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례 李聖禮(1800~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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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마리아. 《일성록》(日省錄)에는 이름이 성례(性禮)로 표기되어 있다.성인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의 아내이며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어머니이다. 충청도 홍주(洪州)에서태어난 그녀는 내포의 사도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의 사촌 누이인 이 멜라니아의 조카딸이었다. 18세 때 최경환과 결혼하여 남편을 따라 신앙 생활을 하기에 보다 더 적합한 서울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체포될 위기에 놓이게 되자 그녀의 가족들은 다시 강원도 김성과 경기도 부평의 산간 지대로 옮겨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1838년경 과천의 수리산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일구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녀의 가족들은 순교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7월에 체포되어 서울로압송되었다. 포도청에서 300대 이상의 곤장을 맞고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나 그녀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더러운 감방에서 어린 자식들이 굶어 죽어 가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약해져 배교하는 말을 하고 감옥에서 나왔다. 그러나 최양업 신부에 관한 사실이 탄로되어 그녀는 다시 체포되어 형조로 이송되었다. 그때 거기에 갇혀 있던 용감한 신자들이 배교를 취소하고 영광스럽게 순교하도록 권고하자 이에 감동하여 그녀는 배교를 용감히 취소하였다. 그녀는 이제 막내가 옥중에서 숨을 거두는 것을 보면서도 끝내 순교의 원의를 잃지 않는 용기를 보여 주었으며, 기쁜 마음으로 형장으로 나아갔다.1840년 1월 31일 서울의 당고개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39세였다. (→ 기해박해 ; 최경환 ; 최양업)
※ 참고문헌  《기해일기》/ 《달레 교회사》 中, pp. 432~435, 531/ 《日省錄》 憲宗 5년 8월 7일 ; 12월 11일/ 林忠信 · 崔奭祐 譯註, 《崔良業神父書翰集》,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pp. 137~149/ 류한영 · 차기진 공저, 《교우촌 배티와 최양업 신부》, 양업교회사연구소, 2000, pp.55~61.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