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집 李宇集(1762~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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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교회의 신자. 세례명은 미상. 본관은 전주이며, 1762년 전남 영광군 월산리(月山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명일(李命逸)이고 어머니는 해남 윤씨로 윤두서(尹斗緒)의 손녀이다. 유관검(柳觀儉)은 매형의 종제로 친사돈간이었으며, 이러한 관계로 두 사람은 매우 친숙하게 지냈다. 이우집은 1795년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전주의 누님 집에 묵게 되었는데, 이때 유관검의 권유로 입교한 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유관검의 발설로 전주 감영에 체포되었다. 이우집은 신문 중에 유관검이 "서양군함이 나와 조정에서 말을 순순히 듣지 않는다면 무력으로 한바탕 결판을 내야 한다" 〔大舶請來 一場判決〕고 한 사실을 진술하였다. 이 진술 때문에 그는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 유관검, 윤지헌 등과 함께 국사범으로 취급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1801년 10월 의금부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후 전주로 이송되어 10월 24일 풍남문 밖에서 처형되었다.
※ 참고문헌  《邪學懲義》/ 《闢衛編》/ 《推案及鞫案》/ 《달레 교회사》上. 〔河聲來〕