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예언서 중 제일 먼저 등장하고 이사야라는 예언자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총 66장으로 구성된 예언서.
이 예언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 예언자의 것으로 볼 수 없는 다양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사야 서가 한 예언자의 말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 권의 책이냐, 아니면 여러 예언자의 신탁을 수집해 놓은 여러 권의 책이냐 하는 특수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문체와 내용과 역사적 배경 등을 놓고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제1부(1-39장)는 전체적으로 기원전 8세기 후반 이사야 예언자 시대, 제2부(40-55장)는 기원전 587~538년의 유배 시대, 제3부(55-56장)는 유배 이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사야서' 라는 명칭은 책 전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제1부만 가리킨다. 나머지 두 부분은 다른 예언자가 거명되지 않기 때문에 통상 '제2 이사야서' , '제3 이사야서' 라고 부른다. 1-39장과 40장 이하를 구분하는 것은 이제 거의 모든 학자가 정설로 받아들인다. 제2부와 제3부를 나누는 것은 앞의 구분처럼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구분도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사야서(1-39장)〕 예언자 이사야 : "야(훼님)는 구원"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사야는 기원전 760년경 아모스라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1, 1). 이 밖에 그의 가족이나 출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다만 그가 사용하는 문체나 언어 기법, 도시인들이 즐겨 쓰는 은유, 또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 때문에 그를 이 도성 출신으로 추론할 수 있다. 임금이 궁궐 밖으로 시찰 나갔을 때 그가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었음으로 보아 (7, 3), 귀족이었다는 추측이 강하게 제기된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이사야가 귀족처럼 왕궁을 수시로 드나들 수 없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또 성전에서 이루어지는소명 환시를 근거로 이사야가 사제였다고 생각하기도 한 다. 그러나 6장의 배경은 성전 안팎이 다 될 수 있다. 6장의 환시를 보기 위해서 이사야가 굳이 사제여야 할 필 요는 없는 것이다.
격조 높은 문체를 구사하고 강력한 웅변력을 발휘하는 이사야가 평범한 집안 이상의 출신으로 고급 교육까지 받았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사야가 임금이나 조정과 논쟁을 벌이고 그들의 종교 · 정치 · 사 회 정책을 논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출신은 신학적으로 중요성을 지닌다. 이사야에게는 아모스나 호세아처 럼 '광야 전통' 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는 이집트 탈출 등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알지만(10, 24-25 ; 11, 16) 별다르게 언급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그가 시나이 계약과 함께 선택된 민족의 양 기둥을 이 루는 다윗 계약(2사무 7장)을 강조하는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왕실과 가까운 계층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리라고 짐 작하는 것이다.
이사야의 사생활은 그의 사명 수행과 관련된 사항만 몇 가지 간략히 제시된다. 그는 "여예언자"와 혼인하는데 두 아들에게 모두 상징적 이름을 붙인다(7, 3 ; 8, 3). 자식들의 이름까지 동원하여 자기의 메시지를 가시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8, 18). 이렇듯 이사야는 혼인과 가정 생활까지 통틀어 '온몸' 으로 하느님 말씀 선포의 사명을 수행한다.
이 예언자는 "우찌야 왕이 죽던 해"기원전 740)에 소명을 받고(6, 1) 그 뒤 세 임금의 치하에서 활동한다(1, 1). 그에 대한 마지막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아시리아의 산헤립(기원전704~681)이 예루살렘을 위협하던 기원전 701년 이다. 40년 가량 되는 그의 예언자 생활은 네 시기로 나누어진다. 초기(기원전 740~734경)는 소명부터 시리아와 이스라엘 연합군이 유대 왕국을 침공하자(7, 1-2) 유대왕 아하즈가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3세(기원전 747~727)에게 도움을 청할 때까지이다(1-5장). 이 전쟁 동안(기원전 734~732) 자신의 충고가 정치권에 받아들여지지않자, 이사야는 기원전 715년까지 공생활에서 물러선다(8, 16-18). 그 뒤에 그는 유대 왕국에서 히즈키야(기원전716~687)가 등극하고 아스돗의 주도로 반아시리아 봉기가 일어날 때 은둔 생활에서 나온다(중기 : 기원전 715~705 ; 10-23장). 아시리아 임금 사르곤의 사후 다시 아시리아에 대한 독립 운동이 전개되고 이어 예루살렘이 아시리아군에 포위되는 시기에, 그는 재차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후기 : 기원전 705~701 ; 28-32장과 36-39장)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에는 이사야가 므나쎄 왕 시기(기원전 687-642)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그를 순교자로 여기며, 7월 6일을 그의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순교했다는 전통은 성서에 언급된 것이 아니며 분명히 외경에 속한다(《이사야의 승천》 ; 에녹 11, 37). 이사야서의 머리글 (1, 1)에 따르면 이사야가 박해자 므나쎄 왕 시기에는 살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므나쎄 왕은 온갖 외국 종교 관습을 끌어들였고, 야훼 신앙을 따르는 자들을 심하게 박해하였다. 바로 이 점에 근거하여 이사야가 순교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역사적 배경 : 이사야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 에 사는 약소 민족들의 운명이 전적으로 한 강대국에 의해서 결정되던, 이른바 '아시리아 정복 시대' 의 예언자이다. 대제국의 침략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시리아와 팔레스티 나를 덮을 때, 북이스라엘 왕국이 우여곡절 끝에 멸망할 때, 유대 왕국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급한 때에 그는 예언자로 활동하였다.
유대 왕국은 외적 · 물리적 위협만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내적 · 정신적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 위기가 유대 민족의 특성과 종교를 뒤흔들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 경제적 병패가 기승을 부린다. 아시리아에 바치는 조공이 상황을 악화시켜(2열왕 18, 14-16), 백성은 더욱 가혹해진 세금에 시달렸다. 이러한 폐해와 참상에 대해 대변해 주는 이는 없고, 종교적으로는 혼합주의가 다시 번성한다. 나아가 아시리아의 종교까지 군사력에 힘입어 성전 안까지 밀려든다(2열왕 16, 10-18).
내우외환의 이면에는 가치 체계의 점진적 붕괴가 자리잡고 있었다. 전통적 사회 질서가 와해되면서, 민족 공동
체의 원초적 기반을 이루는 시나이 계약과 거기에서 유래하는 종교적 · 도덕적 · 사회적 규범의 준수가 해이해 진다. 이는 하느님 위상의 약화라는 근본적 사태까지 몰고 온다. 야훼는 당신의 백성에게 배제적이 되고 절대적 위치를 견지하지 못한다. 제사나 잘 차려 드리면 그 보답으로 당신 백성의 보호라는 역할이나 수행하는 한낱 민족 수호신으로 전락하고 만다(이사 1, 10-15).
당시 유대 왕국에는 두 가지 신학이 상호 보완적이면서 대립적인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즉, 시나이 계약과 다윗 계약에 기초를 둔 신학들이다. 시나이 계약은 계속 이 선택된 민족의 존립 근거와 존재 이유였다. 시나이 계약이라는 절대적 테두리 안에 들면서도 비교적 독립적으로 이해된 다윗 계약은, 다윗 왕조와 유대 왕국 존립의 바탕을 이룬다. 이 둘째 계약의 신학은 야훼 신앙 특유의 의무를 임금에게 부과하여(시편 72)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책임을 지우고, 의무를 저버리면 징벌을 받는다는 조건을 붙인다. 그러나 다윗 왕국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약속 자체는 무조건적이었다(시편 89, 1-5.20-38 : 2사무 7, 14-16).
이러한 유대 왕국의 공적 신학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8세기 후반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다. 왕조와 왕국의 존립이 위태로워지자 근본적인 질문들이 제기된다. '하느님이 다윗에게 내리신 영원한 왕국의 약속은 계속 믿을 수 있는가? 아시리아가 유다를 우롱하고 그 나라 신들이 성전 안까지 들어와 공경받는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당신의 언약을 절대적으로 이행하신다던 야훼의 권능은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이사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게된다.
구성 : 이사야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고―이 민족들에 대한 불행 예고―이스라엘에 대한 구원 약속" 이라는 전통적 도식 속에 모아진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수집 · 편찬될 때 기존의 작은 모음들이 이미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전체적 틀 속에 다시 분류해서 삽입시키는 데에는 어려움과 무리가 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밖의 여러 가지 정황을 바탕으로 이사야서는 다음과 같이 일곱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장은 책 전체의 도입부 기능을 수행하는데, 다양하면서도 대표적인 신탁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6장)에 소명 이야기가 들어있는 2-12장은 유대 왕국과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 대부분인데, 이사야서에서 가장 오래된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 13-23장은 이민족들에 대한 신탁이 주를 이룬다. 24-27장에는 대체적으로 묵시 문학의 성격을 띤 말씀들이 모아져 있고, 28-33장은 전체적으로 유대 왕국에 대한 약속과 위협을 담은 다양한 신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34-35장에는 다시 묵시록적인 단편들이 들어 있다. 끝으로 38장 9-22절 외에는 열왕기 후서 18-20장과 동일한 이사야서 36-39장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에 이사야가 벌인 활동에 관한 역사 기술로써, 이사야서의 부록 같은 성격을 지닌다. 이는 이 예언서가 본래 39장으로 끝났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신학 : 이사야에게 가장 특징적인 하느님의 모습은 그가 애용하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칭호에서 잘 드러난다(1, 4 ; 5, 19. 24 ; 30, 11 ; 31, 1 등). 이는 소명 이야기에서 "거룩하시다"라는 스랍들의 환호로써도 극적으로 강조되듯(6, 3), 이사야의 고유한 하느님 체험에서 시작된다. "만군의 야훼" , 곧 권능을 떨치시는 야훼는 세상과 역사의 주님이고 "임금" 그 자체이며(6, 5) 민족들의 주님이시다(14, 24-27).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또 가장 두드러지게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다.그렇다고 이것이 하느님의 존재나 활동 영역을 국한시키는 표현은 아니다. 첫째, 하느님을 체험하는 주체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이 지금까지 베푸신 구원, 그분의 말씀, 그리고 그분과의 직간접적인 관계 속에 영위해 온 생활을 통하여 그분을 "거룩하신 분" 으로 체험한다. 둘째,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란 칭호처럼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특수관계를 드러낸다. 이 특별한 관계가 '거룩함' 이라는 하느님의 본성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거룩함은 단순히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고 분리되어 존재하는 신의 자족적 성성(聖性)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세,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지배 방식을 가리킨다. 곧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하느님을 몸소 정의를 실천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요구하는 분으로 체험한다. 그리고 이 정의는 구체적인 대신(對神) 관계와 대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그 관계에 충실한 마음가짐을 비롯하여 거기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행동 및 그 결과까지 내포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이러한 하느님이기에 이사야는 하느님의 모습을 처음 '볼' 때 자기와 또 자기 백성의 '더러움' 을 절감하지 않 을 수 없게 된다(6, 5). 이는 시온에서 '삼킬 듯이 넘실거리는 불길 이라는 강렬한 어조로 표현되기도 한다(33,14). 여기서 '불'은 불의한 자들에게 드러나는 거룩한 주님의 현존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하느님은 거룩한 분으로 정의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 요구에 불응하는 자는 그분 앞에 설 수 없다. 반면에 하느님은 정의를 구현하는 분이기에, 그분만이 진실하고 절대적이며 유일한 신뢰의 대상이다(26, 4 ; 30, 15 ; 31, 1). 그러나 이 신뢰에는 늘 전제 조건이 있다. 그분의 거룩함에 스스로 응답하는 자세, 곧 정의의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것 없는 신뢰는 신뢰가 아니다.
예언자의 말은, 질타이든 심판의 선포이든 구원의 예고이든 결국 이스라엘에게 이 거룩한 하느님과 직접적이 고 인격적인 대면을 시키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피상적으로 변질되었는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당신 백성의 그러한 현재와 미래에 무엇을 요구하시고 무엇을 계획하시는지 보여 주는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현실에 대한 이사야의 종합적 판단은 부정적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민족을 단죄하고 하느님의 징벌을 선포한다. 이사야는 선택된 백성을 하느님에게 지탄받는 지경으로 몰고 간 인간 개인과 집단의 두 가지 근본 성향을 지적한다. 즉, 인간의 의존성과 오만이다.
인간은 자족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 안정 속에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의지가 되는 것은 빵과 물을 비롯한 기본 식량, 사회 조직의 뼈대를 이루는 계급과 신분의 질서 같은 것들이다(3, 1). 군사력이나 강대국과의 동맹도 인간 집단이 즐겨 찾아 의지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에만 우선적으로 기대려는 이스라엘의 자세이다(31, 1 ; 2, 6-9 참조). 보이는 것만 믿으면서 하느님을 뒷전으로 밀쳐 버렸기 때문에, 하느님 백성의 현실은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사야가 가리키는 인간의 두번째 치명적 성향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고 과시하는 교만이다(9, 8 ; 10, 8-19 ; 16, 6 ; 28, 1-4 등 참조). 가시적인 것만 의지하는 그릇된 신뢰로 눈이 어두워 자신을 오만스럽게 치켜세운 결과, 하느님도 몰라 보고 자기의 본질조차 보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서(1, 3), 자기의 출발점인 흙먼지 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5, 15).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인간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보다도 먼저 순종이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훼손되기는 하였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분의 백성이다. 그리고 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처럼 당사자들의 실존을 한데 묶는 근본적인 관계이다(1, 2 ; 30, 9).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순종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이는 노예적인 복종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자발적이며 자녀적인 헌신이고 그분 말씀에 대한 적극적 경청이다(1, 10 ; 28, 12; 30, 9).
순종에 이어지는 자세가 신뢰이다. 그러나 재물이나 군사력 같은 가시적 현실만을 의지하는 정치권에서(3, 1; 31, 1) '신뢰' 가 값싼 개념으로 전락해 버리는 바람에, 이사야는 이 용어에 대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또 종교에서 쓰는 '신뢰' 의 위험성을 직시하였던 것 같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흔히 하느님에게 신뢰를 고백한다. 그러나 신뢰는 하느님 말씀을 들음과 순종, 다른 이들과의 의로운 관계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참 신뢰가 될 수 없다. 이사야는 신뢰가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태도임을 명백히 한다(30, 15). 그러나 그것은 옳은 대신 관계 및 대인 관계에서 우러나오고 또 구현되는 것이어야 한다.
이 모든 자세를 한데 묶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결코 굳건히 서지 못하리라" (7,9).이사야는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자기 존립과 구원의 유일한 바탕으로 삼는 것, 곧 “임마누엘”에(7,14) 따라 살아갈 것을 사람들에게 요구한다.
〔제2 이사야서(40-55장) 예언자 제2 이사야 : 1788년 되더를라인(J.C. Döderlein)은 이사야서 40-66장이 바빌론 유배 시대에 무명의 시인 또는 예언자가 저술한 작품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이 예언자는 '제2 이사야' 로 불린다. 1892년에는 둠(B. Duhm)이 이사야서 56-66장을 기원전 5세기 중반에 또 다른 무명 예언자 '제3 이사야 의 작품이라고 떼어 낸다.
이사야서 제2부(40-55장)는 유배가 끝나는 상황에 관심을 기울인다. 곧 페르시아의 고레스(기원전 551~529)가 근동 지역의 새 패자로 등장할 때부터 기원전 539년 바빌론에 무혈 입성하기 직전까지의 기간이 그 배경이다.이 제2부의 주요 신학적 내용은 제1부와 구분된다. 곧 정점에 다다른 유일신 신앙, '주님의 종' 과 함께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제시되는 메시아 사상, 구원의 보편주의, 이 예언서에 '위로의 책' 이라는 제목을 붙일 정도로 강조된 위로 등이다. 이러한 내용에 따라 문학 양식이나 문체도 달라진다. 주로 선택된 백성의 죄상을 고발하고 심판을 예고하는 제1 이사야는 짧고 단호한 말씀을 선호한다. 반면 제2 이사야는 문장이 길고 장엄하며, 때로는 지혜 문학이나 찬미 시편을 연상시키는 문체를 즐긴다. 예언자는 희망 없이 살아가는 유배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유일하고 창조주이며 구원자인 하느님을 선포한다. 자연히 사람들을 가르치고 타이르는 지혜 문학적 어조와 하느님을 떠받들고 기리는 찬미가적 어조가 자주 쓰인다.
제2 이사야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활동하였는지는 모른다. 기원전 6세기 중엽 바빌론에서 유배살이를 하던 이로서, 이사야의 정신적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사야 곁에는 그의 언행을 듣고 볼
뿐 아니라, 그의 말과 전기적 자료를 수집 · 보존하던 제자들이 있었다(8, 16). 그의 사후에 그들의 모임이 이른 바 '이사야 (학)파' 로 발전한다. 그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다. 이들에게서 제2 이사야서와 제3 이사야가 나오고 또 이사야서 전체가 편집된다.
제2 이사야는 자기 이름을 내세우기보다 스승의 전통아래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이다. 그러나 그는 독자적으로도 큰 예언자들의 반열에 들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스승의 전통만 답습하지 않는다. 예레미야나 에제 키엘 등의 예언 전통, 이스라엘 신앙의 다양한 신학도 이어받아, 명료한 언어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고 세상 만민의 존재에 대해서 의미 깊은 메시지를 선포한다.
역사적 배경 : 이스라엘 왕국에 이어 유대 왕국까지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기원604~562)에 의해 멸망한다(2열왕 25장). 거룩한 도읍 예루살렘의 함락, 하느님 현존의 자리인 성전의 파괴, 영원한 존속이 약속된 왕국의 멸망 등은 단순히 정치적 · 군사적 차원에만 국한된 사건일 수 없었다. 더욱 근본적으로 종교와 신앙의 문제였다.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존재와 존립 자체가 문제된다.
유배 시대에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이들의 생활은 비참하였다. 임금을 비롯하여 지배층이 유배로 끌려가 정치적 · 사회적 활동이 중단되고, 성전이 허물어져 공적 종교 생활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유배 간 이들은 이국에 서나마 조금씩 생활 기반을 마련해 갔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적 · 종교적 위기는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시편 137). 유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암흑의 시대였다. 상황을 반전시킬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 절망 속의 생존이었다.그러나 이 절망의 막장 속에 빛이 비추기 시작한다.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라는 복음이들려 온다(40, 1-2).
이는 당시의 국제 정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새로운 기운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피정복민들을 유배시키지 않고, 그들의 종교도 최대한 존중해 준다. 이 획기적 시책에 소국의 피정복민들은 광복의 꿈까지는 꾸지 못하더라도, 종교적 자율과 새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게 된다. 새 시대가 밝아 온 것이다.
구성 : 제2 이사야서에는 다른 예언서들에서처럼 흔히 문단 구분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머리글이나 상황 설명이 전혀 없다. 많게는 50개에 달하는 작은 신탁이나 시들만 나열되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들이 아무런 형식상 또는 내용상의 원칙 없이 배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일부 학자들은 이 예언서 전체가 시(詩) 하나로, 또는 제2 이사야 자신이 신중히 배열한 일련의 시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예언서는 40-48장과 49-55장으로 명백히 양분된다. 첫째 부분에서는 주로 야곱-이스라엘, 둘째 부분에서는 시온-예루살렘이 하느님 말씀의 대상이다.앞에서는 야훼 하느님의 유일성과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이 대조되는 가운데, 바빌론의 멸망에 이어 이스라엘이 곧 맞게 될 해방이 노래된다. 뒤 부분의 주제는 귀향에 이어 예루살렘과 시온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선택된 민족의 복구와 영화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할 '기름 부음 받은 이' 로 선택한 고레스는 41-45장에만 나오고, 후반부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두 단락의 저자(제2 이사야와 또 다른 예언자)와 저작 장소(바빌론과 예루살렘)를 달리 생각하기도 하지만, 시대와 논리의 순서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아무튼 두 부분이 상이성보다는 제2 이사야 한 사람에게서 유래하는 공통점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에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독특한 내용으로 문맥의 흐름을 끊기도 하는 이른바 '주님의 종의 노래들' 은 주로 둘째 부분에 흩어져 있지만 첫째 부분에도 나온다(42, 1-4. 5-9 ; 49, 1-7. 8-13 ; 50, 4-9. 10-11 ; 52, 13-53, 12).
주님의 종 : 제2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 '주님의 종' 은 성서 전체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일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당대 사람인지 미래의 인물인지, 집단인지 개인인지, 그가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지 등, 이 종은 온통 수수께끼로 둘러쌓여 있다. 본문 자체가 드러내면서 감추고 또 감추면서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종의 노래들이 한데 모여 있지 않고 분산되어 있으며, 논리나 시간의 순서에 따라 내용이 전개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있다는 점 때문에도 어려움이 가중된다.
죄인처럼 죽어 갔지만 사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다른 이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고, 그러한 죽음을 통하여 마침내 주님에게서 현양을 받으며, 구약성서에서 그 어떠한 인간도 받은 바 없는 대속(代贖)의 사명을 주님에게서 받아 완수하는 이 종의 정체에 관해서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이 대두된다.
첫째는 현존하는 또는 이상적인 이스라엘, 혹은 그 가운데에서 선별된 단체로 생각하는 집단적 해석이다. 칠십인역과 거의 모든 유대교 주석이 이렇게 해석한다. 사실 41장 8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주님의 종으로 불리고 자주 한 개인처럼 말해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주님의 종을 집단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과 무리가 따른다(특히 49, 5-6). 둘째는 예언자로 해석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재림할 모세, 예레미야를 표본으로 하여 종말에 나타날 예언자, 또는 제2 이사야 자신으로 이해한다. 주님의 종은 그 소명부터 예언자의 면모를 지니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는, 특히 왕적인 특징들을 명백히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개인적-예언자적 해석에 이어서 셋째로, 개인적-왕적 해석이 제시된다. '임금' 이라는 칭호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임금이라면 수행하게 마련인 전쟁이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예언자보다 임금의 모습이 더 뚜렷이 나타남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주님의 기름 부음받은 이' 고레스를, 어떤 이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폐위되어 제2 이사야와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간 임금이나 그 아들 또는 손자를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의 종의 고난과 죽음은 이 왕적인 면과 일치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제2 이사야 이후 500년 동안 '종의 노래' 의 내용에 부합한 인물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말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혹은 딴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사도 8, 34), 그리고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루가 7, 19)라는 질문이 계속된 것이다.
제2 이사야서의 신학 : '세계' 의 중심 바빌론에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는 자연히 세계적이고 우주적 차원에서 그분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제2 이사야는 먼저 하느님은 창조주시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역동적인 말씀으로(55, 10-11) 홀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한 분이실 수밖에 없다(44, 24). 시작한 이는 동시에 끝을 맺는 이다. 하느님은 혼자 시작하셨기에 단독으로 끝내신다. 창조주이며 종결자인 이 하느님에게 다른 신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뿐더러 결국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창조 신학이 유일신론으로 이어진다(44, 6).
유일한 하느님은 그 본성도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분이다(41, 4). 이 불변성은 인간을 향한 그분의 본성을 규정 짓는 개념이다. 곧 하느님은 시종일관 구원자라는 것이다(45, 21). 하느님의 창조력은 태초의 창조로 끝나지 않고, 인간 역사에 대한 새로운 개입과 더불어 늘 새롭게 발휘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선택이나 이 민족의 해방과 구원도 창조로 표현된다. 창조주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창조주' 이기도 하다(43, 1. 7. 15). 이 '창조' 가 이스라엘인들이 유배에서 해방되어 다시 약속의 땅으로 가는 새로운 탈출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게 된다(41, 17-20).
하느님의 창조력은 이스라엘에만 미치지 않는다. 그분은 인류의 창조주이기도 하시다(45, 12). 이 창조주께서 풀 같은 인간(40, 6),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같고 천칭 위의 티끌" 같은 민족들을(40, 15) 모두 당신의 구원으로 부르신다(45, 22).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특권을 잃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무엇보다 먼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창조주요 구원자이다. 세상 만민은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들과 합류함으로써 그분의 구원에 동참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선택 사상은 구원의 보편주의로 확대되고, 이 보편주의는 이스라엘의 선택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제2 이사야는 '사랑하다' 동사를 두 번밖에 쓰지 않는다. 두 번 다 하느님이 주어로 한 번은 고레스가(48, 14), 한 번은 이스라엘이 그 대상이다(43, 4).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당신 백성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자주, 그리고 다양한 상징 언어로 표현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다(41, 21 ; 43, 15 등). 이는 지배와 피지배가 아니라 구원함과 구원받음의 관계이다. 당신 백성에게 구원을 베풀 때, 곧 제2의 탈출로 이스라엘을 해방하려는 지금, 그분의 왕권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다. 구원을 베푸는 임금의 모습은 목자의 은유로 더욱 뚜렷해진다(40,11).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은 '아버지 하느님' 으로 이어진다(43, 6 ; 45, 10-11).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자녀로 삼아 그들에게 구원과 애정을 베푼다. 제2 이사야는 하느님의 이러한 사랑이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강하다고 역설한다(49, 14-15).
이스라엘을 "빚어 만드신"(45, 11) 하느님은 이 세상의 어떤 어머니보다 더 자애로운 '어머니' 이다. 이러한 하느님은 더 나아가 '남편 하느님' 이다(54, 5). 그런데 그분은 배신당한 남편이다. 제 잘못으로 내쫓긴 아내에게 모든 죄악을 용서하고 씻어 주면서(43, 25 ; 44, 22) 다시 자기 구원의 품 안으로 받아들이는 남편이다. 만물의 창조주로서 무한히 크신 하느님께서 "벌레"처럼(41,14) 작고 비천한 존재인 이스라엘에게 한없는 정성과 사랑을 기울이신다. 이것이 하느님의 위대함이라고 제2 이사야는 강조한다.
〔제3 이사야서(56-66장)〕 예언자 제3 이사야 : 둠(B.Duhm)이 이사야서의 제3부에 관한 학설을 내놓은 이래 100년 이상 지났지만, 이 부분의 근본 문제들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일치되지 않고 있다. 우선 앞 부분과 명백히 다른 주제와 어조로, 그리고 분명한 통일성이나 구조 없이 전개되는 56-66장의 저자와 관련하여 크게 네 가지설이 있다. 첫째는 이 부분도 제2 이사야의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유배가 끝나면서 이 예언자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계속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2 이사야의 제자라는 주장이다. 제자가 스승의 말씀을 유배 이후의 새로운 현실에 다시 적용시켰다는 것이다. 셋째는 둠의 학설로써, 기원전 5세기 중반의 어떤 무명의 예언자가 이 부분을 저술하였다는 것이다. 넷째는 이 제3부가 한 예언자에 의해서, 또는 한 예언자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저자의 작품이라는 주장이다.
종합적으로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정리할 수 있다. 적어도 이 단락의 중심 부분은 제2 이사야와 관계가 있으며, 그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저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부분들도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저자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이사야 (학)파' 에 의해 기록 · 보존 · 편집되었다. 결론적으로 이사 56-66장을 '제3 이사야서' , 그 중심 부분을 선포한 예언자를 '제3 이사야' 라고 불러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 여러 이론이 있지만, 이 제3 이사야가 유배 뒤 성전 건축이 본격적이고 열성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기원전 520년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였으리라는 가설이 가장 신빙성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538년 고레스 칙령에 따라 유배자들의 첫 무리가 귀국한다(에즈 1, 8-11). 우선 제단을 세워 약식으로 나마 경신례를 재개하고 성전 재건의 기초를 놓는다(에즈 3장 ; 5, 16). 그러나 곧 내적 · 외적 어려움으로 공사가 중단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배자들은 계속 돌아온다.
유배자들의 귀향과 더불어 유다 땅에는 네 부류의 주민이 형성된다. 첫째는 귀향자들이다(에즈 2장). 이들은 종교적 열정과 함께 희망에 부풀어 귀국하지만, 오랫동안 황폐해 있던 지역에 다시 입주하는 데에 따르는 곤란을 비롯하여 여러 난관을 겪는다. 둘째는 본국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이스라엘의 정통 신앙을 충실히 보존한 이들도 있었지만, 야훼에 대한 경신례가 중단된 공백 상태에서 자리를 잡은 우상 숭배와 혼합 종교에 빠진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귀향자들은 잔류자의 무기력과 배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잔류자들은 귀향자들의 종교적 열성을 납득하지 못한다. 또 돌아온 이들과 남아 있던 이들 사이에 재산권 다툼도 벌어진다. 같은 유대인 사이에 종교적 · 사회적 갈등이 야기된 것이다.
유배 시대 이후 유다 지방의 주민을 이루는 셋째 요소는 이방인들이다. 유배 동안 또는 유배가 끝나면서 외국 인들이 자의나 타의로 유다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된다. 이로써 이들이 하느님의 백성과 얼마나 동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넷째는 디아스포라에 남은 유대인들이다(56, 8). 이들은 외국에 살면서도 조국의 재건에 일익을 담당한다. 그래서 이들은 조국을 '성지' 로 바라보면서(시편 137, 4-6) 그곳에서 자기들의 특별한 권리가 인정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상황과 다양한 주민의 배합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된다. 첫째는 열광적으로 귀향한 이들이 조국의 비참한 현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고 지속되는 상태 때문에 겪어야 하는 실망과 좌절, 불만과 불평이다. 제2 이사야가 예고한 구원이 지체됨에 따라, 또 실현되지 않음에 따라 야기되는 희망의 위기이다. 둘째는 귀향자들과 잔류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불화, 곧 어려운 여건으로 발생한 겨레 사이의 분열과 미움이다. 셋째는 계속되는 종교적 혼합주의와 우상 숭배, 그리고 넷째는 외국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제3 이사야는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 상이한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진 유배 이후의 유대인들을 격려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기치 아래 그들을 일치시키고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야 했다.
제3 이사야서의 신학 : 예전의 이스라엘 종교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던 제의적(祭儀的) '정(淨)과 부정(不淨)' 이 제3 이사야에게서는 효력을 상실한다. 성전에 더 이상 제의적으로 정한 이들만 들어가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만, 그중에서도 육체적으로 온전한 이들만 전례에 참석하지 않는다. 외국인들도, 육체적 불구자들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고자들도 성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이사 56, 3-7 ; 신명 23, 2-9). 유배 이후에 이스라엘인들이 선택된 민족,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보존하려고 폐쇄적 경향으로 나아갈 때, 제3 이사야는 그와 반대되는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다(56, 7).
이 예언자는 사회의 제반 현상에 이어서 종교의 여러 의식도 혹독히 비판하지만 안식일은 예외다. 유배 동안과 유배 이후에 안식일 준수는 일종의 신앙 고백 행위가 된다. 야훼 하느님에게 소속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믿음은 이제 단순히 출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저 마다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잡다한 민족이 섞여 사는 유배지나 다양한 부류의 주민이 함께 사는 유배 이후의 유다 땅에서, 이러한 신앙의 결정과 선택은 안식일 준수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56, 2-6). 안식일 준수가 신앙의 정통성을 판단 짓는 결정적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3 이사야서는 만민이 안식일의 거룩함을 인정하고 이 주님의 날에 하느님께 나아와, 곧 시온으로 순례와 그분에게 마땅한 경배를 드리리라는 예언으로 끝을 맺는다(66, 23).
이러는 가운데 제3 이사야가 강조하는 야훼는 무엇보다도 만민의 하느님이면서 아버지이다(63, 8. 16 ; 64,7). 하느님은 자녀들에게 사랑과 동정과 용서를 베푸는 아버지(63, 9 ; 57, 16-18), 기쁨과 평화를 베푸시는(567 ; 58, 13 ; 57, 2. 19 ; 66, 12), 그래서 희망을 주는 아버지이다. 이러한 하느님은 아버지이며 동시에 어머니이기도 하시다.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하느님은 이러한 모성적 위로와 함께 사람들을 새로운 미래로 이끈다. 당신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희망과 더불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65,17 ; 66, 22). (→ 구약성서 ; 바빌론 유배 ; 안식일 ; 예언서 ; 유대 왕국 ; 임마누엘)
※ 참고문헌 G. von Rad,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Band Ⅱ,München, Chr. Kaiser Verlag, 1975, pp. 154~181, 248~270(허혁 역, 《구약성서 신학》 2권, 분도출판사, 1977, pp. 146~172, 235~257)/ K. Koch, Die Profeten I . Assyrische Zeit, Urban-Taschenbücher Band 280,Kohlhammer, 1980, pp. 117~168/ ―, Die Profeten II. Babylonish-persische Zeit, Urban-Taschenb cher Band 281, Kohlhammer, 1980, pp. 124~155, 156~163/ H. Wildberger, Jesaja. Kap. 28~39, Biblischer Kommentar Altes Testament Х -3, Neukirchen-Vluyn, Neuchirchener Verlag, 1982, pp. 1509~1738/ L. Alonso Schöckel · J.L. Sicre Diaz, Profetas : I Isaias-Jeremias- II Ezequiel-Doce Profetas menores-Daniel-Baruc-Carta de Jeremias, Ediciones Cristiandad(edizione italiana a cura di G. Ravasi, I Profeti, Roma, Borla, 1984, pp. 97~123, 293~308, 385~392). 〔任承弼〕
이사야서 ― 書 〔히〕יְשַׁעְיָהוּ 〔그〕Ἠσαΐας 〔라〕Prophetia Isaiae 〔영〕The Book of Isa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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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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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에서 발견된 이사야서의 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