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임 李時壬(1781~1816)

글자 크기
9
을해박해 순교자. 세례명은 안나. 본관은 함평(咸平). 충청도 덕산(德山) 높은 뫼(충남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에서 대대로 무관 벼슬을 지낸 양반가(兩班家)의 3남 1녀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려서 입교한 뒤 오빠 성지(세례자 요한, 일명 儒震), 동생 성삼(요한, 일명 儒定)과 함께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고, 결혼할 나이에 이르러서는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그녀는 동정녀(童貞女)들이 한곳에 모여 공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을 찾아 집을 떠났다. 그런데 도중에 교우 뱃사공 박(朴) 씨에게 겁탈을 당하여 그와 결혼하였고, 이후 아들 종악을 낳았으나 몇 해 뒤 과부가 되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1815년 경상도 진보(眞寶)의 머루산(경북 영양군 포산면 포산동)에서 부활 축일을 지내다가 30여 명의 마을 교우와 함께 체포되었다. 안동 진영(安東鎭營)으로 압송된 그녀는, 그곳에서 혹형과 고문을 당한 후 대구 감영(大邱監營)으로 이송되었고, 감영에서의 형벌도 잘 이겨낸 다음, 1816년 12월 26일 김종한(金宗漢, 안드레아), 고성대(高聖大, 베드로), 고성운(高聖云, 요셉), 김화준(야고보), 김희성(金稀成, 프란치스코), 최성열(崔性悅, 바르바라) 등 6명의 교우와 함께 35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 후 1827년에 동생 이성삼이, 1832년에는 큰오빠 이성지가 각각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日省錄》/ 柳洪烈, 《韓國天主教會史》 上, 가톨릭출판사, 1989/ 천주교 대구대교구 시복 시성 역사위원회, 《대구 순교사 연구》, 대건인쇄출판사, 2001.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