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현 李步玄(1773~1800)
글자 크기
9권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충청도 덕산(德山) 황모실(충남 당진군 고덕면 호음리)의 부유한 양민(良民)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꿋꿋했지만, 약간은 고집스러워 친구들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아이였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제멋대로 생활을 하다가, 20대 초반 황심(黃沁, 토마스)에게 교리를 배우고 입교하였다. 입교 후 이전과는 달리 단정한 처신과 온화한 생활로 많 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다. 그는 결혼할 마음이 없었으나 어머니의 권유에 순종하여 이를 따랐고, 얼마 뒤에는 연산(連山)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1795년에 지방 순방에 나선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를 자기 집에 모셔와 성사를 받기도 하였다. 연산 지방에 박해가 일어났을 때,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족과 교우들을 격려하였다. 그러던 중 집으로 찾아온 포졸에게 체포되어 관아로 압송되었고, 연산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은 후, 출생지로 넘기라는 감사의 명령에 따라 해미(海美)로 이송되었다. 이보현은 해미에서도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1800년 1월 9일 27세의 나이로 매맞아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달레 교회사》 上. 〔孫淑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