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李尙華(1876~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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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르톨로메오. 1876년 6월 23일 충남 부여군에서 태어나 1895년 용산 예수성 심신학교에 입 학 ,1908년 12월 19일 사제 서품을 받고 경기도 양평 능말 본당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전북 안대동(현 함 열) 본당 2대 주임(1911. 5~1913. 4), 경남 함양 본당(1913. 4~1918. 2)을 거쳐 진안 어은동(현 진안) 본당 2대 주임
(1918. 2~1921.6)으로 부임한 이상화 신부는 전임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의 교육 사업을 이어받아 학교 경영을 하면서 전교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일부 신자들이 불성실할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교세가 발전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본당을 전교 전망이 큰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본당 부지로 마땅한 곳을 물색하였고, 1922년 6월 마령면 연장리 한들에 정착하여 그 해 12월 목조 7칸의 성당과 목조 5칸의 사제관을 준공하였다. 이후 그는 전북 수류 본당 6대 주임(1930. 12~ 1935. 6)으로 전임되었으며, 1931년에 그의 주도로 검산리에 성당 · 침실 · 식당이 건축되었다. 한편, 김제(현 요천) 본당이 공소를 시작한 지 15년 만인 1935년 6월 16일 수류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됨에 따라 이상화 신부는 김제 본당 초대 주임(1935. 6~1938. 6)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전주(현 전동) 본당 5대 주임(1938. 6~1940. 4), 정읍(현 시기동) 본당 6대 주임(1940. 4~1944. 12), 전주 본당 10대 주임(1944. 12~1947. 4)으로 사목하였다. 광복 이후 전주 본당 내 청년회를 주축으로 중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 학교 설립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1946년 8월에 '성심여학원' (聖心女學院)이 설립 인가를 받고 그 해 10월 3일 개교하였다. 이에 따라 전주 본당 주임 이상화 신부가 성심여학원의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안대동(현 함열) 본당 9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상화 신부는 1년 만인 1950년 4월 휴양차 본당을 떠나게 되었다. 1953년까지 전주교구 부감목을 지내다가 1957년 10월 2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전주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II , 천주교 전주교구, 1998/ 《전동 100년》.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