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식 李連植(1804~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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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하인이던 그는 동소문 밖 성북동에서 살면서 훈련도감 군졸을 수행하였다. 그가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우포도청에서 진술한 것과 그에 관한 우포도청의 보고서 등을 보면, 그는 1865년 봄에 양사동(養士洞)에 살던 친구 한용기(韓用基)에게 천주교를 배우고 약간의 책자와 염주 등의 물건을 얻어 집에 두었다. 한용기가 그 해 여름에 병으로 죽으면서 죽은 뒤에 영혼이 천당에 간다고 한 말에 이끌려 천주교를 믿게 되었다. 또한 그의 아들 이응태(李應泰)도 함께 천주교를 믿고 따랐다. 그러나 1866년 봄에 박해가 일어나자 책자와 염주 등의 물건을 모두 불태웠다. 그리고 체포된 뒤에는 천주교가 인륜을 무너뜨리는 학문임을 깨닫고 천주와 예수와 성모를 상스러운 말로 모욕하여 배교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들 이응태가 배교하고 풀려 날 때에 이르러 비로소 자신이 배교한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신앙을 굳세게 증거하였다. 그는 아들의 배교하라는 말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아버지가 배교하지 않는데 네가 어찌하여 배교하느냐"고 꾸짖었다. 이 때문에 그는 군문 효수형(軍門梟首刑)의 판결을 받고 1866년 9월 10일 김면호(金勉浩, 토마스), 김문원(金文遠, 바오로) 등과 함께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53세였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下, p. 157/ 《右捕廳謄錄》 병인 7월 29일 ; 7월 30일 ; 8월 2일/ 《치명일기》 15번/ 柳洪烈, 《高宗治下 西學受難의 研究》, 을유문화사, 1962, p. 180.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