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聖女). 동정녀(童貞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막달레나.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순교. 서울의 매우 가난한 양반의 외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성녀 이인덕(李仁德, 마리아)의 언니이다. 그녀의 외할머니가 의탁할 데가 없어서 그녀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매우 신앙심이 깊은 신자였다. 그녀는 외할머니의 전교로 동생 이인덕과 어머니 조 바르바라와 함께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성질이 포악한 아버지가 가정에서 혹독하게 박해를 가하였지만, 그녀는 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몰래 집에서 빠져 나가 세례도 받고 다른 성사도 받곤 하였다. 19세에 이르러 아버지가 외교인과의 결혼을 강요하 자 그녀는 동정을 지킬 생각으로 꾀병을 앓기도 하고 혈서를 써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결심을 표시하기도 했으나, 아버지의 완고한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끝내 결혼을 모면할 아무런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녀는 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가출한 뒤 앵베르(Imbert, 范世亨)주교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였다. 앵베르 주교는 그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얼마간 도움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집을 하나 장만하여 자유롭게 신앙
생활을 하였다. 굶주림과 추위로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뒤에 과부 이가타리나와 동정녀 조 막달레나가 와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으며, 그녀의 부친은 그들이 강물에 투신 자살한 것으로 알고 더 이상 찾지 않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녀는 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함께 살고 있던 이가타리나, 조 막달레나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였으며,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면 자수하기로 약속했는데, 미처 자수할 사이도 없이 5월에 모두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3개월 동안 갖은 혹형과 고문을 다받았다. 57세 된 그녀의 어머니 조 바르바라, 33세 된 조 막달레나, 57세 된 이 가타리나는 옥중에서 괴질에 걸려 순교하였고, 그녀는 동생과 함께 형조로 이송되어 또다시 고문을 받았다. 끝내 배교를 거부한 그녀는 사형 선고를 받고 1839년 12월 29일 옥에 갇힌 지 7개월 만에 27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 이인덕)
※ 참고문헌 《기해일기》/ 《달레 교회사》 中, pp. 472~474, 531/ 《日省錄》 憲宗 5년 11월 11일 ; 12월 27일/ 林忠信 · 崔奭祐 역주, 《崔良業神父書翰集》,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pp. 367~369. 〔孫淑景〕
이영덕 李榮德(1812~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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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동정을 지키며 산 성녀 이영덕 막달레나(탁회성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