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삼 李 ― (1795~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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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박해(丁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요한. 《일성록》(日省錄)에 보이는 이유정(李儒定)과 같은 사람으로 이해된다. 그의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대대로 무관(武官)을 지낸 양반 집안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충청도 덕산(德山) 높은뫼(현 충남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에서 살면서 두 형 및 누이 이시임(李時壬, 안나)과 더불어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는 신앙 생활을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큰형 이성지(《일성록》에 보이는 李儒震)를 따라 산중으로 피해 들어가는 등 이사를 여러 번 한 뒤에 전라도 고산 고을로 가서 살았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의 희망에 따라 일을 하는 틈틈이 글 공부를 하였다. 그래서 천주교 서적을 많이 베껴 교우들에게 팔기도 하고 주기도 하였으며 가난한 교우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는 비록 성질이 괄괄하고 급하였지만 자기자신을 잘 억제할 줄 알았기 때문에 그의 말은 부드럽고사랑스러워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먼저 그의 큰형 이성지가 3월 23일(음) 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었고, 얼마 안되어 그를 비롯한 온 집안 식구 13명도 함께 잡혀 들어갔다. 이미 그는 여러 차례 형벌을 당하였는데, 뒤에 같이 갇혀 있던 여러 교우들이 자기들 집에서 압수당한 책들을 그가 베낀 것이라고 밀고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교우들의 우두머리로 오인을 받아 여러 차례 혹독한 고문을 당하게 되었으며, 결국 그 여독으로 그 해 9월 14일(음) 옥중에서 3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 이성지 ;이시임)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pp. 62~64, 114~117/ 《日省錄》 純祖 15년 6월 19일 ; 27년 閏 5월 2일.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