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 李連熙(1804~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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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연희 마리아를 배교시키기 위해 아들을 매질하는 포졸들(탁희성 작) .

성 이연희 마리아를 배교시키기 위해 아들을 매질하는 포졸들(탁희성 작) .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마리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순교. 양반 가문 출신인 성인 남명혁(南明赫, 다미아노)과 결혼한 후 28세 때 남편과 함께 입교하였다. 영리한 두뇌와 남성적 용기를 가진 그녀는 회장의 직무를 맡은 남편을 도와 공소를 세우고, 주교와 신부가 종종 방문하면 정성으로 복사의 역할을 다하였다. 또한 교리에 밝아 많은 여교우들을 가르쳐 성사를 타당하게 받도록 지도하였으며, 표양이 단정하였기 때문에 모두 기쁜 마음으로 따랐다. 그러던 중 기해박해가 일어나 1839년 4월 7일 전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포교들의 무례함을 꾸짖었으나, 남편이 "교우는 어린양과 같이 천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잃지 마오" 라고 일러주는 말에 감동하여 그때부터는 모욕과 학대를 짜증내지 않고 잘 참았다. 그녀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 외에 12세 된 아들이 받는 고통을 겹쳐 감수하였다. 포도대장은 원하는 진술을 쉽게 받아 내기 위하여 그녀의 아들을 비롯하여 어린이들을 고문하였다. 날마다 사람들이 와서 "당신 아들이 혹독한 매를 맞고, 배가 고파 울고, 온갖 곤경을 다 겪어 죽어 가오"라고 하였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부서지는 듯하였으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모든 것을 잘 참아 냈다. 형조로 이송되어서도 그녀의 신앙은 한결같았기 때문에 1839년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36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남명혁)
※ 참고문헌  《기해일기》/ 《달레 교회사》 中, pp. 392~447/ 《承政院日記》 憲宗 5년 3월 5일 ; 7월 26일/ 林忠信 · 崔奭祐 역주, 《崔良業神父書翰集》,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p. 299.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