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악 〔히〕יִשִׂחָק יִצְחָק 〔그〕Ἰσαάκ 〔라 · 영〕Isa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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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 의해 제물로 봉헌될 뻔하였던 이사악.

아브라함에 의해 제물로 봉헌될 뻔하였던 이사악.

아브라함이 100세 때 부인 사라에게서 얻은 아들로서, 아버지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제2 대 성조가 된 인물. 리브가와 결혼하여 쌍둥이 아들 에사오와 야곱을 두었으며, 야곱은 제3대 성조가 되었다.
성서 전체를 통틀어 볼 때 3명의 성조 중 이사악이 언급되는 부분이 가장 적다. 그의 생애가 언급되어 있는 창 세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혹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과 같이 이스라엘 의 세 성조를 엮는 사슬의 한 부분으로 나타난다. 신약성서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특히 자주 언급하는데, 이사악 을 "자유인에게서 난 아들" · "약속의 아들" · "상속자" ·"믿음으로 인해 태어나고" · "믿음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
아들" 로 즐겨 정의하면서 그를 성령과 믿음을 통해 태어난 그리스도교인들에 비유한다. 한편 노예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을 "육정의 아들"이라며 율법을 주장하는 유대인들에 비유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인 우월성의 논 리를 특히 이방계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펼친다(로마 9,7-9 ; 갈라 4, 21-31 : 히브 11, 9-12. 17-19).
〔어 원〕 이사악은 '웃다 · 미소 짓다 · 즐거워하다 · 조롱하다 · 애무하다' 등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 동사 '자하 크' (צָחַק)의 3인칭 단수 미래형으로, '그는 웃는다, 웃을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 이름의 유래는 창세기에 여 러 차례 나타나는데 100세와 90세라는 고령의 부모에게서 자식이 태어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아브라함이 웃 었고(창세 17, 17) 사라가 웃었으며(18, 12), 마침내 아기가 태어나자 그 어머니는 물론 소식을 듣는 이마다 기뻐 웃었다는 데서(21, 6)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이스마엘이 어린 이사악을 "(조롱하며) 놀았다" (מְצַחֵק ;) 21,9) 와 이사악이 리브가를 "애무하였다" (מֱצַחֵק ;) 26,8)는 구절들에서 이사악이라는 이름이 공명(共鳴)되고 있지 만, 이는 말놀이를 통한 문학적 기교라 볼 수 있다. 한편 적지 않은 수의 학자들(M. Noth, R. de Vaux)이 이름의 원형을 '이사악-엘' 로 여긴다. 우가리트 문헌들에 엘(신)이 만족할 때 웃었다는 표현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호의를 바란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근동 지역의 이름들 중에는 이런 이름이 전혀 발견되 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스마엘' 이나 '이스라엘' 등 창세기에 전해지는 신명(神名)을 동반하는 이름의 어원 들은 문맥상 하느님을 주어로 한다는 점을 참조할 때, 그 이름의 뜻이 거룩하지 않다는 이유로 어원론으로써의 진 가(眞價)가 낮다고 간주할 필요는 없다.
〔생 애〕 창세기 17-35장에 흩어져 있는 이사악에 관한 정보를 모으면, 그의 삶이 다음과 같이 재구성된다.
출생과 성장 : 많은 후손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과 함께 하느님의 명령으로 75세에 고향을 떠난 아브람은(12, 1-4) 오랜 기다림 후(15, 2-5) 99세 되던 해에 부인 사래가 1년 후에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언약을 구체적으로 받는다(17, 19 ; 18, 10). 또한 아이의 이름을 '이사악' 이라 짓게 하며 아브람은 '아브라함' 으로 사래는 '사라' 로 바꿔 주는데, 세 개의 새 이름은 결국 이사악의 출생과 함께 새로운 가문(家門)이 탄생함을, 다시 말해 하느님 의 구원 역사가 다시금 새로운 전환점에 접어들었음을 암시한다. 아기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21, 4), 그가 젖을 뗄 때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21, 8). 그 후 아들의 상속 문제로 불안해하는 사라 때문에, 나아가 이 사악의 후손만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을 수 있다는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약속 의 땅에서 내보내자 이사악은 명실공히 아브라함의 외아들로서 자라나게 되었다(21, 9-21). 그가 어느 정도 자란 어느 날,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이사악을 모리야 산 위에서 번제물로 바치도록 명하였고, 아브라함 은 순종하였다. 이 순종을 '하느님을 경외함' 으로 인정한 하느님은 결정적 순간에 이사악을 되돌려 주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어졌던 약속은 흔들릴 수 없는 계약을 통해 확정되었다(22, 1-19).
결혼과 장년기 : 아브라함은 자신의 적자(嫡子)로서 하느님의 약속을 상속하게 될 이사악의 특수 신분을 깊 이 의식한 듯 그를 가나안 여인과 결혼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약속의 땅을 벗어나게 해서도 안된다는 전제하에 종 엘리에젤을 자신의 고향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보내 친척 가운데서 신부감을 구해 오도록 한다. 하느님의 섭리적인 인도로 그는 성공을 거두어 이사악은 40세에 나홀의 손녀 리브가와 결혼하게 된다. 라하이-로이에서 이 두 사람의 첫 대면 장면은 짧지만 인상적이다. 이사악은 어머니 사라를 잃은(23장) 슬픔을 아내를 사랑하며 달랬다(24, 1-67).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자, 이사악은 이복형 이스마엘과 함께 아버지를 막벨라 동굴에 안장한 후 라하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다(25, 5-11). 리브가는 사라가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석녀(石女)로 머물렀는데 하느님이 이사악의 기도를 듣고 그가 60세 되던 해에 쌍둥이 아들 에사오와 야곱을 주셨다(25, 21-26). 26장에는 혹심한 가뭄을 계기로 시작된 이주 여행이 묘사되어 있다. 이사악은 함께 계시며 그를 보호하고 축복하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고 불레셋 왕 아비멜렉의 땅인 그랄 지방에 머물렀다. 거기서 리브가의 미모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아내를 누이라 했지만 아비멜렉의 우연찮은 발견으로 안전을 보장받게 되었다. 하느님의 축복은 이사악에게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주었다. 이 때문에 그는 불레셋인들의 시기를 받아 그랄 골짜기로 쫓겨났으며 우물 때문에 여러 차례 분쟁을 겪는다. 그 후 브엘-세바로 옮겨 가 거듭 하느님의 약속을 받는데, 마침내 이사악을 "야훼께서 함께해 주시는 사람, 야훼께 복을 받은 사람" 으로 알아본 아비멜렉이 그를 찾아와 공식적으로 우호 조약을 맺는다. 하느님이 약속한 그대로 모든 것이 평화롭고 좋게 해결된 것이다(26, 1-33).
노년과 죽음 : 노년에 이르러 눈이 어두워진 이사악은 에사오에게 장자 축복을 주려 했지만 리브가와 야곱의 술책에 넘어가 하느님의 섭리대로 야곱에게 축복을 주게되었다(27장). 그 후 야곱을 에사오의 복수로부터 피하 게 하는 동시에 가계의 순수 혈통을 잇게 하기 위해 바딴-아람으로 보내며 제2대 성조의 자격으로 아브라함의 축복을 전수해 준다(28, 1-5). 이사악은 180세에 마므레에서 죽었는데 귀향한 아들 야곱이 에사오와 함께 그를 막벨라에 있는 가족 묘지에 안장하였다(35, 27-29).
〔신학적 성찰〕 이사악 전승 : 이사악의 생애는 출생 예고부터 출생과 결혼, 부모의 죽음을 맞기까지의 일들이 '아브라함 전승' (Abraham Cycle ; 창세 11, 27-25, 18) 안에, 그리고 자녀의 출생부터 죽음까지는 '야곱 전승'(Jacob Cycle ; 창세 25, 19―35, 29) 안에 분리 불가의 요소로 들어 있다. 오직 창세기 26장 1-33절에서만 이사악이 주인공으로서 독자적인 삶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 26장을 좁은 의미에서 '이사악 전승 (Isaac Cycle)이라 따로 구별하기도 한다. 아브라함이나 야곱 전승 안에 들어 있는 이사악 사료들에 대한 연구도 그렇지만, 창세기 26장에 대해 최근까지 학계에서 제시해온 견해들은 다양하다.
성서 문헌 가설을 따르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전승의 출처를 주로 야훼 전승 문헌(J)으로 간주하는데, 그 원형이 구전 전승이나 속(俗) 자료(L)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O. Eissfedlt, M. Noth), , 후대의 편집자가 야훼계(와 사제계)의 사료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C. Westermann). 또한 본문에 나오는 장소 이름을 참조하여 라하이-로이나 브엘-세바 등 성소(聖所)를 중심으로 한 제의(祭儀) 전승 에서 역사적 뿌리를 찾는 학자들도 있다(A. de Pury). 창세기 26장의 구성을 논함에 있어, 소단락들의 주제가 다 양하고 이야기의 발단 부분(가뭄)과 종결 부분(불레셋인들과의 화해)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여러 개의 단편 전승이 결합된 모자이크로 간주해왔다(H. Gunkel, G. von Rad). 그러나 근래 들어 오경 연구가 전통적 성서 문헌 가설의 분석적 방법론을 벗어나 오경형성의 틀을 이루는 전승의 보다 큰 덩어리들과 편집자 의 활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옮겨 가면서, 비록 의견의 차이는 다소 보이지만, 창세기 26장이 조직적 구상 아래 쓰여진 독립 단편이라는 소리가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C. Westermann, E. Blum) .
창세기 26장 1-33절은 "(가뭄 안에서의 생존) 문제→문제 해결(풍성한 추수) = 새로운 문제의 발단(시기와 불 목)→새로운 문제의 해결(우호 조약)"이라는 이단계적(二段階的) '원인과 결과' 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전체는 '하느님의 보호와 축복' 이라는 통일적 주제로관통되고 있다. '하느님의 보호와 축복' 은 실질적으로 단락 전체를 움직여 가는 동인(動因)으로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종결로 이끌어 간다. 이렇게 통일성을 갖춘 한 단락이 자연스레 흐르는 야곱 이야기의 흐름을 깨고 들어간 데 대해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중 요한 것은 이 26장으로 말미암아 이사악이 하느님의 약속과 축복을 온전히 입은 자로서, 그리고 제단을 쌓아 하 느님과의 관계를 정식으로 수립한 자(26, 25. 창세 12, 8 ;13, 4. 18 ; 35, 20)로서 27장과 28장에서 야곱에게 축복 을 전수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3대 성조 이야기에서약속과 축복은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26장은 바로 이 신학을 잘 표현하며 이사악이 이스라엘의 제2대 성조로서의 자격을 확실히 갖추고 제1대와 제3대 성조를 연결 시킬 수 있게 한다. 이사악 전승의 가장 큰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사악이 나름의 독특한 삶을 모습을 보이 기보다 아브라함의 그늘 아래 머무는 인물처럼 여겨지고 그의 성격 묘사가 다른 족장들에 비해 매우 미약한 것은, 26장이 본격적인 이야기의 차원에서 쓰였다기보다는 연결 고리적 역할을 위해 편집자가 아브라함과 야곱의 사 료를 염두에 두고 각색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사악 전승이 다른 성조 전승, 특히 아브라함 전승을 전제하고 쓰여진 것은 거의 분명하며, 그 역(逆)을 생각
하기란 어렵다. 심한 가뭄 때문에 이사악이 이주하는 것 (1-2절)은 창세기 12장 1-10절을, 우물에 관한 분쟁들 (15-22절)은 21장 25-33절을 전제로 한다. 하느님이 이사악에게 주는 약속(3-5절)은 아브라함에게 이미 하신 약속(12, 1-3. 7 ; 13, 15-16)과 내용을 같이하며, 그 약속은 아브라함과 맺은 맹세와 그의 순종(22, 15-18)을 바탕 으로 주어진 것이다. 또한 브엘-세바에서 하느님의 현현(23-25절)도 아버지 아브라함 덕분이다. 아비멜렉과 조 약을 맺는 것(26-33절)은 21장 22-32절에서, 죽을까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것(6-11절)은 12장 10-20 절과 20장에서 각각 병행이 발견된다. 아울러 26장에 신명기 학파의 색채가 농후함을 참고할 때, 이 이야기는, 비록 한 두 차례의 편집 활동이 있었을 가능성을 둔다 하더라도, 창세기의 전체 구조가 거의 형성될 무렵에 주로 아브라함의 생애를 참고하여 편찬한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겠다.
모리야 산의 이사악 : 후손을 번성시켜 주겠다는 약속이후 신앙과 불신앙 사이를 오가며(창세 15, 2-6 ; 16, 1- 16) 아들 이사악을 얻기까지 아브라함의 삶은 하나의 신앙 여정이었다. 그런데 이 여정은 마침내 이사악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서 정점을 이룬다.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모리야 산의 사건은 '이사악의 제헌 (祭獻)' 으로 많이 알려졌으나 실질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신앙 시험' (22, 1)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사랑하는
외아들' (22, 2)을 아낌없이 바쳐 순종함으로써 하느님이 원한 신앙의 경지에 온전히 도달하였음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결정적 순간에 이사악을 돌려주고 숫양을 마련해 주심으로써 이사악의 출생에서 보여 주었던 당신의 신실함을 거듭 확증하셨다. 따라서 희생 제물로 바쳐지고 다시 살아난 모리야 산 위의 이사악은 하느님 과 인간이 엮는 역사의 중심부에 놓여 인간의 절대적 신앙에 대한, 그리고 하느님의 신실함과 전지전능함―아 브라함이 고백한 야훼 이레(יְהוָה יִרְאֶה)는 라틴어의 프로비데레' (providere) 동사와 뜻이 통하며, 이는 '미리 보 다' 〔foresee, 全智〕와 '마련하다' 〔provide, 全能〕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다 지니고 있다―에 대한 이중(二重)의 증거 자(martyr)가 된다.
이는 구세사의 한가운데 놓인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증거하고, 다시 일으켜 짐으로써 하느님의 신실함과 전지전능함을 증거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이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믿음이라는 시각으로 해설하는 것(히브 11, 17-19; 야고 2, 21-24) 외에 달리 명백히 언급하지 않는다. 성 서는 이사악을 짧게 언급하며 거의 수동적 인물로 묘사하고 있지만, 유대교 랍비들은 모리야 산의 사건을 '이 사악의 결박' 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이사악이 기꺼이이 제사의 제물이 되기 원함으로써 능동적으로 구원 역 사에 기여하였다고 해설하며 제2대 성조로서의 역할과 덕을 아낌없이 칭송한다(Josephus, Philo of Alexandria). 또한 이 '결박' 이 지니는 의미를 심화시켜 파스카 신비와 연결 짓기도 한다(Jubiles). 이러한 해설들은 바오로가 그 리스도에 의한 구원 신학을 펼치기 전부터 시작된 듯하고, 그 후 여러 책과 타르굼들을 통해 발전되었다.
한편 초대 교회의 많은 교부들은, 이사악이 그의 아버지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이르고 하느님에 의해 목숨을 건진 것을 예수의 희생적 죽음과 부활의 상징으로 본다. 그리고 그를 완전한 제사의 모델로, 십자가에 처형된 그 리스도의 예형(豫型)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면 테르툴리아노(160~223)는 아버지에 의해 나무를 지고 모리야 산 에 오른 이사악과 덤불에 뿔이 걸려 있던 숫양 안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뿔' 에 달리고 가시로 관이 씌 워져 골고타 산을 오르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이미 예시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기쁨 또는 '웃음' 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 인물이 극도로 처절한 고통을 겪은 후 얻어내는 환희의 신비는 세기를 두고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靈 感)의 샘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 아브라함 ; 야곱; 창세기)
※ 참고문헌  E. Blum, Die Komposition der Vätergeschichte, 《WMANT》 57, Neukirchen-Vluyn, 1984/ H. Gunkel, Genesis, 7 Auflage, Göttingen, 1966/ G. von Rad, Genesis, 9 Aufl. Göttingen, 1972(박재순 외 역, 《창세기》, 한국신학연구소, 1981)/ C. Westermann, Genesis 12~36, Neukirchen-Vluyn, 1981. 〔裵銀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