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895년 2월 6일 전북 전주군 소양면 양정리에서 태어났으며,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한 뒤 1919년 11월 23일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집전으로 계산 주교좌 본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직후 계산 주교좌 본당의 보좌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여 1922년 9월 김천 황금 본당 3대 주임을 거쳐 1929년 5월 나바위 본당 5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이약슬 신부는 40여 평의 교사를 신축하고 3년 간 폐교
되었던 계명(啓明)학교를 복교하였으며, 1930년 성모 성심회, 청년회, 소년 소녀회 등 단체를 조직하여 회원 상호간의 친목, 생활 쇄신, 복음 전파 등에 목적을 두고 성화에 힘썼다. 그리고 1931년 1월 군산(현 둔율동) 본당을 분리 · 신설하였으며, 1933년 마전리 공소의 강당을 신축하였다. 1936년 3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여 6년 간 교육 활동을 한 후 1942년 2월 수류 본당 10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부임 후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돕는 한편, 관내 유일의 초등 학교이던 화율 초등학교 학생들의 교육을 전담시킬 목적으로 1944년 8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를 초청하였다. 1947년 4월 전동 본당 11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그 해 10월 비석 거리(현 중앙) 본당을 분리 신설하였다. 이듬해 3월 성심 유치원을 개원하였고, 7월 29일 전주 성심여자초급중학교를 인가받았으며, 1949년 1월 2대 교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 1월 전주교구장 김현배(金賢培, 바르톨로메오) 주교의 입원으로 교구장 서리를 맡았다가,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그 해 8월 공산당에게 구금되었으나 9월 27일 UN군의 입성으로 구출되었다. 1953년 관리국장을 겸임하였고, 1954년 5월 부안 본당 6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가장 시급한 과제였던 성당 신축을 위해 성당 부지 340평을 매입한 다음, 1958년 1월 중앙 본당 5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본당 공동체의 조직화를 위해 여러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으며, 1958년 사제관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2년 후에 완공하는 등 활발한 사목 활동을 펼치던 중 1961년 3월 6일 고혈압으로 쓰러져 향년 67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 나바위 본당 ; 부안 본당; 수류 본당 ; 전동 본당 ; 중앙 본당)
※ 참고문헌 천주교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대구 본당 100년사》, 계산 본당 창립 100주년 기념 행사 위원회, 1986/ 전동 성당 100년사 편찬위원회 ·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전동 성당 100년사》, 천주교 전주교구 전동 교회, 1996/ 《부안 본당 70년사》, 천주교 전주교구 부안 교회, 1996/ 호남교회사연구소 엮음, 《전주교구사》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대구대교구 총람》, 천주교 대구대 교구,1986. 〔白秉根〕
이약슬 李若瑟(1895~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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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