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지례

郊社之禮

글자 크기
1
1897년 고종 때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축조한 원구단(오른쪽)과 황궁우.
1 / 2

1897년 고종 때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축조한 원구단(오른쪽)과 황궁우.


유교에서 하늘〔天〕에 드리는 제사〔郊祭〕와 토지신에 게 드리는 제사〔社祭〕를 말한다. 하늘에 드리는 제사를 교제(郊祭)라고 하는 것은 수도 남쪽 교외〔南郊〕에서 거 행되었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전통적으로 예를 중시하 는 유교에서는 인간의 생명과 삶에 관련되고 도움을 주 는 신적 존재들, 즉 상제(上帝), 천신(天神) 지신(地 神), 인귀(人鬼)에게 보은의 제사를 드렸고, 필요시에는 제사를 통해 공적 기원을 해왔다. 그중 교제(郊祭)와 사 제(社祭)가 가장 중요한 제사였다. 교제와 사제는 왕조 와 시대에 따라 비록 그 의식 형태에 있어서 다소 차이 는 있었으나, 중국의 경우 고대에서부터 청대(淸代) 말 까지 국가적 대사로 계속 봉양되어 왔으며, 우리 나라에 서는 중국과의 정치적 · 문화적 관계로 인해 굴곡이 있었 다. 즉 교제는 우리 고유의 제천 의례와 습합되어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초까지 이어져 왔으나, 그 후 사대주의적 유교 이념의 강화로 인해 약 400년 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조선 말기 고종과 순종 때에 거행되 었다. 사제는 삼국 시대 사직단이 세워진 이래 곡식신 〔稷神〕에게 드리는 직제(稷祭)와 함께 사직제(社稷祭) 로서 조선 말까지 계속 거행되어 왔다. 현재 한국과 중 국에서는 유교적 왕조의 몰락과 함께 교제와 사직제가 모두 사멸되어 공식적으로 봉행되지 않고 있다. 〔유교적 전통〕 유교에서 궁극자에 대한 호칭과 관념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지만, 유일 절대자에 대한 순응과 존 경은 인간의 근본 도리라고 믿어져 왔으며, 제사 의례와 수기 안인(修己安人)을 통해 궁극자를 섬겨 왔다. 유교 의 예는 원래 응보(應報)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인간 생명의 근본인 하늘만큼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존재는 없으므로 그에게 보본(報本)과 보은(報恩)의 예 를 표하는 것이 인간의 우선적이고도 당연한 도리라고 본다. 교제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보본과 보은의 감사에 있 으나, 이외에도 복을 구하고 재앙을 물리치려는 기원도 있다. 제사의 대상은 호천상제(昊天上帝)이지만, 천지합 사(天地合祀)인 경우에는 지기(地祇)도 그 대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교제에는 인귀 · 천신 · 지신을 배위(配位)하 는데, 왕의 시조를 배천(配天)하는 것은 천(天)뿐만 아 니라 조상도 인간 생명의 근본이므로 함께 보본의 감사 를 드리기 위함이요, 천신(해, 달, 별 등)과 지신(산천, 바 다 등)을 배위하는 것은 천제(天帝)의 신하신(臣下神)으 로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므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 이다. 이러한 신령들에 대한 공경과 제사는 궁극적으로 천에 대한 숭배가 된다고 믿는다. 교제의 제관은 신분상 하늘의 종자(宗子)인 천자〔王〕 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천 의례는 왕과 왕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천하민을 위한, 천하민의 제사이므로, 비록 일반 백성은 참례마저 허용되지 않았 다 하더라도 신하들이 함께 집사했으며, 종친과 문무 백 관은 물론이요 사방 민족의 대표들도 참례하였다. 제사 의 장소는 수도 남쪽 교외의 원구(圜丘)이며, 시기는 대 체로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서 한 계절에 한 번씩 거행하 였다. 제사의 종류에는 정월 초〔上辛日〕 풍년을 기원하 는 기곡제(祈穀祭) , 여름(4월) 강우를 비는 기우제(祈雨 祭), 가을(9월) 명당(明堂)에서 선조에 상제(上帝)를 배 사(配祀)하는 대향제(大饗祭), 동지(冬至)에 드리는 사 은(謝恩)의 대보본제(大報本祭)가 있으며, 이외에도 비 정기 제사로 가뭄이 들 때 드리는 기우제와, 왕실이나 국가에 중대한 일이 생겼을 때 하늘에 알리는 고유제(告 由祭)가 있다. 토지신에게 드리는 사제는 곡식신에게 드리는 직제와 함께 사직제(社稷祭)로서 교제 다음으로 종묘제(宗廟 祭)와 함께 중시되어 왔다. 백성은 땅이 없으면 설 수 없 고 곡식이 없으면 살 수 없으므로, 고대에서부터 천자나 제후는 새로 나라를 세우면 우측에는 사직단, 좌측에는 종묘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 왔다. 국가와 왕조의 흥망을 종묘와 사직의 흥망으로 대칭(代稱)하는 것을 보더라도 사직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사직제의 목적은 보은의 감사와 풍년의 기원에 있으며, 종류는 천자의 대사직제 (大社稷祭), 제후의 국사직제(國社稷祭), 대부의 주현사 직제(州縣社稷祭)가 있다. 제사 장소는 왕도(王都), 국 읍(國邑) , 주현(州縣)의 각 사직단이며, 시기는 천자와 제후의 사직제는 2월, 8월, 12월이고 주현의 사직제는 2 월과 8월이다. 사직제에는 구룡(句龍)과 후직(后稷)을 배사하며, 제관은 사직제의 등급에 따라 천자, 제후, 수 령(守令)이 된다. 〔선교사들의 비판적 인식〕 명말 · 청초(明末清初, 16~ 17세기) 중국에 온 유럽 선교사들은 중세 천주교 신앙에 입각하여 유교 제사를 비판적으로 인식하였다. 당시의 그리스도교 신앙에 의하면, 천주 외의 다른 존재를 절대 자로 공경하거나 천주께만 드릴 흠숭지례(欽崇之禮)인 제사를 다른 존재에게 드리는 행위는 십계명의 제1계명 을 거스르는 가장 중대한 우상 숭배 또는 미신으로 엄금 되었다. 물론 신적 존재로 천주 외에 천신과 마귀를 인 정하였으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천주의 피조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를 섬김이 미신임은 말할 나위도 없고, 천신에 대해서도 전구(轉求)의 청원과 감사의 공 경지례(恭敬之禮) 외에 직접적인 기도나 제사를 드리는 것 역시 미신으로 간주되어 금지되었다. 이러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신봉하던 선교사들은 귀신 을 '이기(二氣)의 양능(良能)' , '기(氣)의 굴신(屈伸)' 등 기(氣)로 설명하는 성리학의 기능적 귀신론에 대해 비판하였다. 기는 물 · 불 · 흙과 함께 물질을 형성하는 4 원소〔四行〕에 불과하므로, 천주로부터 제일 먼저 창조된 신령한 실체인 귀신과는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귀 신에는 천신과 악마의 두 종류가 있는데, 천신은 천주의 명을 받들어 사람을 선으로 인도하고 천지 조화(天地造 化)의 직무를 수행하는 반면에 악마는 사람을 악으로 유 인하여 사후 지옥에 떨어지도록 힘쓴다. 따라서 선교사 들은 천지 자연과 그 변화를 운영함이 천신의 직분임을 언명함으로써 하늘 · 땅 · 해 · 달 · 산천 · 바람 등 자연물 과 자연 현상을 신격화하는 것을 배격하였다. 유교 제사에 있어서도 궁극자에게 드리는 교제는 인정 하였지만, 사제를 포함하여 천신과 지신에게 드리는 제 사는 미신으로 판단하여 단죄하였다. 제사는 절대자 천 주에게만 드려야 하는 인간 최대의 흠숭지례이므로, 천 주 외에 다른 존재에게 드리는 것은 마치 군주에게만 드 려야 하는 예를 신하에게 행함으로써 군주를 배역함과 같은 대죄악이요 결과적으로 마귀를 섬기는 행위라는 것 이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중용》(中庸) 19장의 "교사지 례는 상제를 섬기는 것" 〔郊社之禮 所以事上帝也〕이라는 구절을 해석함에 있어 주희(朱熹)가 "교제는 하늘에 제 사함이요 사제는 땅에 제사함이니, 후토신(后土神)에 대 한 언급이 없는 것은 문장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고 주 석한 것을 비판하면서 후토신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 은 교제와 사제가 모두 상제를 섬기는 예이기 때문이라 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주장은 한역 교리서를 통해 조선에 도 전달되었으며, 당신 조선 천주교인들은 천주 외의 천 신이나 지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미신으로 인식하고 금하 였다. 〔정약용의 조화적 해석〕 유자(儒者)인 동시에 천주교 인으로서 서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다산(茶山) 정약용 (丁若鏞, 1762~1836)은 제사 문제에 있어 유교와 천주교 를 조화시킴으로써 창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다산은 당시 학문과 수양의 큰 병폐가 전적으로 그릇된 궁극자 관과 귀신관에게 기인한다고 판단하였으며, 유교 경전의 초월적이고도 주재적인 천관(天觀)과 실체적 귀신관에 입각해서 바른 궁극자관과 귀신론을 정립하려고 하였다. 먼저 성리학의 내재적이고 비위격적(非位格的)인 태극 (太極)이나 이(理)는 만물의 궁극자가 될 수 없고, 땅과 대칭적인 하늘 역시 상제와 동일시할 수 없다고 비판하 면서, 상제는 만유를 초월하여 천(天)과 지(地), 천신과 인간을 조화하고 주재 · 안양하는 존재라고 역설하였다. 귀신론에 있어서도 선교사들과 같이 성리학의 기론적 (氣論的) 귀신관을 거부하고 실체적 귀신론을 주장하였 으며, 천신의 존재만 인정하고 지신의 존재는 부인하였 다. 또 고대 선인(先人)들이 제사를 드렸던 지신은 상제 의 명을 받아 땅을 관리하는 천신이라고 보았다. 귀신에 는 인간을 도와주는 선한 천신〔善神〕 외에 인간을 해롭 게 하는 악신(惡神)도 있음을 인정하지만, 악신에 대해 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주로 선신 곧 명신(明神)에 대 해서만 언급하였다. 선신은 상제의 신하로서 그 명을 받 아 하늘과 땅, 도읍과 고을을 맡아 다스리며 중보자(仲 保者)로서 인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다산은 상제에게 드리는 교제를 매우 중시하였으며, 천과 대칭적인 존재로서의 지기(地祇)에 대한 제사를 거 부하고 천지합사(天地合祀) 역시 배격함으로써 상제의 유일 절대성과 주재성을 명백히 하였다. 《중용》의 "교사 지례는 상제를 섬기는 것"이라는 구절에서 후토신(后土 神)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더라도 옛날에는 지신에 대한 제사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교제의 종 류에 있어서 유교 전통과는 달리 봄의 기곡제만을 인정 하고, 가을의 대향제와 동지의 원구제(圜丘祭)를 부인하 였으며, 기우제는 정기적인 제사로서가 아니라 가뭄이 들 때 드리는 비정기 제사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교제의 시기도 정월 상신일(上辛日)이 아니라 경칩 때의 신일 (辛日)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다산의 주장은 《주례> (周禮)와 《춘추》(春秋)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다산은 선교사들과는 달리 천신에게 드리는 제 사를 인정하였으니, 공경과 감사의 표현으로서의 제신의 례(祭神儀禮)는 곧 상제를 섬김이 된다고 이해했기 때문 이다. 옛 성인들이 상제의 신하인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것은 상제 공경을 넓히기 위함이었다고 해석하였다. 이 러한 그의 인식은 마치 지상에서 왕이 파견한 관리를 백 성이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 바로 왕에 대한 공경과 충성 이 되는 것과 같다는 유교적 사고와 상통한다. 그는 제 신의례 중 사직제(社稷祭)를 중시하였으며, 사직제는 대 지를 맡아 관장하는 천신에 대한 제사라고 보았다. 다만 이 사직제의 배위에 있어서는 우리 나라의 경우 중국 예 법을 묵수하여 구룡과 후직을 배사하는 대신 기자(箕子) 를 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중국은 구룡 과 후직의 공로를 입었으므로 배사함이 마땅하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구룡과 후직이 누구인지도 모르니 의미가 없으며, 우리 백성에게 농사를 가르쳐 준 기자를 배사하 여 그 공덕을 기리고 감사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 이러한 다산의 태도는 중국 예법을 그대로 맹종하 지 않고, 그 근본 의의는 살리면서도 토착화하려는 창의 적 주체 의식의 발로로서, 앞으로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를 위한 귀감이 된다고 하겠다. (→ 의례 논쟁 ; 제천 의 례) ※ 참고문헌  馬端臨, 《文獻通考》/ 泰蕙田, 《五禮通考》/ 洪鳳漢 · 李萬運 · 朴容大, 《增補文獻備考》/ 丁若鏞, 《與猶堂全書》/ 利瑪竇, 《天主實義》/ 馬若瑟, 《儒敎實義》/ 利安當, 《정학료석》/ 최기복, <유 교와 서학의 사상적 갈등과 相和的 이해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 교 박사학위 논문, 1989/ 최기복, <儒敎의 祭天儀禮〉 《이성과 신앙》 제6호, 1993, pp. 12~76. 〔崔基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