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서울 출생으로 박해를 피해 경남 언양(彥陽)의 대재 공소(일명 죽림굴)로 이주하였다. 이곳은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후 형성된 교우촌으로, 신자들은 토기와 목기를 만들고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양등은 공소 회장으로 신자들을 이끌었으며, 꿀 장사를 하며 바깥 정세를 살피기도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허인백(야고보), 김종륜(루가) 등과 함께 단석산(斷石山)의 범골(경주 산내면 소태안 단석골)로 피신하여 신앙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1868년 박해의 여파가 심해지면서, 이양등은 허인백 · 김종륜 등과 함께 체포되어 경주 진영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2개월 동안의 가혹한 고문 속에서도 전교 비용에 보탤 짚신을 삼으며, 허인백 · 김종륜 등과 함께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그런 가운데 울산으로 이송된 뒤
1868년 8월에 울산 장대에서 군문 효수(軍門梟首)형으로 순교하였다. 구전에 의하면 이양등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슬픔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천국에 들어 간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죽었다고 한다.
※ 참고문헌 김구정, 《영남 순교사》, 대구대교구 순교 복자 성당 건립 기성회, 1966/ 마백락, 《경상도 교회와 순교자들》, 대건출판사, 1989/ 언양 성당 200년사 편찬위원회, 《신앙 전래 이백년사一彥陽天主敎會史》, 언양천주교회, 1991/ 《日 省錄》/ 천주교 대구대교구 시복 시성 역사위원회, 《대구 순교사 연구》, 대건인쇄출판사, 2001/《치명일기》. 〔孫淑景〕
이양등 李陽登(?~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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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