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897년 충남 합덕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 5월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를 졸업하여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리원 본당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여 장연 본당의 보좌를 거쳐 1934년 8월 매화동 본당 6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다음해인 1935년 6월 20일 황해 · 강원 · 평안도 등지의 신부 10여 명과 2천여 명의 신자가 운집한 가운데 본당 설립 최초로 성체 거동 행사를 거행하였으며, 1936년 5월 안악읍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이어 1937년 5월 장연 본당 7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이듬해 5월 폐결핵 치료를 위해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하였다. 퇴원 후 1942년 9월 중림동 본당 4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구역 반 조직 등 교무 행정을 개혁하였고 한국 교회 최초의 남녀 혼성 합창단을 발족시켰다. 그 후 다시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성모병원에 입원하여 1년 정도 요양하다가 1947년 4월 22일 퇴원하여 사직동 지역에서 본당 설립을 준비하였고, 그 결과 같은 해 6월 29일 사직동 118번지 소재 가옥 2층에 사직동(현 세종로) 본당을 설립하여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여교우들을 동회장으로 임명하여 이들을 주축으로 교회를 운영하였으며, 병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신자를 모으기 위하여 성당 근처의 주민들을 방문하였다. 1949년 12월 본당 신자들이 모금한 기금으로 도렴동 24~28호의 70여평의 기와집을 매입하여 성당을 이전하면서, 본당 이름을 세종로 본당으로 바꾸었다.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해 공산군에게 성당이 징발당하고 이선용 신부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연행되었다가 신자들의 구명 운동으로 간신히 석방된 후 12월 27일 피난 길에 올라 부산을 거쳐 마산으로 옮겨 생활하였다. 이후 1953년 3월 다시 부산의 신자집에서 생활하다가 12월 17일 오랜 피난 생활로 건강이 악화되어 향년 57세로 선종하였다. 유해는 청학동 평신도 묘지에 안장하였다가 용산 성직자 묘지에 이장하였다. (→ 매화동 본당 ; 세종로 본당 ; 장연 본당; 중림동 본당)
※ 참고문헌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편, 《황해도 천주교 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약현 본당 백년사》, 천주교 중림동 교회/ 《세종로 본당 40년사》, 천주교 세종로 교회, 1987. [白秉根]
이선용 李善用(1897~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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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