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만 李性萬(1900 ~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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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신부.세례명은 이냐시오. 1900년 1월 19일 경상남도 진양군 문산면에서 태어났으며 성 유스티노 신학교초등과 · 중등과 · 전문부 철학과를 거쳐, 1926년 5월 성 유스티노 대신학교 신학과를 졸업하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고, 목포의 산정리(현 산정동) 본당 보좌로 임명되었다. 당시 본당 주임이던 주재용(朱在用, 바오로) 신부가 1923년 개설한 성심소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목포 지역 어린이 교육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1929년 5월 되재(현 고산) 본당에서 분리된 금산 지방리(현 금산) 본당에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30년에 사제관 10칸을 건축하였으나, 1931년 전라도가 자치교구 준비로 감목 대리구(監牧代理區)가 될 때 본당이폐지되어 되재 본당 소속 공소가 되자 그 해 5월 10일 되재 본당 7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공소로 격하된 금산 지방리 본당이 1935년 금산읍 중도리로 옮겨서 금산본당으로 다시 승격하자 6월 금산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939년 4월 전동 본당 소속 공소 담임에 임명되었으며 1940년 4월 석동(현 용안) 본당 주임을 거쳐 화원 본당 3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 후 1943년 하양 본당 주임을 거쳐 1948년 언양 본당 6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전임 주임 유흥모(柳興模, 안드레아) 신부가 설치하려던 전기 시설을 완료하였다. 그리고 1952년 9월 부산진(현 범일) 본당 16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성당 축대를 쌓고 성당 내부 바닥을 개조하는 등 환경 정화 사업을 벌이는 한편 그 해 12월 평신도 단체를 가톨릭 신우회로 개편하였다. 1954년 7월 다시 화원 본당 8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6개월 만인 1955년 1월 남산 본당 9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이듬해 본당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분원을 마련하여 신자 교육과 전교 활동에 큰 도움이 되게 하였다. 1960년 3월 신암동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반야월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62년 6월 10평 규모의 사제관(현 교리 교사실)을 완공한 데 이어 1967년 5월에는 25평 규모의 강당을 마련하는 등 여러 부대 시설을 건립하고 평신도 단체들을 설립하였다. 10여 년 동안 반야월 본당의 기틀을 마련한 이성만 신부는 1976년 10월 5일 노환으로 대명동 936번지 소재 자택에서 향년 76세로 선종하였으며, 유해는 대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고산 본당 ; 금산 본당 ; 남산동 본당 ; 반야월 본당 ; 범일 본당 ; 산정동 본당 ; 언양 본당)
※ 참고문헌  《화원 본당 50년사》, 천주교 대구대교구 화원 교회, 1988/ 《신앙 전래 이백년사 언양 천주교회사》, 언양 천주교회, 1993/《전주교구사》/ 《부산교구사》/ 《광주대교구 50년사》(1937~1987), 천주교 광주대교구, 1990/ 《대구대교구 총람》.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