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구 李瑞求(1899~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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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 소설가 · 극작가 · 연출가. 세례명은 요한. 호는 고범(孤帆) 또는 고성(孤星). 1899년 4월 5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의 창간과 함께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였고, 1921년 〈조선일보〉 도쿄(東京) 특파원을 맡았으며, 1922년 도쿄 니혼(日本) 대학 예술과를 중퇴하였다. 1923년 박승희(朴勝喜), 김기진(金基鎮) 등 유학생들과 도쿄에서 극단 토월회(土月會)를 창립하며 연극 운동에 참여하였다. 1925년에는 언론계를 떠나 레코드 회사 일과 경성 방송국 연예 주임 등을 맡았고, 1929년 6월에는 동양 영화사를 창립하였으며, 1931년 1월 영화 동인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1935년 동양 극장의 설립과 함께 전속 작가로 활약하였고, 1937년 〈홍도야 울지 마라〉를 발표하였다. 1938년 악극단 '도원경' (桃源境)을 창설하였으며, 일제 말기에는 친일 어용 단체였던 조선 연극 문화 협회(朝鮮演劇文化協會)의 초대 이사장을 맡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 1949년 한국무대 예술원 원장을 역임하고, 한국 전쟁 중에는 서울특별시 비서실장과 국방부 종군 극작가단 단장으로 활동하여 1953년 화랑 금성 무공 훈장을 받았다.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부인과 함께 입교한 후, 홍제동 본당의 총회장, 가톨릭 문우회 초대 회장과 가톨릭 저널리스트 클럽 초대 회장으로 1960년대 언론 문화 활동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1920~1930년대에 소설과 희곡을 발표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방송극을 많이 썼다. 라디오 드라마로 〈햇빛 쏟아지는 벌판〉, 〈강화 도령〉, 〈장희빈〉, 〈민며느리〉 등이 널리 알려졌고, 텔레비전 연속극도 많이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은 주로 대중의 비극적 정서에 호소한 신파 희곡이 많고, 역사 애정물에도 능하였다. 1981년 5월 25일 노환으로 사망하여,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의 선산에 안장되었다. 1960년에 방송 문화상을, 1964년에 서울특별시 문화상(방송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1976년 국민 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저서로 《風流의 뒷골목 : 구수한 話題의 産室》(1967)과 《歲時記》(1969) 등이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柳敏榮, 《韓國現代戲曲史》, 弘盛社, 1982/ 〈조선일보〉 1981. 5. 26.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