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알 수 없다. 충청도 충주에서 아전 노릇을 하던 이부춘(李富春)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기연(李箕延)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입교한 그의 아버지는 어느 정도 학식도 있고 언변과 인물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집안 사람들로부터 이웃 마을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남녀 노소를 입교시켜 곧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러한 아버지와 같이 그도 천주교에 입교하여 교회의 본분을 지키는 데 충실하였다. 그는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영혼의 이익을 위할 줄 알아서, 없어질 재물을 모으기보다는 천국을 얻기에 더 마음을 썼다. 그는 과부인 이아기련(李阿只連, 또는 權阿只連) 등에게 전교하였고, 또한 최조 이(崔召史) · 이조이(李召史) 등과도 함께 천주교를 강습하였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주일마다 신자들과 더불어 모임을 가졌으며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제사도 참여하지 않았다. 1801년 신유박해가 발생하자 그는 체포되어 충주 감영(忠州監營)에 갇혔다. 이때 그의 아버지도 날짜를 달리하여 충주 감영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들 부자(父子)가 형벌을 받을 때 보여 준 항구한 마음은 하느님의 은총이 신자들 마음에 어떤 기적을 행할 수 있는지를 아직 알지 못하는 외교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1801년 10월 3일(음 8월 27일)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물론 부자를 동시에 처형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사형 집행 날짜는 아버지와 달랐을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 이부춘)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p. 611/ 조광 역주, 《사학징의》 1,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2001, pp.245~246,265/ 이기경 편, 《벽위편》,한국교회사연구소, 1978, pp. 437~438. 〔孫淑景〕
이석중 李石中(1773~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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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상인이었던 이석중(탁희성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