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이 李順伊(1782~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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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철 요한과 동정 부부였던 이순이 루갈다(탁희성 작).

유중철 요한과 동정 부부였던 이순이 루갈다(탁희성 작).

동정 순교자(童貞殉敎者). 세례명은 루갈다. 아명은 유희. 서울에서 아버지 이윤하(李潤夏)와 어머니 권 씨(權哲身의 누이동생) 사이의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덕이 많은 어머니 권 씨의 보살핌 속에서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성장하였다. 14세 되던 1795년(정조 19)에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가 입국하자 3일 동안 성사를 준비한 후 성체성사를 받았다. 이때 성례(聖禮)의 효과를 보존하는 것에 마음을 쓰면서 동정(童貞)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렇지만 당시
조선의 풍습으로 동정 생활이 어려워지자 1797년(정조21) 주문모 신부의 소개와 어머니의 동의하에 동정을 바치기를 원하는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의 장남 유중철(柳重哲, 요한)과 결혼하였다. 이듬해 9월 시댁인 전주로 가서 서로 동정 서원(童貞誓願)을 하였다. 그리하여 남편과 더불어 서로 격려하며 끊임없는 극기와 인내로 모든 것을 뿌리치고 순교하기까지 4년 동안을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과 같은 결혼 생활을 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남편이 시아버지 유항검을 비롯한 몇몇 식구들과 함께 이른바 대박 청래(大舶請來) 사건과 연루되어 체포되어 서울로 이송되었다. 이해 10월 18일(음 9월 11일) 국청(鞫廳)에서 사형이 선고되어 전주로 다시 왔다. 10월 22일(음 9월 보름)경 루갈다와 나머지 집안 식구들도 함께 체포되었다. 그때 함께 체포된 가족들 중에서 유항검의 노모와 갓 결혼한 딸, 그리고 유중성(柳重誠, 마태오)의 홀어머니 등 3명은 나이가 많다는 등의 이유로 석방되었다. 이어 10월 24일 시아버지 유항검이, 11월 14일 남편 유중철과 시동생 유문석(文碩, 요한)이 전주 옥에서 참수당하였다. 이때 루갈다는 귀향을 언도받았지만 귀향 가다가 다시 옥으로 압송되어 이듬해 1월 31일(음 1801년 12월 28일) 시어머니 신희(申喜), 시숙모 이육희(李六喜), 시사촌 동생 유중성 등과 함께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당하였다. 그의 나이 20세였다.
루갈다는 순교하기 전에 어머니 권 씨와 가족들에게 보낸 옥중 서간을 남겼는데, 이는 후에 1802년(순조 2) 1월 29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큰오빠 이경도(李景陶, 가롤로)가 순교 전날 어머니 권 씨에게 보낸 서한, 그리고 1827년(순조 27) 전주옥에서 옥사한 동생 이경언(李景彥, 바오로)의 일지 등과 합쳐져서 〈누갈다 초남이 일기 남매〉라는 제목으로 필사되어 전해 내려온다. 유해는 순교 후 전주 초남리(草南里)에 안장되었다가
1920년 라크루(Lacrouts, 具瑪瑟) 신부에 의해 중바위산으로 이장되어 유중철 · 신희 · 이육희 · 유중성 등 4인의 유해와 함께 합장되었다. → 신유박해 ; 유중철 ; 이경도 ; 이경언)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上 · 中/ 《邪學懲義》/ 《純祖實錄》/ 金玉姬, 《李루갈다의 獄中書簡과 그 史的意義》,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柳洪烈, 《韓國天主敎會史》 上 · 下, 가톨릭출판사, 1962.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