트니코스' (ἔθνικος)는 이민족 개개인을 가리킨다. 한국의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는 이와 관련하여 용어의 혼란을 겪고 있다. 씨족이나 부족, 민족이나 나라 가 다른 이들을 이스라엘이나 유대 지역에서의 체류 여 부와 관계 없이, 그리고 개인과 민족의 구분 없이 '이방 인' 이라는 낱말을 즐겨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방인' 은 '다른 나라 사람' 을 뜻한다. 물론 여기에서 '나라 방' (邦)을 '국가' 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최근에 와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이라는 풀이가 등장하였다(국립 국어 연구원,《표준 국어 대사전》, 1999). 다른 나라 또는 넓은 의미로 어떤 고장에서 와 지나가거나 일정 기간 머무르 는 사람이 이방인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잘못 써 옴으로 써 사전마다 '이방인' 의 둘째 뜻으로 '유대인이 선민 의 식에서 다른 민족들을 얕잡아 이르던 말' 이라고 설명하 고 있다. 뜻풀이도 문제지만 '이방인' 의 이런 잘못된 용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시편 102편 16절(공 동 번역에는 15절)의 "이방인들이( '고이' 의 복수) 야훼의 이 름을 두려워하고"에서, 이방인은 이스라엘 · 유다 땅에 와 있는 외지인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땅에 사는, 하느님 에게 선택된 백성 이외의 다른 민족들을 가리킨다. 이사 야서 8장 23절에서 유래하는 마태오 복음 4장 15절의 "이방인들의 갈릴래아"에서 "이방인들"은 히브리 말로 '고이' 의 복수, 그리스 말로 '에트노스' 의 복수이다. 갈 릴래아는 변방이어서 타민족들이 자리잡고 살았다. 그래 서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바오 로가 자신을 "이방인들( '에트노스' 의 복수)의 사도" 라고 일컫는데(로마 11, 13), 예컨대 유다 땅에 흘러든 외국인 들이 아니라, 유대인이 아닌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라 는 뜻이다. '게르' 와 '토샤브' , 그리고 '파로이코스' 는 '거류인' (居留人)이나 '거류민' 이 가깝다. 그러나 '머무르다, 살 다' 의 뜻이 명백하게 들어 있지는 않지만, '이방인' (경우 에 따라서는 외지인)을 계속 써도 무방하다고 본다( '노크 리' 는 '외국인' 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사실 '게르' 와 '토샤 브 , 그리고 '파로이코스' 가 나오는 성서 구절에서 문제 가 되는 것은 대부분 타지에서 머무른다는 사실 자체나 체류 기간보다는 본토인과의 다름이다. 곧 이방인은 고 향을 떠나 타향에서 그곳 본토인 곁에 머무르는 사람이 다. 그에게는 그 고장 사람들이 혈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받는 보호나 은전 등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곁에 사는 본토인이나 그곳 지방민의 호의와 배려에 맡겨진다. 그 대신 자기를 맞아들인 이들에게 신의를 지키고(창세 21, 23) 그곳의 법을 지킬 의무를 진다(민수 15, 15-16). 〔평등성〕 구약성서를 전체적으로 볼 때 이방인과 관련 된 이스라엘인들의 근본적 체험은 이집트 체류이다. 그 들은 이방인으로서 고생과 고통을 겪는다(창세 15, 13 ; 출애 3, 7 ; 신명 26, 6 ; 시편 105, 25 ; 사도 7, 6). 하느님 은 이 이방인들을 구출하심으로써, 당신이 약자들과 이 방인들의 보호자이심을 드러내신다. "그분께서는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 에게 빵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방 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 기 때문이다"(신명 10, 18-19 ; 출애 23, 9 ; 신명 24, 22). 레위기의 법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너희와 함께 머 무르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 야 한다. 그를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 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19, 34). 구체적인 법 생활에서도 이방인을 본토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레위 24, 22 ; 신명 1, 16). 이방인들에 대한 이런 자세에서 두 가지 점이 부각된다. 첫째, 이스라엘인들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대상으로서, 이방인이 고아와 과부와 함께 열거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명단의 첫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신명 24, 17 ; 27, 19 ; 시편 146, 9 ; 레위 19, 9-10 ; 신명 14, 28-29 ; 24, 19-22 등). 둘째, 이방인을 "본토인 가운 데 한 사람으로"(레위 19, 34), 곧 하느님의 백성이 서로 사랑해야 할 '이웃' 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이웃 사랑' 의 계명(레위 19, 18)과 "이방인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는 '이방인 사랑' 의 계명(레위 19, 34)이 동일한 형식으로 표현된다. 〔차별성과 동화〕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낙 원' 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나안 땅은 원칙적으로 이스라엘인들만 소유하게 되어 있었다.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지파와 집안에 따라 나누어 주신 것이다(여호 13-19장). 물론 이방인들 가운데에는 집을 가진 이도 있 었고(2사무 11, 2-9), 이스라엘인을 종으로 사들일 만큼 부유한 이들도 없지 않았다(레위 25, 47). 그러나 대체로 가난한 부류에 속하였다. 토지를 소유할 수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날품을 팔거나 기능공으로 생계를 유지하였 다. 예컨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신을 종으로 팔 경우 이스라엘인과 외국인 사이에 차이를 두는 규정(레위 25, 39. 44-46) 등에서 엿볼 수 있듯이(신명 15, 3 ; 23, 21), 현실적으로는 삶의 여러 분야에서 여러가지 차별이 있었 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개종자를 염두에 둔 규정들이 주를 이루게 된다. 단순한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인들의 믿음을 받아들여 그들의 신앙 공동체 안으로 들 어가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이 사는 땅은, 그들의 하느님이 당신 백성 가운데에 머무르 시는 거룩한 곳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인들은 이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민수 35, 34). 이스라엘 자신도 거룩 한 민족이(출애 19, 6) 되어야 한다(레위 20, 26). 구체적 으로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규정인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땅, 이스라엘인들이 거룩한 백 성이 되려면, 이방인들은 본토인들의 법을 지켜야 하는 관습상의 의무 이상으로 계약의 법규들을 함께 지켜야 한다. 한편 이스라엘인들은 여러 종교에 둘러싸여 삶으 로써, 종교적 순수성을 지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 야 했다. 이방인들은 그들을 다른 종교로, 우상 숭배로 유인하는 매체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1열왕 11, 1-13).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곁에 사는 이방인들을 가능한 한 자기들의 종교로 끌어들여야 했다. 그래서 유배 이후의 본문들에서는 점점 '이방인' 이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율법을 받아들인 '개종자' 의 뜻으로 쓰이게 된다. 그래 서 칠십인역에서는 후대 성서 본문의 '게르' 를 흔히, 타 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 '프 로셀뤼토스' 로 옮긴다. 〔본향을 향한 이방인〕 이스라엘인들은 조상들만이 아니라(창세 12, 10 ; 신명 26, 5 등), 약속의 땅에서 대대로 사는 자기들도 결국은 하느님 앞에서 이방인이라는 사실 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시편 39, 13 ; 히브 11, 13). 자기 들이 사는 땅의 본래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요 외지 인일 따름이다" (레위 25, 23). 이방인은 남의 땅에서 권 리를 주장할 수 없다. 주인의 선의에만 의지해야 한다. 하느님 앞에서 땅 · 집 주인 행세를 할 수 없음은, 이스라 엘인들이 개인적으로만 깨친 진리가 아니다(시편 119, 19). 특히 기원전 587년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파괴되면 서, 하느님의 백성은 자기들이 모두 그러함을 절감한다. 그래서 역대기 저자는 이스라엘의 임금 그 자체, 장차 올 메시아의 전형인 다윗 임금이 백성의 이름으로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말한다. "당신 앞에서 저희는 저희의 모든 조상처럼 이방인이고 외지인입니다"(1역대 29, 15). 이스라엘인들은, 땅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느님을 믿으며 나그네살이를 한 조상들처럼, 새로운 미래를 열어 주 시겠다는 그분의 약속과 그분이 베푸시는 은혜에만 온전 히 의지해야 하는 이방인이었다. 하느님의 백성은 본질 적으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새 백성 그리스 도인 역시 이 지상에서 나그네이다. "사실 우리는 이곳 에 머물 만한 도시를 가지고 있지 않고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 (히브 13, 14 ; 1베드 1, 1). 그러나 그리스 도인은 단순한 이방인이 아니다. "이제 여러분은 나그네 (크세노스)나 뜨내기(파로이코스)가 아니라 성도들과 같은 시민이자 하느님 가족입니다"(에페 2, 19). 그리스 도인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지만, 이미 "하느님 가족" 이 되어 그 '가정' 곧 영원한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 참고문헌  T.M. Mauch, Sojourner, 《IDB》 4, pp. 397~399/ G. Bertram · K.L. Schmidt, έθνος, έθνικος, 《TWNT》 Ⅱ, pp. 365~372/ D. Kellermann, בּרּר, 《TWAT》 I , pp. 979~992. 〔任承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