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치명일기》 등에 '바오로' 로 나오나 그의 형과 누이 등의 증언과 《우포도청등록》(右捕盜廳謄錄)의 기록으로 볼 때 '베드로' 가 맞다. 그의 이름은 '천조' 로도 나온다. 황해도 신천(信川) 출신인 그는 1857년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차동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 이의송(李義松,프란치스코, 일명 이여정)은 이덕보와 더불어 황해도 전교에 공이 큰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의 전교로 입교하였고,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베드로라는 본명을 받았으며, 온 마음을 기울여 천주교를 믿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부모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신문을 받을 때마다 아내 김이쁜(金於盆, 마리아)과 아들 이붕익을 돌아보고 "정신을 수습하여 실수치말라" 고 여러 차례 당부하였다. 포도대장이 그를 배교시키기 위하여 갖가지 엄한 형벌을 여러 차례 가하였으나 그는 그때마다 아버지가 당부한 말을 생각하며 끝까지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결국 그는 1866년 9월 14일(음) 총융진(總戎陣)이 있는 양화진(楊花津)에서 아버지 이의송, 어머니 김이쁜과 함께 군문 효수(軍門梟首)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물론 부자(父子)를 동시에 처형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사형 집행 날짜는 아버지와 달랐을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는 23세였다. (→ 김이쁜 ; 이의송)
※ 참고문헌 《치명일기》/ 《달레 교회사》 下, pp. 475~476/ 《右捕盜廳謄錄》 丙寅 9월 13~14일/ 《日省錄》 高宗 3년 9월 14일/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정리 번호 88 · 89 · 90 · 127 . 128,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柳洪烈, 《高宗治下 西學受難의 研究》, 을유문화사, 1962, pp. 203~204. 〔孫淑景〕
이붕익 李鵬翼(1842~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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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